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8/2/2026==하닮의 여정 "평생과제; 완전한 사람"

 2026.2.28.사순 제1주간 토요일                                                           

신명26,16-19 마태5,43-48

 

 

하닮의 여정

"평생과제; 완전한 사람"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시편119,1)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이란 물음만 있고 답인 하느님을 찾지 못하면 뿌리없는 방황과 표류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불행의 원인은 이런 하느님을 잊은데 있습니다.

진정 영적건강은 이런 하느님이 궁극의 꿈이자 희망, 비전이 될 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어제 지인과 대화하면서 이 사실을 직시하고 개탄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왜소해졌습니다. 자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에 있던 참행복의 원천인 하늘을, 하느님을 품고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살면 됩니다.

이런 궁극의 꿈이자 희망이요 비전인 하늘을, 하느님을 잊었기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언제 어디서나 하늘을 품고 살라고 직립인간에 눈들면 하늘입니다.

어제 소개받은 신선호의 <조용한 붕괴; 교실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상군'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 책의 개요입니다. 

 

“정서적 빈곤의 현실, 95% 정상군 학생이 소리없이 무너진다.

역사상 가장 새로운 세대이자 고립된 세대의 요즘 학생들이다.

정상군 학생들은 언제부터 지쳐갔을까.

흙먼지 나는 놀이터 대신 예측 불가능을 허용하지 않는 학원 동선에 갇혀 실패할 수 있는 권리와

정체성 탐색의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은 성장통을 도둑 맞았다. 

 

스크린을 통해 뇌와 마음을 공격하는 심리적 감염병과 같은 디지털 펜데믹까지 덮쳐 몸도 마음도 소진되었다.

복합외상후 성장장애라는 진단에 대한 대책은 방황할 권리, 실패할 권리, 몸으로 부딪칠 권리,

지루해할 권리, 질문할 권리등 모두 멈춰버린 아이들의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할 핵심요소다.”

 

비단 정상군 학생들뿐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와 만남을 상실한 작금의 디지털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처방이기도 합니다.

정녕 궁극의 꿈이자 희망. 비전인 하늘에, 하느님께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을수록 사람다워집니다. 

 

오늘 제1독서 신명기도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 바로 우리의 신원이자 정체성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아갈 때 참나의 실현이요 참 행복입니다.

신명기 독서중 수차례 반복되는 말마디가 <오늘>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바로 오늘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야 주 우리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규정과 말씀들을 명심하여

실천하라 하십니다.

이래야 살아 계신 사랑의 하느님 체험에 참나의 실현이요 참행복입니다.

봄이 되면 떠오르는 <민들레꽃> 시입니다.

“봄님이 오셨네요!” 어제 봄사진과 더불어 지인이 보내준 말마디가 신선했습니다.

봄님, 하늘님, 주님을 떠올리게 하는 <민들레꽃> 두 시입니다.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2000.4.24.>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뒤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2001.4.16.>

 

이 민들레꽃 시를 써놓고 얼마 동안 구원의 기쁨에 깨어 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늘을 품고 살아야 비로소 살아나는 참나에 참행복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에 나오는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마라”는

두 가르침도 참 신선한 깨달음이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이자 사랑, 자랑이듯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또한 하느님의 희망이자 사랑이, 자랑이 됩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수준이 참 높습니다.

신명기의 하느님 백성에 대한 규정과 법규의 요약과 같은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여섯 대당명제중 마지막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문득 새벽에 읽은 옛 현자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탁월함이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다산>

“고요할 때 텅 비면 밝고, 밝으면 통한다. 움직일 때 곧으면 공정해지고, 공정하며 넓다.

이러한 상태는 탁월함에 가깝다.”<통서>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찾고 닮아갈 때 이런 탁월한 영성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정도라면 이런 탁월함에 도달한 이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주님의 화답입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이런 원수 사랑은 연인간의 성적 육적 에로스 사랑을, 친구간의 필로스 사랑을 넘어선 선인이든 악인이든

인간 모두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뜻하는 아가페 사랑, 대자대비 하느님을 닮은 사랑입니다.

이어 동호인들의 사랑같은, 유유상종 끼리끼리 주고받는 이기적 사랑을 참으로 부끄러워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지막 주님의 결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기대수준의 절정을 보여주는 평생과제요 목표가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평생과제 수행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시편119,2).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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