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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1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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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님 ===1/12/2025==[(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

  2025년 12월 1일 월요일 [(자)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자) Monday of the First Week of Advent] 제1독서 <생존자들에게 자랑이 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2-6 2 그날에 주님께서 돋게 하신 싹이 영화롭고 영광스럽게 되리라. 그리고 그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에게 자랑과 영예가 되리라. 3 또한 시온에 남은 이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이들 곧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이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리라. 4 주님께서는 심판의 영과 불의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시고 예루살렘의 피를 닦아 내신 뒤에 5 시온산의 모든 지역과 그 회중 위에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타오르는 불길로 연기와 광채를 만들어 주시리라. 정녕 주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지붕과 6 초막이 되어, 낮의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어 주고 폭우와 비를 피하는 피신처와 은신처가 되어 주리라.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30/11/2025===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오신다!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주님께로 가자!”

  2025.11.30.대림 제1주일                                                           이사2,1-5 로마13,11-14ㄱ 마태24,37-44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오신다!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주님께로 가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Happy new year to all!)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영어로 하니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 시기를 라틴어로 <아드벤투스adventus>로 부릅니다. 그 뜻은 단순히 <오심coming>이라는 뜻입니다. 한자로는 <대림待臨;주님 임하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예전 외방전교회 문세화 신부님이 강의 도중 <임재臨在>란 말마디가 기막히게 좋다는 고백이 생각납니다. 이미 오셔서 함께 하시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느님”   바로 이것이 복음이요 대림시기의 기쁨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을 능가할 기쁨은 없습니다. 말그대로 설렘의 기쁨입니다. 주님 성탄의 오심만 있는게 아니라, 마지막 종말의 재림의 오심도 있고, 날마다의 오심도 있습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뿐 아니라 수시로 필요할 때 마다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 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대림시기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매일이 대림시기입니다.  제가 대림시기동안 늘 짧은기도로 부르는 오늘 아침기도 첫째 후렴입니다.   “그날에 모든 산에서 단 ...

김찬선 신부님 ===30/11/2025=====자, 이제

  대림절이란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오심과 우리의 기다림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아서도 안 되고, 우리가 기다리는데 주님께서 오시지 않아도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맞아떨어지기 위해서는 주님이 오실 때를 우리가 모르니 우리가 깨어 있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오늘 주님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 예측 불가능하게 변덕스럽게 오시는 겁니까?   요놈들 기다리나 안 기다리나 한번 봐야겠다! 아무 때나 가도 잘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그리고 잘 기다리면 떡 주고 안 기다리면 콩고물도 없다! 주님께서 뭐 이러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주님 오심은 들쑥날쑥하거나 변덕스럽지 않고, 확실하다 못해 약속 시간에 먼저 나와 기다리시듯 우리를 오히려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실은 우리가 기다리는 때가 오시는 때이고, 우리가 가는 때가 주님을 만나는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우리보고 가자고 합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그리고 가자고 하면서 “자” 하고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자”라는 말은 어떤 때 쓰는 말입니까?   “자, 자, 자”라고 하는 것은 마구 떠들어대거나 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편으로는 그들이 하던 짓을 멈추게 하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상을 정리하면 대림절의 실제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언제 오실 것이 아니라 이미 약속 장소에 와계십니다. 둘째로 그러므...

양승국 신부님 ===30/11/2025===== 기다림의 참된 의미!

  기다림의 참된 의미!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우리는 또 다시 대림시기의 출발점에 서있습니다.    저녁 식탁에서 한 형제가 이제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데, 공동체 차원에서 뭔가 절제하고 보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갑자기 다들 알쏭달쏭해졌습니다. “뭐지? 대림 시기에도 그랬었나? 아닌 것 같은데, 맞나?”   물론 교회 역사 안에 그런 흔적이 있었습니다. 중세기 교회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대림절 동안 사순절 못지않게 속죄와 단식, 금육과 고행을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단죄와 심판을 위한 날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대림절 동안 참회와 속죄가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습니다. 대림 시기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동시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어찌 보면 대림 시기는 한 달간 지속되는 단기 영성 학교입니다. 이 기간동안 교회는 신자들에게 희망에 찬 기다림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물론 대림절 동안 육화 강생의 신비와 구세주 하느님의 지극한 겸손에 깊이 감사하며, 그에 합당한 성찰과 준비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림 시기 동안, 성경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될 회개와 보속에로의 초대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림 시기에 더 강조되어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강생하신 놀라운 사건 앞에 경탄하고 기뻐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라는 은혜로운 대축제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기가 곧 대림 시기인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말 마디 그대로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관건은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입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가장 간절하게, 또 절박하게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기다렸던 때는 언제였던가?...

빠다킹 신부님 ===30/11/2025==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2025년 11월 30일 대림 제1주일     영국 경제학자 메리디스 벨빈은 뛰어난 인재로만 조직된, 이른바 ‘아폴로 팀’을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 아폴로 팀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뛰어난 인재들은 그 누구도 서로의 의견에 설득되지 않으면서, 다른 팀원의 주장에서 맹점만을 찾아냈습니다.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논쟁만 벌이다가 시간만을 허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집단의 성과가 오히려 낮은 현상을 ‘아폴로 신드롬’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드림팀이라 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만 있어도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나갈 때 최고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게 됩니다.   종종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사람에게 대단한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과연 최고의 결과가 나올까요? 아닙니다. 함께하려는 공동체만이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았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까지 제자로 뽑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사랑으로 함께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날과 그 시간의 불확실성과 깨어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본질을 상기시킵니다. 먼저 노아의 때를 이야기하시지요. 그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습니다. 이를 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일상적인 삶에 푹 빠져서 하느님의 뜻을 간직하며 살지...

이 영근 신부님 ====30/11/2025===“깨어 있어라.”(마태 24,42)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이 시기의 큰 주제는 ‘깨어있음’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도 ‘깨어있음’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 (37-41절) 는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혹스런 일로 여겨집니다. 대체, 끔찍하고 잔인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를 말씀하시면서, 그때 그 사람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심판을 받은 그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곧 마구 먹고 마시는 사람들, 장가들고 시집가는 사람들, 들에 있는 사람들, 맷돌질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노아의 홍수가 사람들의 타락 때문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안일한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타성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평범한 일상의 굴레에 젖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는 죄를 피한다할지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선과 정의로 진리 편에서 이를 행하고 투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빛에로 나아가야 하고, 항상 빛 가운데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것이 ‘깨어있음’ 의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집주인과 언제 올지 모르는 도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 지 집 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마태 24,43) 이는 어느 한 순간도 주의와 경계를 늦추지 말고, 언제 어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