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13의 게시물 표시

주님께서 지켜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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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어떤 이가 하느님을 찾아가 호소하였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 입니까?"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털털이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7가지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 첫째는 화안시 (和顔施)얼굴에 밝은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요. 둘째는 언시 (言施)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다. 셋째는 심시 (心施)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선한마음을 주는 것이다. 넷째는 안시 (眼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요. 다섯째는 신시 (身施)나의 몸으로 다른 사람의 짐을 들어 준다거나 일을 돕는 것이요. 여섯째는 좌시 (座施)언제나 노약자에게 자리를 내어 양보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찰시 (察施)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네가 이 일곱 가지가 습관이 되면 너에게 행복이 따르리라."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7가지 다 할 수 없다면 매일 한 가지씩 만이라도 체크하며7가지 습관을 길러간다면 우리나라는 하루에 5천 가지 행복 출렁~ - 상대방에게 힘이 되는 습관! 귀하기만 합니다. -

용서하는 용기, 용서 받는 겸손

산다는것은 날마다 새롭게 용서하는 용기, 용서받는 겸손이라고 일기에 썼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없는것은 용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기쁨이 없는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직이 고백합니다. 수백 번 입으로 외우는 기도보다 한 번 크게 용서하는 행동이  더 힘있는 기도일때도 많습니다. 누가 나를 무시하고 오해해도 용서할 수 있기를 누가 나를 속이고 모욕해도 용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하여 무릎을 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때 세상은 아름답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할 때 용서하는 기쁨과, 용서받는 기쁨같이 세상이 우리를 즐겁게 할 것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5월 8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5월 8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는 성령> 아직 새파란 젊은이인데, 아직 갈 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인데, 아직 포기해서는 안 될 상황인데, 얼굴을 보면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분들이 요즘 부지기수입니다. 전혀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영혼이 다 빠져나가고 육신만이 살아있습니다. 그의 삶에 생기나 활력, 기쁨이나 패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소금 간 한지 오래된 고등어 눈동자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얼마나 자신감이 없고 무기력한지 한번 도전해보고 부딪쳐보려는 의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좌절, 포기가 단골 인생 메뉴입니다. 이런 분들 부디 오늘 아침 주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백만 볼트 에너지로 자신을 충전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주유소인 미사에 참석하셔서 최고급 휘발유인 잘 준비된 영성체로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제가 연료 게이지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신나게 달리다가 그만 고속도로에서 멈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가 고급이고, 갓 뽑은 새 차라 할지라도 연료가  바닥나면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느낌.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 할지라도 기계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천이 차단되어 있으면(전원이 꺼져 있거나, 연료가 바닥났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선을 많이 베풀고,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성령 안에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울리는 괭가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전혀 엉뚱한 종착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분의 에너지로 충전되지 않는...

야곱이 왜 더 힘들게 살았을까?/송봉모신부

야곱이 왜 더 힘들게 살았을까? 야곱이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요셉만큼 힘겹게 산 것은 아니다. 비록 야곱이 유랑 생활을 했지만 요셉처럼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지는 않았다. 비록 야곱이 14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이용당했지만 자유인의 신분이었고 옆에는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있었다.  반면 요셉은 종의 신분인데다가 줄기차게 괴롭히는 주인 마님이 있었다. 나아가 요셉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야곱은 요셉보다 더 힘든 삶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야곱이 더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야곱의 집념과 요셉의 순종 때문이다. 야곱은 집념이 컸던 만큼 하느님께 항복하기가 어려웠다. 야곱은 하느님 섭리에 의탁하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축복을 움켜쥐려고 애쓰느라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매사 자기편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늘 계획과 계략으로 채워졌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하느님 체험(Touching God) - 2013.5.8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5.8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사도17,15.22-8,1 요한16,12-15 하느님 체험(Touching God)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5월입니다.  신록의 생명, 신록의 기쁨 가득한 5월입니다.  하느님의 생명과 기쁨이 신록의 아름다움을 통해 환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게 일상에서의 평범한 하느님 체험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아라.” 참으로 주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기에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영적 오관을 활짝 열면 그대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10여 년 전 로마에서 영성 강의를 들을 때 마음에 와 닿은 짧은 말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Touching God(하느님을 터치하라)!” 주님과 닿으라는 말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라는, 만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을 터치하는, 만나는 시간입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변화시킵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을, 터치를 목표로 하는 가톨릭교회의 전례입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의 결여로 영혼이 병들고 시들어 가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래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종교적 존재입니다.  어제 선출된 새 아빠스님과 수도승들의 반가운 축하 인사를 통해 깨닫는 진리는 아빠스의 우선적 역할은 영적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니 아빠스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 모두가 신자들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안내하는 영적 아버지의 역할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어느 유대 랍비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한 소감도 생각납니다. “그분은 영적으로 강한 분이시다. 육신을 선도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다.” 영혼이 무너지면 육신도 무너집니다. 진정 영적인 사람은 육신이 영혼에 순종하지만 육적인 사람은 영혼이 육신을 따르게 되어 점차 영혼도 육신도 쇄락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서>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5월 9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R) - 사도18,1-8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고, 회당에서 토론을 하였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서> 바오로 사도의 전도 여행이 항상 활기차고 승승장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도행전은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는 현자들의 도시 아테네에서 쓰라린 실패를 체험합니다. 당시 아테네는 석학들의 도시였습니다. 내놓으라는 현자들이 각자의 전문분야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가방끈이 긴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바오로 사도는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쳐 봐도 타락한 이방도시 아테네 사람들은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아테네에서 바오로 사도는 진하게 느꼈습니다. 인간의 힘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히 저 열렬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청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얼마나 힘겨운 나날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코린토 전서 2장3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사실(아테네를 떠나)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아테네에서의 쓰디쓴 실패의 기억을 뒤로하고 바오로 사도는 드디어 코린토에 도착합니다. 당시 아테네에서 코린토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가능했습니다. 육로를 이용하면 꽤나 돌아가야 했으며 이동거리가 약 100Km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배로 지중해를 건너가면 훨씬 거리가 단축되어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코린토는 정말이지 특별한 도시였습니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음으로 인해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코린토는 기원전 146년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약 100...

요셉의 삶에서 배울점/송봉모신부

요셉의 삶에서 배울 점. 요셉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았지만 아버지처럼 축복을 움켜쥐려 애쓰지 않았다. 요셉은 어떠한 처지에서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겼다. 그는 이 세상의 악과 불의 앞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거부하거나 제한시키지 않았다. 우리라면 지쳐서 포기했을 13년이란 노예와  감옥살이의 긴 역경의 세월 속에서도 그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곤란과 시련이 있다하더라도 하느님이 당신 선의로 이끌어 주리라고 굳게 믿었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그의 삶은 고통보다는 축복이 부각되는 것이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알퐁소 성인의 거룩한 묵상중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과 죄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 주님, 그들이 당신을 알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구원은 단 한번의 은총이 아니라 연속적인 은총의 고리로 그 은총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묵상하는 것은 영적 위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3,9)   -알퐁소 성인의 거룩한 묵상중에서-

오늘이 영원이다. - 2013.5.9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5.9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사도18,1-8 요한16,16-20 오늘이 영원이다. ‘이별의 슬픔과 재회의 기쁨’ 오늘 복음의 소제목에서 떠오르는 주제가 삶의 리듬입니다. 이별과 재회,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며 흐르는 강 같은 우리의 삶입니다. 하루하루가 영원입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이자 선물입니다. 믿음의 눈에는 분명 그렇습니다. 또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봄은 지나도 여름으로 연결되고 여름은 가을로, 가을은 겨울로 연결됩니다. 텅 빈 충만의 겨울 산이 신록으로 우거져 꽉 채워지니 숨 막힐 듯합니다. 왜 옛 수도승들이 텅 빈 사막을 찾았고, 텅 빈 겨울을 좋아했는지 깨닫습니다. 그러나 삶은 흐름이자 리듬입니다. 꽉 채워진 신록의 생명도 겨울이 되면 텅 빈 충만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 삶도 똑같습니다. 결코 비약이나 도약은 없습니다. 어제의 과거는 오늘의 현재로 오늘의 현재는 내일의 미래로 연결됩니다. 하여 어제를 보면 오늘을 알 수 있고 오늘을 보면 또 내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항구한 믿음의 사람들을 대하면 끊임없이 성장하는 하느님의 나무 들 같고, 끊임없이 연결되는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들 같고,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들처럼 느껴집니다. 26년 동안 자란 수도원 경내의 나무들이 그대로 우리의 내적성장을 상징합니다. 세월 지나 아무 것도 남는 것 없는 허무의 삶 같은 데 잘 들여다보면 커다란 믿음의 나무처럼 내적으로 성장한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이게 언제나 제자리의 영원을 사는 정주생활의 축복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세월이 흐르는 모습이 보이고, 감정이 흐르는 모습도, 젊음에서 노년으로 늙어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영원한 오늘, 영원한 현재의 ...

5월 10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너희의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참된 기쁨> 글의 힘이 정말 대단한 것을 넘어 위대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알려준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소설 ‘부활’의 집필자인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톨스토이의 배경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가문, 출중한 문학적 재능, 든든한 가족들, 엄청난 부, 그리고 탄탄한 신앙까지, 잘 보장된 미래... 그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던 촉망받던 젊은이 톨스토이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는 공허한 마음을 그 어디서도 채울 길이 없어 방황과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 가정, 남부러울 것 하나 없던 가문 출신의 톨스토이였지만 마음은 점점 우울해져만 갔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들도 그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톨스토이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고 있던 한 노예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비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예의 얼굴에 깃들어있는  빛나는 기쁨을 발견한 것입니다. 또 다른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가 한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얼굴이 또 그렇게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쁠 일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햇빛이 쨍쨍한 무더위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부의 얼굴이 그렇게 만족스럽고 기쁜 얼굴이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의아했던 톨스토이가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물었더니 그 농부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저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큰 평화와 기쁨을 선물로 주시더군요.” 그 후 톨스토이는 농부를 따라 하느님 현존 안에 살아가고...

요셉의 신앙심/송봉모신부

요셉의 신앙심 요셉은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는 이야기나, 행위를 할 때에도 반드시 ‘하느님’이 중심이었다. 첫째, 감옥에 갇혔던 파라오의 두 시종장의 꿈을 해몽할 때, 요셉은 “꿈을 푸는 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했다. 둘째, 파라오가 요셉에게 해몽을 부탁하자 “저에게 무슨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폐하께 복된 말씀을 일러주실 이는 하느님뿐 이십니다.”(41,16) 셋째, 형들에게 자기정체를 밝히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고 나를 형님보다 앞서 이곳 이집트로 보낸 것입니다.”(45,5) 넷째, 파라오가 그를 총리로 임명했을 때도 요셉은 “하느님께서 나를...... 이집트 전국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45,9) 라고 말하였다. 다섯째,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가리키면서 “얘들이 누구냐?”고 묻자,   요셉은 “얘들은 하느님께서 이곳에서 저에게 주신 제 아들들입니다. 라고 대답한다.(48,8-9) 여섯째, 죽음의 자리에서 유언을 하면서도 요셉은 오직 하느님뿐이었다. “나는 이제 죽을 터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어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주시마고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하실 것이다.”(50,24) 그는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신앙인답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가 이집트 재상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신록의 기쁨 -기쁨 예찬- 2013.5.10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5.10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사도18,9-18 요한16,20-23ㄱ 신록의 기쁨 -기쁨 예찬-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시편47,2). 오늘 미사 화답송 시편 첫 구절이 신선했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기쁨 중의 기쁨이 주님을 만나는 찬미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진정 우리의 ‘기쁨조’입니다.   신록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5월 성모성월입니다. 신록의 기쁨이 가득한 ‘기쁨의 달’ 5월입니다. 오늘은 ‘신록의 기쁨-기쁨 예찬’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믿는 이들의 영성의 표지는 기쁨입니다. 기쁨자체가 최고의 선물이요 복음 선포입니다. 우울과 슬픔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기쁨의 빛이 이런 우울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기쁨은 빛입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이런 부정적 감정의 어둠이 우리를 차지하게 되어 몸도 마음도 어둡고 무거워져 병들게 됩니다. 10여 전 유행처럼 회자된 말이 웰빙(well-being), 웰다잉(well-dying)이고 요즘은 힐링(healing)입니다. 이에 대한 최고의 유일한 처방이 바로 기쁨입니다.   기쁨의 아름다움, 기쁨의 건강입니다. 기쁨보다 더 좋은 약도, 화장품도 없습니다. 진정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들은 기쁨의 사람들입니다. 존재의 기쁨이지 소유의 기쁨이 아닙니다. 기쁨(joy)과 쾌락(pleasure)을 착각해선 안 됩니다.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기쁨이요 영혼을 병들게 하는 쾌락입니다. 소유의 쾌락을, 성적 쾌락을, 자기 뜻의 쾌락을 기쁨으로 착각하여 추구하다보니  결과는 공허에 환멸이요 중독에 폐인입니다. 하여 복음적 권고가 더욱 빛납니다. 가난, 정결, 순종을 통한 기쁨과...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위한 기도 -토마스 아 켐피스-

오 주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소서 .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을 찬양하게 하소서. 주님 보시기에 값진 것을 귀히 여기게 하소서. 주님의 역겨워 하시는 것을 증오하게 하소서. 저의 눈에 의지하여 사물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무지한 인간들의 귀로 들은 대로 판단치 않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것들과 영적인 것들을 분별하게 하시며, 무엇보다도 당신의 뜻에 합당한 것을 탐구하게 하소서.  -토마스 아 켐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