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 사도 요한 신부님 == 30/6/2023(매일미사) ==[(녹)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2023년 6월 30일 금요일[(녹)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녹) Friday of the Twelfth Week in Ordinar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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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계약의 표지로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라.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7,1.9-10.15-22
1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10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
15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라이를 더 이상 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사라가 그의 이름이다.
16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 그리고 네가 그에게서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
나는 복을 내려 사라가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여러 나라의 임금들도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 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18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자,
19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여라.
나는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하여
그와 나의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우겠다.
20 이스마엘을 위한 너의 소원도 들어 주겠다.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고,
그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그는 열두 족장을 낳고, 나는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21 그러나 나의 이 계약은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이사악과 세우겠다.”
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복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오늘의 묵상 

산 위에서의 설교(5—7장)로 드러난 예수님의 특별한 권위는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여러 개의 기적 사건(8—9장)을 거치며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를 통하여 말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남

다른 힘과 권위를 지니신 분이심을 드러내려는 

마태오 복음서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에 해당하는 오늘 복음은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을 전합니다. 

고대에 나병(악성 피부병)은 치료가 힘들고 전염력도 강하여서 

매우 특별하게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3—14장은 이 병의 증세는 물론이고, 

나병 환자라고 선언하고 그를 다루는 방법, 

그리고 치유 판정을 받는 공식적인 절차까지도 

아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병 환자는 특히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된 생활을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매우 놀라운 행동을 보여 주십니다. 

손을 내밀어 그 ‘부정한 몸’에 손을 대셨기 때문입니다.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고칠 능력을 지니신 분께서 

굳이 그 몸에 손을 가져다 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예수님의 구원 방식이 그러합니다.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몸소 사람이 되셨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려고 죄인 취급받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몸소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오늘은 부정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부정한 사람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였던 나병 환자의 아픔을 

손수 어루만져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십니다. 

지금 아파하는 모든 이를 어루만져 주고자 하십니다. 

그 아픔에서 낫게 되기를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바라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혹시 우리 마음속에 남모를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 

나병 환자처럼 용기를 내어 주님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니 저를 낫게 하여 주소서. 아멘.’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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