권순호 알베르토 신부님 ==13/5/2026====[(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2026년 5월 13일 수요일[(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백) Wednesday of the Sixth Week of Easter]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7,15.22─18,1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화답송
◎ 주님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또는
◎ 알렐루야.
○ 하늘 위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주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 홀로 높으시다. ◎
○ 주님의 위엄 하늘과 땅에 가득하시다. 그분이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높이셨네.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 그분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찬양하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는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오늘의 묵상
학창 시절에 ‘수포자’, 곧 ‘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는 수준이 높고 내용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도만 나가니 학생들이 배우기를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본당 특강도 수준이 너무 높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듣기를 포기하고 졸게 됩니다. 좋은 선생님은 제자들의 수준을 잘 고려합니다. 너무 어려워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게 하고,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지 않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제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좋은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완급을 조절하실 줄 아십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처럼 완급 조절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완급을 성령을 통하여 조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히브리 말로 ‘루아흐’입니다. 이 말은 ‘숨’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루아흐가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를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도 합니다. 밤을 새워 모든 것을 내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날 줄 알고, 쉬는 법을 알 때 성령의 바람이 다시 우리에게 진리를 따라 살아갈 힘을 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일상생활에서 완급 조절 없이 바쁘게만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성령의 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숨을 쉬고자 교회에 모입니다. 성령의 숨을 쉬고, 예수님의 진리를 쉬엄쉬엄 세상에 전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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