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1/7/2025=== 여러분에게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있는지요?

어릴 적,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자리를 조심스럽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책상이 놓인 단순한 공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겐 존경과 경외의 상징이었습니다. 탁자 위에는 아버지가 쓰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리에는 함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있을 때나 아버지가 없을 때나 아버지의 자리는 늘 조심해서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아버지에 대한 경외를 알려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탁자 앞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였고, 글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은 아버지의 탁자 주위에 둘러앉아 기도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자리는 성당 안의 감실(龕室)과 비슷했습니다. 감실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습니다. 교우들은 감실을 바라보며 기도 하고, 교우들은 감실 앞을 지날 때는 예의를 표합니다. 아버지의 자리와 감실은 성경에서 보면 ‘장막’과 비슷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실을 둘러싸는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감실은 바로 교회의 원형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이냐시오 성인은, 이런 하느님의 영광을 온 삶으로 드러낸 분입니다. 그는 병상에서의 회심을 계기로, 세속의 영광에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Ad Majorem Dei Gloriam)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영신수련'이라는 귀한 기도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 역시 2000년부터 영신수련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매주 200킬로미터를 왕복하며 기도 모임에 참석했던 그 시간은, 땅속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뿌리처럼 내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려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31/7/2025

이미지
 

김태훈 리푸죠 신부님 = ==31/7/2025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2025년 7월 31일 목요일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백) Memorial of Saint Ignatius of Loyola, Priest]   오늘 전례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에스파냐 칸타브리아의 로욜라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느끼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여 오랫동안 총장직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께서 그를 시성하셨다. 제1독서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40,16-21.34-38 그 무렵 16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7 마침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18 모세는 성막을 세우는데, 먼저 밑받침을 놓은 다음 널빤지를 맞추고 가로다지를 끼운 뒤, 기둥을 세웠다. 19 또 성막 위로 천막을 치고 천막 덮개를 그 위에 씌웠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20 그런 다음 증언판을 가져다 궤 안에 놓았다. 그 궤에 채를 끼우고 궤 위에 속죄판을 덮었다. 21 또 궤를 성막 안에 들여놓고 칸막이 휘장을 쳐서 증언 궤를 가렸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34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5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 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6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모든 여정 중에,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났다. 37 그러나 구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구름이 올라가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다. 38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30/7/2025=== 마태 13,44-46: 밭에 묻혀있는 보물

  연중 제 17 주간 수요일 복음 :  마태  13,44-46:  밭에 묻혀있는 보물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 (44 절 )     밭에 숨겨진 보물은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 ,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  이 보물을 가지려면 밭을 사야 한다 .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라도 밭을 사야 하는 것처럼 ,  하늘나라의 보물은 세상의 것을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    세상의 것이란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들로 ,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 .  밭이란 성경이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  밭으로 오는 사람은 그 안에서 보물인 지혜를 찾는다 .  신앙인은 성경을 알려고 노력하며 ,  예수님을 따르려 애쓰는 가운데 보물을 발견한다 .  보물을 숨기고 있는 밭이 그리스도라면 ,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 .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를 것이다 .  거기서 보물을 차지하게 된다 .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을 합당한 비싼 값을 치르고 살 수 있게 된다 .   값진 진주는 살아계신 말씀이다 .  하느님의 자녀들은 다른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어도 영원한 삶이라는 진주를 찾는다 .  하느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 은총으로 하느님을 알아보고는 과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고 그분만을 따르게 된다 .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면 인간은 속된 욕망에서 돌아서게 한다 .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면 율법과 예언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이처럼 거룩한 삶의 아름...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30/7/2025=====참보물 찾기 “오늘 지금 여기가 보물밭입니다”

  2025.7.30.연중 제17주간 수요일                                                              탈출34,29-35 마태13,44-46     참보물 찾기 “오늘 지금 여기가 보물밭입니다”     “그지없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시편18,2)   여러분은 보물을, 참보물을 갖고 있습니까?  보물이라 다 보물이 아닙니다. 가짜 보물이 아니라 진짜 참보물입니다.   평생을 어리석게도 참 보물엔 관심이 없고 그냥 별 생각없이 본능의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가짜 보물을 진짜 보물인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참보물을 발견하고 소유하여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니 정말 천차만별의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하늘 나라의 비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비유들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에 이어 오늘 복음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인 보물의 비유와 진주상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읽을 때 마다 생생히 그립게 떠오르는 옛 시골 초등학교 시절 봄과 가을, 두차례의 소풍때 보물찾기 놀이의 추억입니다. 가을 운동회와 더불어 소풍은 어릴 때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정말 흥겹고 가슴설레는 경우였습니다. 50-60년대 시절의 농촌 시골은 가난했지만 대부분 평등했고 쓰레기들 전혀 없는 무공해의 자연에 마음 또한 풍요롭고 행복했습니다. 말그대로 ‘...

김찬선 신부님 ==30/7/2025 ===한 눈 팔지 않기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오늘 복음을 묵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왜 이 시편이 떠올랐을까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한 번 맛보았다면! 하느님의 좋으심을 한 번이라도 눈여겨봤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다른 것에 눈길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눈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참에 <한눈팔다>는 말을 눈여겨봤습니다. 우리말이 참 재미있지요?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흔히 쓰는 우리말에 담긴 뜻들이 새롭습니다.   <한눈팔다>는 말은 한 눈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두 눈을 다 한 곳으로 모아, 봐야 할 것을 눈여겨봐야 하는데 한 눈은 다른 곳에 팔아 눈길이 갈려 봐야 할 것을 눈여겨보지 못함입니다.   그런데 왜 한눈을 팔겠습니까? 그것도 좋고, 그것도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꽃에 저절로 눈길이 가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찌 나쁘다고 하고, 이렇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을 또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어찌 그리 아름다워 하느님을 가리느냐고 여인을 나무랄 수 있습니까, 그 아름다움에 한눈이 팔리는 저의 행위를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굳이 나무란다면 이 아름다움에서 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거지요. 꽃의 아름다움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가리지도 않고 감추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오히려 하느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실지 상상케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맛의 둔함과 우리 눈의 어리석음으로 하느님의 좋으심이 종종 이 세상 좋은 것들에 가리고 묻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