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님 == 1/2/2026=[(녹) 연중 제4주일]

  2026년 2월 1일 주일 [(녹) 연중 제4주일] [(녹) Fourth Sunday in Ordinary Time]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4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약속하셨으니, 교회가 성령의 힘으로 복음의 작은 이들처럼 주님을 따르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제1독서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라.>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3; 3,12-13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3,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31/1/2026====믿음의 여정 “기도,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

  2026.1.31.토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 기념일   2사무12,1-7ㄷ.10-17 마르4,35-41     믿음의 여정 “기도,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믿음이 답입니다, 고귀한 인간 품위의 기초가 믿음이요 정말 위대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믿음입니다. 삶은 믿음의 여정이요 기도,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비록 육신은 노쇠해가도 믿음은 날로 성장하고 튼튼해져야 합니다.    건강과 돈이 우상화되어가는 자본주의 시대에 제가 늘 강존하는 노년 품위의 우선순위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이 우선입니다. 이래야 건강과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도 절제되어 삶의 균형과 조화도 지니게 됩니다. “믿음으로” 라는 성가 480장도 생각납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산도 옮기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다도 가르리 믿음으로”   시간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1절에 이어 3절까지 불러 보기 바랍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 수도자다운 삶, 순종”의 3대 서원도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 서원에 한결같이 충실할 때 탄력좋은 믿음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 역시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탄력 좋은 믿음이요 믿음 역시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기도와 일, 공부가 조화된 믿음의 시스템같은 날마다의 일과표가 믿음의 훈련과 습관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여기 요셉수도원 배경의 늘 거기 그 자리의 정주의 불암산도 저에게는 참 좋은 믿음의 스승이 됩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라는 자작 애송시도 나누고 싶습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아무리 세월 흘러도  늘 거기 그 자...

김찬선 신부님 ===31/1/2026=== 걱정하지 말고 다만 믿게 하소서!

  오늘 복음은 요리조리 조목조목 따져볼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하신 점입니다.   이어지는 얘기를 볼 때 주님은 제자들을 고통스러운 길로 내몬 나쁜 스승입니다. 그런데 더 잘 생각하면 같이 가자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경우처럼 제자들만 따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께서는 한배를 타고 가시며 하시는 말씀이고 너희와 나는 공동 운명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같이 길을 가기 위함이고, 우리가 갈 곳까지 우리를 틀림없이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가자고 우리를 초대하시고 한배를 타심은 우리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고 갈 수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가려 하고 잘 갈 수 있다면 굳이 같이 가자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가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로 건너감인데 이 여행길이 실은 싫고 매우 두렵기에 떠나려고도 하지 않고 혹 떠나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힘들기에 초대도 하시고 같이도 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는 주님께서 한배를 타시긴 하셨어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풍랑이 거세고 제자들이 죽게 되었어도 주무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믿음 시험입니까? 뒤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을 시험해 보고 야단치시기 위함입니까?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보면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면서 우리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바칠 때 야훼이레 하느님께서는 제물을 다 마련해주실 거면서도 아들을 바치라 시험하셨지요.   이런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믿음을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양승국 신부님 ===31/1/2026==== 휘파람은 불 줄 아니?

  휘파람은 불 줄 아니?   1841년 12월 8일 돈보스코가 사제가 된 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날 이었습니다. 돈보스코는 토리노에 있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 제의방에서 제의를 입고 있을 때였습니다.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제의방 근처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제의방지기 요셉 코모티는 그 아이가 복사 서러 온 아이인줄 알고, 빨리 복사복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제의방지기는 복사도 할 줄 모르면서 왜 제의방에 들어왔냐며 촛불을 켤 때 사용하는 긴 막대기로 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마구 때렸습니다. 아이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돈보스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제의방지기에게 따졌습니다. “지금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왜 그렇게 아이를 때리십니까?” 제의방지기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상관하지 마세요. 신부님이 저 아이를 알기나 하십니까?”      돈보스코는 말했습니다. “알다마다요. 저 아이는 제 친구입니다. 빨리 그 아이를 불러주십시오.” 돈보스코는 쭈볏쭈볏 되돌아온 아이에게 미사는 드렸냐고 물었습니다. 아뇨. 그럼 내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한 뒤 나를 꼭 좀 만나자고, 끝나고 네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헀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그 유명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름이 뭐니?” “바르톨로메오 가렐리예요,” “고향은 어디지?” “아스티예요.” “아버지는 살아 계시니?” “아뇨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몇 살이지?” “열여섯 살이요.” “읽고 쓸줄은 아니?” “아뇨. 전혀.” “첫영성체는 했니?” “아직 안했어요.” “노래할 줄 아니?” “아니요.”    제가 돈보스코였다면 그 순간 엄청 답답해서 뭐라고 했을 것입니다. 야, 그럼 도대체 너는 할 줄 아는 게 뭐냐? 그러나 ...

반 영억 라파엘 신부님 ===31/1/2026=== 믿음의 사람이 되어라

  「 믿음의 사람이 되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 안에 있었는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었습니다. 배 안으로 물이 들이쳐서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4,38)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믿음의 수준을 드러내 줍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지만, 사실은 깨어나야 할 사람은 제자들입니다.   거센 돌풍을 잠재우실 능력의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주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사는 이 연약한 믿음의 삶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배를 함께 탄 것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동의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풍이라는 환난이 옴으로써 그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결국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탓입니다. 제자들은 그 믿음을 회복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풍이 이는 바람과 호수를 향해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4,40)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와 함께 있는데 왜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세상의 풍파에 조급하게 허둥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이신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간직하고 희망을 접지 마십시오.   폭풍 속에서도 주님은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는 능력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당신은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당신을 잊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