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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근 신부님 ===30/4/2025==='세상'은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은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복음은 니코데모와의 세 번째 대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17) 이는 흔히 '복음서 속의 복음' 또는 '작은 복음서'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이 '하느님의 사랑', 나아가 '먼저 하신 사랑', 곧 '거저 베풀어진 사랑'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은 단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되, 그냥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말해줌과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아먹은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셨다면, 굳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박이나 번개, 천재지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거부하고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더구나 파괴해야 할 그 무엇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존중하고 수락해야 할 선물이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아니,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모두가 사랑하고 가꾸어야 할 선물입니다. 그런데 혹시 세상을 마치 마귀처럼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미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30/4/2025==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사랑의 삶을 살고 이로써 기쁨과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이 구원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5년 4월 30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고등학생 때도 책을 많이 읽었어요?”   학생들이 제게 묻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따라갔던 만화방에서 읽은 만화책이 전부였습니다. 책 읽는 습관도 없었지만, 책 읽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밤 10시까지 하는 자율이 아닌 이름만인 자율학습을 해야 했고, 또 강제적으로 보충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에, 예체능 시간이 아깝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요즘의 아이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빠른 결과만을 바라는 현대인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멀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를 주변 사람들이, 심지어 동창 신부들까지 부러워합니다.   하루에 거의 한 권꼴로 책을 읽고 있으니, 이 부분만큼은 사람들을 앞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또 지금을 힘차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런 기쁨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단번에 그리고 이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길게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빠른 결과만을 찾습니다. 과정 역시 너무나 커다란 기쁨을 줄 수 있는데도, 성급해서 과정 안에서 얻는 기쁨을 놓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너무나 쉽게 신앙생활을 소홀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름으로 열심히 기도했다고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곧바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해 교회는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이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주님을 세상의 일보다 뒷자...

함 승수 신부님의 복음 묵상 =30/4/2025== 요한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요한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이 구절은 많은 교부들로부터 “복음 속의 복음”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톨릭 신앙의 핵심과 정수를 담고 있으며 그 본질을 분명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중계명” 안에 율법과 계명의 근본정신과 본질이 담겨있다면,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한 그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그 사랑에 응답하여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각 구절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첫째,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 마음에 드는 몇 사람만 차별하여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당신께서 창조하신 이들 모두를 두루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당신께 저지른 죄를 심판하고 단죄할 이유로 삼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많이 사랑해야 할 이유이자 원동력으로 삼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우리가 하느님께 더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그분 앞에서 나의 실수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뉘우치며 고백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둘째,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너무나’라는 부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싶은지 그 ‘정도’를 표현하는 것인데, 유한하고 부족한 우리로서는 그 정도를 제대로 가늠하기는 커녕,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조차...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30/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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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훈 안드레아 신부님 = ==30/4/2025 ====[(백) 부활 제2주간 수요일]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백)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백) Wednesday of the Second Week of Easter]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

조덕현 신부님 ==29/4/2025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  요한  3,7-15: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 ” (7 절 )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태어남을 의미한다 .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당신과 함께 머무를 자녀들을 낳으신다 .  우리는 성령 안에서 말씀과 성사로 태어났다 .  우리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성령 안에 살고 있지 못하다면 ,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다 . ” (8 절 ) 고 하셨다 .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 ” (9 절 )     니고데모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듯하다 .  “하늘에서 내려온 이 ,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 (13 절 )  하늘에서 내려온 이라는 말은 그분의 기원이 성령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    그분은 말씀으로서는 하늘에 계시며 육으로는 사람의 아들이시다 .  그 육의 기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성령께 있다 .  육이 되신 말씀은 비록 육이시지만 결코 말씀이 아닌 적이 없으시다 .  그분이 내려오신 것은 우리가 올라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  땅에 속한 인간이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될 때 ,  영적 탄생이 된다 .  그리스도께  결합할  때 ,  그분과 함께 올라간다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9/4/2025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난 교회 공동체 “참다운 우정의 사람들”

  2025.4.29.화요일 시에나의 가타리나 동정 학자(1347-1380) 기념일 사도4,32-37 요한3,7.8-15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난 교회 공동체 “참다운 우정의 사람들”     오늘 옛 현자의 말씀이 참 유익한 가르침이 됩니다. “본질에 가까워진 단순함 속에는 무수한 복잡함이 담겨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모든 과잉을 제거한 것이다.”<다산>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난 이들의 전형인 성인들의 단순한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문장이 경지에 이르면 기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적절할 뿐이고, 인품이 경지에 이르면 특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스러울 뿐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난 이들의 삶에서 목격하는 사실입니다. 특별하거나 별난 것은 결코 참된 영성의 표지가 아닙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귀한 진리가 반복됩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시공과 종파를 초월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구도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다.”   참으로 믿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한 하느님의 선물, 성령의 선물같은 귀한 품위의 우리 존재들입니다. 이런 품위의 삶을 살라고 눈들면 늘 파스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하늘길’이신 파스카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위로부터 선사되는 영원한 생명이 존엄한 품위의 삶을, 한 마음 한 뜻의 참다운 우정의 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