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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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훈 바오로 신부님 = ==31/10/2024 ===(백) 모든 성인 대축일]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백) 모든 성인 대축일] [(백) Solemnity of All Saints] ================================== 오늘 전례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따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린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어 609년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5월 13일이었는데, 9세기 중엽에 11월 1일로 바뀌었다. 교회는 이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사이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성인들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며 영원한 행복을 누립니다. 하늘 나라의 성인들을 기리며 전구를 청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굳게 믿는 우리도, 희망을 안고 성인들처럼 하느님을 뵐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갑시다. 제1독서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양승국 신부님의 복음 묵상 ==31/10/2024 === 큰 희생과 자기 포기, 인내와 사랑을 요구하는 좁은 문!

  큰 희생과 자기 포기, 인내와 사랑을 요구하는 좁은 문!   참으로 특별한 이력을 지닌 우리 시대 탁월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가톨릭 신학자인 스콧 한(Scott Hahn)입니다. 그는 원래 미국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런 스콧 한이 1986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가톨릭 신자로 회심했습니다. 그의 개종은 수많은 개신교 목사들과 성경 학자들의 개종으로 이어져 한동안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때 세상의 재미에 푹 빠져 정신없이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을 계기로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지난날들을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하느님께로 돌아섰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변한 사람을 보고 주변 사람들 가만있지 못합니다. 다들 한 소리씩 합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저 양반 갑자기 왜 저러지? 뭘 잘못 먹었나?”   그는 당시의 고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헌신하기로 다짐한 지 약 한 달이 지나자 나는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하느님께 대들었다.   “주님, 저는 제 삶을 당신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친구들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무슨 처사가 이렇습니까?”   친구들은 갑자기 변한 저를 도무지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이런 말을 남기고 다들 떠나갔습니다.   “너는 변했어. 우리는 더 이상 너하고 어울리고 싶지 않아. 잘 먹고 잘 살아라!”(스콧 한, ‘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라’, 바오로 딸 참조)   좁은 문,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처음 직면하는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을 선택한다는 것, 그리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는 것, 사실 말이 쉽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넓은 문 쪽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세상의 것들은 그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모릅니다. 얼마나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이영근 신부 님의 복음 묵상 == 31/10/2024==자진하여 당신의 길을 가심

  <자진하여 당신의 길을 가심>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음에 직면하신 장면’과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신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루카 13,31) 바리사이들의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예수님께 호의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여행을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라고 지칭하시면서 그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루카 13,32) 예수님께서는 그 어떠한 인간적 장애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계획과 당신의 사명 수행을 관철’하십니다.  곧 당신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진하여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루카 13,33) '가야 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다는 것’을,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하신다.’는 말씀은 그분의 뜻에 따라 ‘당신의 삶을 완성하시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자진하여 당신의 길을 가심’을 밝히십니다. 곧 담대하고 의연하고 결연한 의지로 당당하게 당신의 길을 가실 것을 밝히십니다.   마치, 최초...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1/10/2024 ==영적 전쟁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3-4)   오늘은 묵주기도성월 10월의 끝날이자 내일은 11월 위령성월의 첫날이자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입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입니다. 어느때 보다도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시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절박한 시절입니다.     강론쓰기전 인터넷 뉴스를 일별하면 온통 어둔 소식들에 힘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국내외가 온통 전쟁이야기들이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무지의 어리석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희구하는 인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인류와 함께 시작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사는 그대로 전쟁사처럼 생각됩니다. 며칠전 교황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부단히 성령의 선물인 평화를 역설하여 전쟁중단을 호소하는 교황입니다.   “누구도 전쟁에서 승리는 없다. 모두가 잃는다. 전쟁은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패배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전쟁에 희생된 이들이 참 많다. 아이들과 가정들이 첫째 피해자들이다. 오늘은 10월29일이고 지난 19일동안 필레스틴에서는 770명이 죽었다.”   얼마전 일간지 컬럼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가 공멸이요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내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나쁜평화가 좋은전쟁보다 백배 천배 낫다는 생각입니다. 남북이 폐허에서 일어나 간신히 좀 살게 되었는데 서로 파괴하는 전쟁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국가지도자의 우선적 책무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전쟁금지임을 절감합니다.   인간내에 잠재해 있는 선성과 더불어 폭력성, 잔인성, 공격성의 악성입니다. 참으로 물리적 폭력의 전쟁을 영적 전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성서영성, 수도영성이 보여준 진리이자 지혜입니다....

함 승수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1/10/2024 ===루카 13,31-35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루카 13,31-35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하니 어서 피하라'고 알려줍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며 '위선자'라고 비난받던 그들이, 그래서 예수님께 독한 앙심을 품고 복수의 기회만 엿보던 그들이 왜 갑자기 돌변하여 예수님의 안위를 챙기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지요. 그들이 예수님께 그런 말을 전한 의도는 단순히 예수님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호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이 헤로데의 위협에 겁을 먹고 예루살렘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 그들과 헤로데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에 두 세력이 손을 잡았을 것입니다. 헤로데에게도 예수님의 전도활동이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저항하는 소요사태를 일으킬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을 통치하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태가 더 악화되면 겨우 붙잡고 있는 '영주'자리 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의도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군중이 두려워 세례자 요한을 처형하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기만 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군중들의 분노를 살까봐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리사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흘려 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예수님 일행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려는, '손 안대고 코 풀려는' 교활하고 비열한 책략이었지요. 예수님은 그런 헤로데의 간교한 의도를 알아채시고 그를 '여우'라고 비난하십니...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31/10/2024==하느님 안에서 아무리 짧은 순간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2024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무인도에 책 세 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입니까?’   이 질문은 뉴욕의 유명 문학잡지 ‘파리 리뷰’가 작가들에게 물어본 질문입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세이본은 ‘모비딕’, ‘율리시스’ 그리고 이런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코코넛으로 진짜 비행기를 만드는 법’을 가져가겠다고 재치 있게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가져가겠습니까? 저의 경우, ‘성경’ 하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담겨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성경에는 모든 장르가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만으로도 많은 책(실제 73권이지만)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참으로 놀랍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미사 때만 듣는 성경이었지만, 신학교에 들어간 뒤 지금 사제로 25년 넘게 살면서까지 계속 가까이에 두고 일고 있습니다. 지루한 것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우리 삶 안에서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 그래서 일상 삶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체험을 늘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하느님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 삶이 새롭지 않고 지겹고 힘들다고만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는 늘 부족함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아무리 짧은 순간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그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생각해서 했던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방해할 의도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사명에 끝까지 충실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보라,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1/10/2024=== 우리들 또한 주님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작년 신문사에 있을 때입니다. 성지순례를 5번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달루페, 이스라엘, 그리스와 터키, 이탈리아, 한국으로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려면 준비물이 있습니다. 여권, 핸드폰, 지갑은 필수품입니다. 세면도구, 옷, 책, 노트북도 챙겨야 합니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안내 책자, 묵주, 제의, 성직자 증명서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외적인 준비를 마치면 내적인 준비를 하면 좋습니다. 신약성서를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준비하고 순례를 떠나도 막상 성지에 도착하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곤 합니다. 시차 때문에,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순례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날씨가 문제가 될 때도 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릴 때도 있고, 더위 때문에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은 하면 좋습니다. ‘나는 왜 성지순례를 왔는가?’ 성지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순례를 통해서 배우는 겁니다. 성지순례는 신앙의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려 지켜온 신앙을 배우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향해 떠나는 순례라고 생각합니다.   33년 사제 생활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첫 부임지에서의 설렘이 있었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도 있었고, 자신 있게 갔지만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주파수가 맞으면 방송이 들리듯이, 같은 주파수를 공유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컴퓨터 통신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

반 신부의 복음 묵상 ===31/10/2024===한 마리 여우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루카 13,31-35)   한 마리 여우   여우는 밤에만 은밀하게 활동하고 낮이 되어 위험할 때면 굴속에 숨는다고 합니다.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기에 겉으로는 온순한 것처럼 보이나 속으로는 간교하고 음흉한 것이 특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왜‘여우’라고 칭했을까요? 헤로데에게는 예수님의 전도활동이 골칫거리였습니다(루카 9,7이하).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선동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 영토 밖으로 내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드러내 놓고 그 표현을 하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어떠한 찬성이나 반대의견을 전혀 취하지 않고 예수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야말로 간교한 교활함과 비열함을 모두 갖춘 한 마리 여우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가끔 ‘너는 하는 짓이 여우같다’는 소리를 하는데 정말 좋은 말이 아닙니다. 랍비문학에서 여우는 간교함의 상징입니다.   어째든, 예수님께서는 이 여우와 맞서서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며 당당하게 당신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고 하시며(루카13,33)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12,50).하셨지만 마침내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구원자로서 활동하셨지만, 미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처형을 당할 정도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시련과 고통 속에서 두려움과 포기에 직면하게 될 때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나를 연장으로 삼아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가야 할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합니다. 가야 할 길이 험난...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31/1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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