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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서말씀과 좋은 말 with TikTok 1/5/2023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 1/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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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원 베드로 신부님 == 01/5/2023(매일미사)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2023년 5월 1일 월요일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백) Monday of the Fourth Week of Easter] ============================================= 제1독서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30/4/2023 ==그분 목소리는 필요할 때 들린다

2023년 가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 그분 목소리는 필요할 때 들린다 >         복음: 요한 10,1-10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기도 하고 착한 목자 주일이며 그래서 성소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라는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는 어쩌면 예수님의, 양들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긍정하는 의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우리 선택입니다. 내가 선택해야 상과 벌이 정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운전병을 하였습니다. 군대 차들은 그렇게 정밀하지 않기 때문에 고장으로 인한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운전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엔진의 이상한 소리나 나사가 풀려 나는 소리 등을 무시하면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소리는 더 잘 들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록펠러는 크리스천이고 가장 큰 부자였지만, 나눌 줄을 몰랐습니다. 성경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라고 나와 있지만 그는 고집쟁이였습니다. 그가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서야 이 말씀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눌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병도 치유되었고 새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분 목소리가 들리려면 내 목소리를 부정해야 합니다. 하와는 뱀의 목소리를 살려두었습니다. 아담은 하와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30/4/2023 ==주님 안에서만 희망을 간직할 수 있으며, 지혜롭게 지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당에서 나와 마트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몇 개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이 신호등 때문에 약간의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차가 전혀 없는데도 신호를 한참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눈치 보며 건너가는 것입니다. 누가 하면 나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 역시 급한 마음에 그분을 따라서 무단 횡단을 하려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경적이 울립니다. 진행 신호를 보고 멀리서부터 속도를  높여서 차 한 대가 달려온 것입니다. 진짜 위험했습니다. 몇 초 빨리 건너가려다가 정말 빨리  하느님 나라에 갈 뻔했습니다. 적색 신호등은 분명히 정지 신호입니다. 당연히 멈춰야 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커다란 혼란이 다가옵니다. 문득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즉, 우리 삶 안에서도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옳지 못한  길일 때에는 멈춰야 합니다. 그러나 눈치 보면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면서 말이지요. 또 그 멈춤의 시간이 고통스럽다면서 그냥 앞으로만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적색 신호도 어느 순간에는  녹색 신호로 바뀝니다. 영원히 적색 신호만 있는  신호등이 없는 것처럼, 고통과 시련으로 멈출 수밖에 없는  그 순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녹색 신호로 바뀌어서 다시 힘차게  나아가는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래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라는 멈춤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완전히 멈췄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부활이라는 녹색 신호로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 아닌,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만 희망을 간직할 수 있으며, 지혜롭게 지금을 이겨낼 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0/4/2023 ==성소 실현의 여정 -착한 목자 예수님 닮기-

  성소 실현의 여정 -착한 목자 예수님 닮기-     성소주일이면 떠오르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나는 불림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다인 랍비 신비주의자 아브라함 여호수아 헷셀의 말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합리주의 철학자 데칼트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가 하나하나 주님께 불림 받는 유일무이한 "파스카의 꽃"같은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자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입니다.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담화문이 참 시의적절했습니다. “은총이며 사명인 성소”라는 주제하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26,42)성구를 바탕으로 참 귀한 가르침을 주는 담화문 서두 일부를 인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60번째 성소주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소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하여 제정되었습니다. 하느님 섭리의 이 계획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오늘날 세상의 고통과 희망, 도전과 성과가운데 우리에게 저마다 주님께서 맡기신 부르심과 사명에 응답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의 친교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 목자들의 인도 아래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예외없이 성소 실현의 여정이라 할 수...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0/4/2023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230430 . 부활 제4주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오늘은 부활 4 주일이며, ‘성소 주일’입니다.   <제1독서>는 오순절에 베드로가 사도 베드로가 했던 설교의 결론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36)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요 “메시아”로 삼으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회개하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그리고 그는 <제2독서>인 그의 편지에서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1베드 2,2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도둑의 비유”를 통해, 당신 자신을 계시해주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문’은 드나드는 통로입니다. 곧 ‘문’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이 “문”은 “드나드는 문”으로 하나의 문이지만 두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한 방향은 밖에서 “양 우리”로, 다른 한 방향은 “양 우리” 안에서 밖으로 향합니다.   이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수평적 이동의 통로로서의 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늘과 땅이라는 수직적 이동의 통로서의 문이기도 합니다. 곧 이 “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류에게 내려오고, 인류의 사랑이 하느님께 올라갑니다. 그러니 ‘생명과 구원의 문’을 나타내줍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는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가는 문으로서 그 문...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0/4/2023====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부활 제4주일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지향을 따라 ‘성소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하느님께 일꾼을 청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면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일꾼을 하느님께 청하자고 하였습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일삼는 백성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촉구하였습니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잘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십계명의 가르침을 어기는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어부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던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세리는 세상의 재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열혈당원 시몬도 부르셨습니다. 열혈당원 시몬은 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포기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12명의...

반 신부의 복음 묵상 =30/4/2023 ===사랑은 경청과 소통을 통해 드러난다

부활 제4주일 (요한 10,1-10) 성소주일   사랑은 경청과 소통을 통해 드러난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우리를 신앙에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하고 특별히 성직자, 수도자의 봉사직에 부르심을 받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후원하는 날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각자의 성소에 충실할 수 있는 은총을 기원합니다.   어린아이 이설아 첼리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빠지지 않고 미사참례를 합니다. 아주 귀엽고 이쁩니다. 제가 손을 내밀면 손도 잡아주고 인사도 잘합니다. 물론 수녀님 보좌신부님에게도 애틋합니다. 그런데 제가 늘 입던 수단을 입지 않고 일반 옷을 입은 채 손을 내밀었더니 멈칫하였습니다. 늘 같은 모습이 아니기에 선뜻 손을 주지 않았습니다. 목소리와 모습이 다르니 혼동이 온 것입니다. 아이의 눈은 정확했습니다. 서로 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관심과 진실한 사랑이 없이는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더더욱 주님과의 소통이 긴밀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10,3).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10,27-28). 고 하셨는데 진정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그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나를 알고 계신 데 나는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으면 답답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목소리, 그분의 말씀을 잘 알아들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분의 목소리에 익숙해야 하고 그분의 행동에 익숙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 목소리를 줄이고 침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언어는 침묵”(토마스커킹신부)이기 때문입니다.   묵시록 3장20절의 말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