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4/4/2026===주님께 배운 다섯 가지 근본적 “물음과 답” Sjjbona Published • Apr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0 7
2026.4.4.성토요일 파스카 성야
제1부 빛의 예식
제2부 말씀 전례
1.창세1,1-2,2 2.창세22,1-18 3.탈출14,15-15,1ㄱ4. 이사54,5-14
5.이사55,1-11 6.바룩3,9-15.32-4,4 7.에제36,16-17ㄱ.18-28
로마6,3-11 마태28,1-10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축, 예수님 부활!”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길 빕니다.
화답송 후렴에 이어지는 시편도 주님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듯 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1)
이 구절은 제가 즐겨 부르는 시편 성구이기도 합니다.
어제 성금요일 저는 참 반가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이기에 기쁨은 참 각별했습니다.
즉시 보낸 답신입니다.
“경애하올 최대환 신부님!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신부님의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 귀한 책 선물 감사합니다.
선물 받으니 힘이 납니다. 뜻밖의 선물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부활 선물처럼 반갑고 고맙고 기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주님 수난 성 금요일 강론 나눕니다.”
이어 받은 신부님의 답신입니다.
“깊은 묵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나마 작은 즐거움이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기쁜 부활되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선물중의 선물이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요, 이중 가장 큰 전무후무한 하느님의 선물이 예수님 부활의 선물입니다.
위 선물 받은 책 맨 마지막,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듯한 글귀가 생각납니다.
“삶의 죽음의 문이요, 죽음은 삶의 문이다(Vita ianua mortis, mors ianua vitae).”<에픽테토스>
삶과 죽음이 하나인 영원한 삶의 경지를 말해주는 진리 말씀입니다.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오늘 제2부 말씀전례중 일곱의 깊고 아름다운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들이 온통 하느님 사랑의 위업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말씀들이 가슴 떨리는 감동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위업중에 위업이요 결론이 바로 예수님 부활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이 하나로 찬연한 빛을 발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하느님 감사합니다.”
빛의 예식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빛임을 장엄하게 고백했습니다.
이어지는 파스카 찬송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요!
세상에 이보다 아름답고 살아 있는 찬송가는 없을 것입니다.
어제 끝기도시 응송도 새삼스런 감동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도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도다.”
사랑의 하느님은 신실하십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당신 아드님의 부활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위업이 절정이요 결정판이 예수님 부활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무덤문을 박차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런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비로소 삶의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벗어나 살맛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부활하신 인류의 빛,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이 삭막한 광야인생 무슨 맛, 무슨 기쁨,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런지요?
바야흐로 만개하게 시작한 파스카 부활의 봄꽃들도 주님 부활을 경축하는 듯 어제 <십자가의 길>중 떠오른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고백글입니다.
“나무들
젊거나 늙거나
봄마다 피어나는 꽃은 똑같다
늘 새롭다
살아 있는, 죽는 그날까지
늘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 사랑의 파스카 봄꽃 인생이고 싶다”<2026.4.3.>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세월 흘러 나이들어도 늘 영원한 청춘의 영혼으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마음 안에 네가지 주님 부활의 진리를 각인시켜 주십니다.
첫째, <승리>입니다.
삶은 전쟁입니다. 영적전쟁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우리의 삶은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삶입니다.
바로 주님 부활은 죽음과 죄악, 무지와 허무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말해 줍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천하무적, 백전백승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장엄한 선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둘째, <희망>입니다.
희망중의 희망은, 궁극의 진짜 희망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샘솟는 희망이요 기쁨입니다.
짙은 구름 넘어 빛나는 태양처럼 희망의 태양이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요,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우리를 초대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반영하는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셋째, <영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할 때 생사를 넘어 영원한 삶, 영생의 삶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이 부활하신 주님 말씀처럼 들립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의 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살 때, 영원한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세례성사가 이 진리를 분명히 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고, 그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아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넷째, <천국>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안에 계시지 않고 우리 삶의 현장을 상징하는 갈릴래아에 계십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 곳 갈릴래아 바로 거기 삶의 제자리가 천국입니다.
반대로 주님 계시지 않으면 어디나 감옥이요 무덤이 됩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할 갈릴래아는 지금 여기 내 삶의 제자리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는 물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 천사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꽃자리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할 천국입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사랑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당신이 함께 계신 갈릴래아요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늘 함께 계시니 영적 승리의 삶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맛나는, 기쁘고 희망찬 인생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길 빕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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