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6/3/2026==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신원과 아브라함”
2026.3.26.사순 제5주간 목요일
창세17,3-9 요한8,51-59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신원과 아브라함”
“주님은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네”(시편105,8).
봄마다 거기 그 자리 정주의 꽃자리에서 피어나는 민들레, 제비꽃, 수선화 등 일제히 피어나기 시작한
파스카의 봄꽃들 축제의 환대가 반갑고 고맙고 기뻤습니다.
<제비꽃>을 보는 순간 옛 자작시가 생각났습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 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2001.4. >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신원을 묻는 요즘 계속되는 요한복음의 질문이요 이에 대한 답은 <예수님은 봄이다>,
제가 내리고 싶은 예수님께 대한 정의입니다.
얼마전 인용했던 해마다 파스카의 봄만되면 떠오르는 제 반가운 <예수님은 봄이다>라는 자작시입니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
봄이 입맞춘 자리마다
환한 꽃들 피어나고
봄의 숨결 닿은 자리마다
푸른 싹들 돋아난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1999.3. >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니 봄안에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봄이 상징하는 예수님 안에 모두가 다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복음의 <예수님과 아브라함>의 주제로 아브라함 전부터 계신 분 예수님에 대한 치열한 설전이 펼쳐집니다.
또 제1독서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정체에 대해 환히 밝혀줍니다.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폭탄 같은 파급력을 지닙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이들은 생사를 넘어 영원한 삶을 누리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란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거의 하느님과 동격에 놓는 예수님 말씀에 유다인들의 거친 항의가 이어지자 재차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지키는 일이 얼마나 근본적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이 점입가경 절정에 이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오늘 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뤄지는 놀라운 축복을 예고하는데,
바로 이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교회를 통해 계속 실현됨을 봅니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 것이다.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여기서 창세기 17장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얼굴을 땅에 대고 웃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이 내용을 바탕한 위 오늘 요한복음 8장 56절입니다.
유다 랍비들은 이삭의 탄생의 날을 생각하며 아브라함이 기뻐했다 하나, 요한과 그의 공동체는
하느님 약속의 실현이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실현됐음을 아브라함이 기뻐했다 해석합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다 하며 예수님 선재를, 신적 존재를 확인시켜 줍니다.
영문 대목을 보면 분명히 깨닫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Before Abraham came to be, I AM)”
바로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 “I AM”언제나 영원토록 현존하는 하느님 같은 예수님이요
아브라함에 앞선 분임은 너무나 당연하고 요한 공동체는 그렇게 믿었고, 우리 또한 그렇게 믿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원을, 정체를 분명히 해줍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신적 존재 하느님이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을 신성모독이라 하며 돌을 던지려 했을 때 오늘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참 심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이 부분에 대한 심오한 주석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인간성 안에 자신을 숨기셨다.
예수님 안의 신성은 대부분 감춰져 있었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그의 영적수련에서 수난의 참혹한 시간 동안
신성이 감추어져 있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성전에서 나가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막혀 죽으셨을 때 성전의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갈려져
세상에 거룩한 내부 성소가 드러났다.
하느님은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다. 성전을 떠나셨다.
이제 그분은 새로운 성전, 더 이상 건물이 아니라 백성,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거하신다.”
이래서 언제 어디나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계신 그리스도의 몸 공동체가 참된 교회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파스카의 봄철, 봄인 예수님은 만물을 생명과 빛으로, 희망으로 완전히 충만케 하심으로
<우주교회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 주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가 봉헌되는 곳마다 탄생되는 파스카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몸> 교회공동체입니다.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4).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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