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22의 게시물 표시

김상우 바오로 신부님 == 1/4/2022(매일미사)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2022년 4월 1일 금요일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자) Friday of the Fourth Week of Lent] ===================================================== 제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2,1ㄱ.12-22 악인들은 1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살레시오회? ==31/3/2022== 주님 참기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탈출기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모세의 처지가 무척이나 안스러워 보입니다. 많은 경우 그의 처지는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서 있는 샌드백이나 동네북 같은 존재였습니다.    주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 사이의 대화가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신 주님께서는 백성의 대표 격인 모세를 불러 호통을 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트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기 32장 9~10절)    주님만 모세에게 진노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모세에게 화를 내고, 그를 괴롭혔습니다. 출애굽 이후 40년간의 광야 생활 내내, 여차하면 자신들의 리더인 모세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따졌습니다.   “대체 우리를 왜 그 좋은 땅 이집트에서 끌어낸 것이요? 그 잘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대체 언제 구경하게 되는 것이오? 대체 언제까지 이 밋밋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거요? 당신이 섬기고 받드는 주님이라는 자가 과연 있기는 한거요?”    이렇듯 모세는 주님과 백성 사이에 끼어 평생토록 마음고생, 몸고생 많이 한사람입니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차고 있던 완장 벗어 던지고 멀리 도망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무던한 사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끝도 없는 불평불만을 잘 인내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약속의 땅까지 그들을 잘 인도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그들을 잘 다독였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신과 우상숭배, 타락과 방황 앞에 주님께서도 가끔씩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간을 닮으신 분이시니,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로서의 감정을 지니셨고, 그런 배경...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1/3/2022 ==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 -예수님 알기, 살기, 닮기, 참나의 삶-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 -예수님 알기, 살기, 닮기, 참나의 삶-       어제 방문했던 30대 중반의 젊은이를 잊지 못합니다. 은둔적 삶을 살다가 지인의 권고로 수도원의 저를 찾았다 합니다. 대화 도중 성인이 되고 싶다 했고 이어 준 답변입니다.   “성인은 수도원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있습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좋고 깊은 관계 속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관계를 떠나서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공부하십시오, 일하십시오. 그리고 운동도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십시오.”   면담성사를 위해 수도원을 찾았던 분들에게 참 많이 강조했던 내용이 성인이 되라는 권고입니다. 믿는 이들의 궁극의 목표이겠습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비상한 별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 고유의 유일한 참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닮의 여정은 참내가 되어가는 성인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인이 되는 여정은 그대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저절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 넷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증언들을 제시합니다.   1.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5,33-35). 2.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입니다(5,36). 3.하느님 아버지의 증언입니다(5,37).   4.성경의 증언입니다(5,39).     이들보다 자명하고 확실한 증언은 없습니다. 모두가 예수님께 수렴되고 집중됩니다. 무엇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께 대한 최고의 증언입니다. 그러나 무지에 눈먼 유다인들은 주님을 믿지 못합니다. 참으로 무지에는 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유일한 답은 회개뿐인데 복음의 유다인들에게는 기대 난망입니다. 요즘 사순시기 새벽 성무일도시 계속되는 초대송 후렴입니다.   “주님의 목...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 31/3/2022 ==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미사 경본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 “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과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소서 .”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  성모님과 성요셉 ,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구하며 자비를 청합니다 .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는 이들만의 신앙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천국으로 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모든 성인들의 전구로 죄 중에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   단테는  ‘ 신곡 ’ 에서 지옥은 희망을 버리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  마치 별이 없는 밤하늘과 같다고 합니다 .  연옥은 그릇된 희망을 품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  우정을 배신한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황금으로 소를 만들어서 숭배했습니다 .  그릇된 희망을 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연옥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유다는 별이 없는 밤하늘과 같은 지옥을 체험했습니다 .  바빌론으로 유배 가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  그들에게 바빌론이 지옥이 아니라 ,  희망이 사라진 현실이 지옥이었습니다 .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희망을 걸었던 모세는 비록 광야에서 방황하였지만 ,  형 아론이 동족을 선동해서 황금 소를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31/3/2022 == 주님을 바라보며 또 주님 뜻에 맞게 사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유명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그렇게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특히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머리가 나빠서 졸업이나 할지 모르겠다.”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머릿속에 간직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이 말을 마음에 새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러자 더 열심히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판단이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 아주 유명한 강사가 되었습니다. 종종 어렸을 때의 말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을 봅니다. 그 말로 인해 자신이 성장할 수 없었다면서 분노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늘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말이면 담고, 필요하지 않으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나’였습니다. 다른 이의 판단이 100% 옳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 안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다른 이의 판단에 무조건 동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자기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반대자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백성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뛰어난 학식이 있었고,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은 100% 틀렸습니다. 율법서에는 어떤 사람을 죄인으로 고발하려면 적어도 한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일 경우에는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조항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고발할 때 적용될 조항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위 증언은 당신의 신성을 증명하는데 요구되는 사항이 아니며,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굳이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당신의 신성을 증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증명을 세례자 요한, 예수님께서 행한 여러 가지 기적, 하늘에 계신 아버지 자신, 마지막으로 성경을 통해 증명하...

반 신부의 복음 묵상 == 31/3/2022 == 눈 먼 열심

  사순 제4주간 목요일(요한 5,31-47)   눈 먼 열심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풍성한 수확도 기대할 수 있으니 신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열심히는 하지만 눈먼 열심으로 쉽게 지치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 안에 화를 쌓게 됩니다. 따라서 참된 열심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5,39-40). 유다인들은 열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하느님에 관해서, 메시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루두루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심지어 하느님의 의를 세우고 하느님의 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예수님을 처형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연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헛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도 참 바쁘게 움직이며 많은 일을 합니다. 또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는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하느님 마음에 꼭 드는 일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우리는 실상 많은 일을 하면서도 주님의 일에는 소홀합니다. 많은 지식을 쌓으면서도 주님을 진정으로 마음에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서적을 보는 시간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신심서적을 읽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합니다. 텔레비전 앞에서는 몇 시간을 보내지만, 성경을 펴들고 있는 시간은 너무도 미약합니다.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살자"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

정진만 안젤로 신부님 == 31/3/2022(매일미사)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22년 3월 31일 목요일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자) Thursday of the Fourth Week of Lent] ===================================== 제1독서 <주님,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30/3/2022== 평안(平安)에 이르는 법: 평화와 안식의 차이

  2022년 다해 사순 제4주간 수요일     < 평안(平安)에 이르는 법: 평화와 안식의 차이 >      복음: 요한 5,17 -30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어제는 예수님께서 벳자타 연못에서 38년 동안 병을 앓던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은총과 진리’를 통해서였습니다. 40에 이르렀을 때 하느님의 양이 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이 하는 하느님의 일이란 이렇게 동물을 새로 태어나게 하여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이때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고 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요한은 안식일의 의미가 사실 주일에 일하지 않고 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오늘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은 아담의 일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예수님은 이렇게 안식이 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 하십니다. 여섯째 날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일곱째 날을 맞을 수 있게 됩니다.          안식을 우리말로 한다면 ‘평안’(平安)이 제일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평안은 평화와 안녕, 혹은 안식이 합쳐진 말입니다. 안식일에 도달하려면 먼저 평화를 찾아야 합니다. 평화를 찾았다고 안식에 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처럼 일해야 합니다.          평화와 안식은 조금 다릅니다. ‘평화’는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으셨음을 알고는 평화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은 그렇게 하신 분처럼 나도 자녀로서 따라 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행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