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1/2026

이미지
 

이철구 요셉 신부님 == 1/1/2026==[(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2026년 1월 1일 목요일  [(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백) Solemnity of Mary, the Holy Mother of God The Octave Day of the Nativity of the Lord] 오늘 전례 교회는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날짜에 기념해 오던 이 축일은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인 1931년부터 보편 교회의 축일이 되었고, 1970년부터 모든 교회에서 1월 1일에 지내고 있다. 또한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1968년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함에 따라 교회는 이후 해마다 이를 기념하고 있다. 오늘은 새해 첫날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새해 첫날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냅니다. 올해도 우리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시다.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4,4-7 형제 여러분,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31/12/2025==“어떻게 살아야 하나?” <예수님을 닮아 하느님의 자녀답게>

  2025.12.31.수요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1요한2,18-21 요한1,1-18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예수님을 닮아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1요한4,9)   오늘 미사중 위 영성체송이 참 좋습니다. 인간답게, 추상적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구체적입니다. 에수님을 닮아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1,12).   오늘은 12월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차이자 2025년 마지막 날입니다. 1월1일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참으로 진지하게 2025년 한 해를 성찰하려 합니다. 역시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기적은 힘차게 내디딘 첫걸음에서 시작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내디딘 마지막 걸음에서 완성된다.”<다산> 그동안 많이 인용했던 조선 제1천재라는 정조대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다산 정약용의 말입니다. “한 삼태기의 흙을 더 붓지 않아 산을 못 만든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 평지에서 시작하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논어> 끝까지 책임을 다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온 공자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공자가 다산의 롤모델이었음을 봅니다. ...

김찬선 신부님 ===31/12/2025===== 욕망대신 갈망으로 Sjjbona Published • Dec 31 김찬선 신부님 0  7 

  “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첫 장으로서 성탄 대축일에 읽었던 것을 한해의 끝자락인 오늘 다시 읽는데 한처음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화하시어 찾아오심을 얘기합니다 .   그러니까 매우 장엄한 역사 서사인데 마침 한해의 끝자락에 이 말씀을 읽으니 한해의 끝에서 미시적으로 보지 않고 거시적으로 한해를 돌아보게 합니다 .   왜냐면 주님께서 말씀이자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는데 우리는 한해를 빛 속에서 살았는지 아니면 어둠 속에서 살았는지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   우선 빛이 세상이 왔는데 그리고 우리를 비추고 있는데 세상은 빛을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   그러면서 왜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했냐 하면 빛을 어둠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   “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   그러니까 빛이 찾아오기 전에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었고 , 그래서 어둠을 밝히려 빛이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지만 세상은 빛을 깨닫지 못했기에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 우리가 어둠 속에 있거나 우리 안에 어둠이 있다면 어둠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우리 안에 없는 것이고 , 빛이 우리 안에 없다면 빛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올 한해를 돌아보며 반성한다면 곧 우리가 한 해 동안 왜 어두웠을까 반성한다면 어둠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지 말고 빛의 주님께서 아니 계신 데서 찾아야 합니다 .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어두울 수 있습니다 . 죄를 짓고 죄책감 때문에 어두울 수 있고 ,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어두울 수도 있으며 , 사이가 안 좋은 사람 때문에 내내 어두울 수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빛의 주님...

양승국 신부님 ===31/12/2025==== 주님 은총으로 충만한 한해를 마무리하며...

  주님 은총으로 충만한 한해를 마무리하며...   또다시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런저런 고통과 시련의 파도에 힘겨웠던 한해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은총으로 충만한 한해였습니다. 비록 이런저런 상처와 결핍, 부끄러움과 회한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젊은 사제 시절이 생각납니다. 도움이 필요한 아동 양육 시설에서 생활할 때였습니다. 불과 유난히 가까이 지냈습니다. 가출한 한 아이들이 마땅히 잘 데가 없다 보니 문구사를 뚫고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한밤중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니, 너무 추웠던지, 불을 피우고 자다가 문구사를 홀라당 태워 먹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아이를 빼내느라 상상을 초월하는 합의금을 지출했습니다.   한번은 한 아이가 버린 담배꽁초로 인해 생활 시설 한 층이 홀라당 타버렸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후라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건들이 모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애지중지했던 것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니 그 허탈감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아이를 향한 분노로 제 마음이 이글거렸습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괴로웠습니다.   괴로워하던 제게 한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인명피해 없는 것이 어디냐? 감사할 줄 알아야지!” 그 순간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 순식간에 감사와 찬미의 노래로 뒤바뀌었습니다. “맞아! 이만하길 다행이지!”    저는 즉시 마음을 바꿔먹고 불난 층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 부르지 않고 복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불탄 천장 재료들 잔뜩 싣고 와서 조금씩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도배도 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혼란의 순간, 제 머릿속에는 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슬퍼하는 난민들, 강제 이주민들,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의 고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

빠다킹 신부님 ===31/12/2025==세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한 해는 저물지만, 영원하신 말씀은 시간의 시작이자 마침이라는 것입니다.

  2025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요즘이야 거의 모든 분이 아파트에 사시지만, 예전에는 거의가 주택에 살았습니다. 저 역시 주택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아파트에 살기 직전의 주택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이 저와 제 바로 위의 형님과 함께 지내는 방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아주 낮은 다락방이었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좁고 아늑한 곳을 좋아합니다. 엄마 뱃속에 열 달 동안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요? 그래서 굳이 식탁 밑이나 책상 아래 공간에 들어가서 놀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제게는 좁은 공간인 이 다락방이 너무나 편안했고 좋았습니다.   자기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화력하고 멋질 필요는 없습니다. 보호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머물러야 어렵고 힘들 때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이런 공간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이들은 모두 당신께 오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세상의 공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면서 계속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십니다. 무조건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전례는 12월 31일이라는 시점과 맞물려 우리에게 ‘처음과 끝’을 묵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독서에서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1요한 2,18)라고 말하고, 복음에서는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라고 전해줍니다.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한 해는 저물지만, 영원하신 말씀은 시간의 시작이자 마침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어둠 속의 빛이십니다(요한 1,5 참조).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 주님께서는 어둠을 이기기 위해 빛으로 오신 것입...

함 승수 신부님==31/12/2025===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오늘은 2025년 1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2026년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날이지요.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지는 하루고, 그 하루에 하는 일도 특별히 다를 게 없는데,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는 왠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각자 마음을 어느 쪽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그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지겠지요. 저처럼 또 한 살 먹었다고 서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26년이라는 새하얀 시간의 도화지를 선물받았다며 마음이 설렘과 기대로 가득찬 사람도 있을 겁니다. 기왕이면 곧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 후자쪽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분 뜻을 충실히 따라 살아감으로써 참된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채우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처음’ 즉 이 세상의 시작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한 처음’에 하느님이 계셨고, 그분과 같은 신적 본성을 지니신 ‘말씀’이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원하시는 그대로 실현하는 분이십니다. 그 말씀 덕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지요. 요한 복음사가는 바로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되었다’로 번역된 부분은 직역하면 ‘살을 취하다’라는 뜻으로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의 부족함과 약함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사셨다’로 번역된 부분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장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거주했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잠깐 다녀가신 게 아니라 우리 가운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시고 기쁨과 슬픔, 아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