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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서말씀과 좋은 말 with TikTok 1/4/2023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 1/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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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만 안젤로 신부님 == 1/4/2023(매일미사) ===[(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자) Saturday of the Fifth Week of Lent] =================================== 제1독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7,21ㄴ-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5-56 그때...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1/3/2023 ==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8)

  230331 . 사순 제5주간 금요일.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8)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어 성전 봉헌축일 때, 솔로몬 주랑에서 벌어진 유대인들과의 논쟁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유대인들의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시오.”(요한 10,24)라는 질문에 대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 10,30)라는 예수님의 증언에 대한 반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곧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신성모독으로 여기고 돌로 치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8)    이는 ‘아버지의 일’과 ‘예수님의 일’이 같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일은 사랑을 완성해 가는 일입니다. 곧 생명을 북돋우고 창조를 완성해 가는 일이요, 구원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 일은 또한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믿고 따르는 ‘우리의 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믿게 되면, 곧 사랑을 완성해가는 이 일을 믿게 되면,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안에 계심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0,38).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그냥 단순히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서, 아는 바를 받아들여 체험하여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상호 내재를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그분 안에 내재할 때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이들 안에서 말씀이 되는 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1/3/2023 == 하느님 중심의 삶 -자녀답게-

하느님 중심의 삶 -자녀답게-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시편18,2)   오늘은 성요셉성월, 3월의 끝날이자 내일은 4월의 첫날입니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임을 배웁니다.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 파스카의 봄꽃들이 벌써 주님 부활을 앞당겨 경축하는 축제 분위기의 날들입니다.     진리 탐구에 전념했던 분들의 말씀은 종파를 초월하여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다음 불가 선사의 말씀도 흡사 사막교부들을 연상케 합니다. 어제 선물받은 책안에 나오는 봉암사의 조실이자 조계종 8대 종정이었던 서암스님의 일화입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것 없다.”   “그래도 한평생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생(生)을 어떻게 정리하시렵니까?”   “이 좋은 그대로.”   “극락과 같습니까?”   “같다.”-   얼마나 멋진지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참으로 진리를 살았던 구도자 서암 고승이었음을 봅니다. 사찰의 두 자산은 노승老僧이요 노목老木이라 하는데 고승高僧인 노승이면 더욱 좋겠고 천주교 수도원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진리이겠습니다. 어제 오후는 참 흡족한 날이었습니다. 세상 한 복판에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산 분들 여덟분에게 고백성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자녀답게 영적승리의 삶을 사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성녀처럼 사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겸손과 사랑의 훈련장에서 참 성실히 사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구도자처럼 사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격려의 조언을 드렸더니 모두 파스카의 봄꽃들처럼 환히 피어나는 얼굴들이 그대로 자녀답게...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1/3/2023====“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신앙은 두 개의 날개가 있어야 건강합니다. 신앙은 두 개의 날개가 기쁜 소식이 됩니다. 신앙은 두 개의 날개가 있어야 신비가 됩니다. 하나는 ‘이성(理性)’입니다. 이성은 물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이성은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신앙에서 이성은 교리가 되고, 제도가 되고, 신학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를 비롯해서 교부들은 신앙을 위한 이성의 탑을 굳건하게 세웠습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신앙을 위한 이성을 배웠습니다. 철학, 심리학, 인간학은 이성을 다지는 학문입니다. 성서신학, 윤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교의신학, 교회법, 사목신학은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학문입니다. 이성은 냉철해서 마치 얼음과 같습니다. 이성은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유혹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성이 결여된 신앙은 자칫 광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이 결여된 신앙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유혹의 바람이 불면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감성(感性)’입니다. 감성은 이성이라는 그릇에 담긴 물과 같습니다. 감성은 이성의 ‘틀’을 넘어서는 성령의 이끄심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성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성으로도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감성은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을 밝히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것을 밝히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물위를 걷는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구유에 태어나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은 이성의 힘으로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감성은 ‘믿음’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이성의 ‘틀’을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꽃동네에서 주관하는 피정에 함께 했습니다. 묵주기도, 찬양, 강의, 미사가 있었습니다. 미...

반 신부의 복음 묵상 =31/3/2023 ==== 우리는 구원의 도구입니다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요한 10,31-42)   우리는 구원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를 무시하고 지나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버릇을 고쳐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 버릇을 고쳐 주기보다도 혼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엉뚱한 소리를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탓하지 않고 그를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키우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게 됩니다. 남의 허물과 부족함을 보기보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성찰합니다. 그야말로 회개의 삶을 삽니다.   유다인들은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행세를 하며 신성을 모독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하느님은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감히 인간인 주제에 하느님의 행세를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해도 하느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 예수가 하느님의 행세를 하였으니 돌을 맞을 일을 한 것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이 될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이 될 수는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간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를 육화의 신비, 강생의 신비라고 합니다. 강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기까지 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같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완전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완전함에로 이끌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처지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사랑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심으로써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안에 계심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

오늘의 성서말씀과 좋은 말 with TikTok 31/3/2023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 31/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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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 31/3/2023(매일미사)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2023년 3월 31일 금요일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자) Friday of the Fifth Week of Lent] ===================================== 제1독서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복음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0/3/2023 == 깊고 넓은 내적시야內的(視野)를 지닙시다 -기도와 성독(Lectio Divina)-

  깊고 넓은 내적시야內的(視野)를 지닙시다 -기도와 성독(Lectio Divina)-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4)   화답송 시편 한 구절을 오늘 삶의 지표로 삼고 싶습니다. 어제 입원중인 지인과 주고 받은 일화가 향기처럼 남아있습니다.   -“옆침대 환자께 예쁘고 고우신 간호사님 음성   오물오물 꿀꺽 생각하며 참으로 천사같은 간호사님이다 싶습니다.   이렇게 일을 예쁜 분위기로 잘 하시다니 감상하는 오늘 점심시간이었나이다. 좋은 오후 되옵소서.” “주변을 환히 밝히는 꽃같은, 천사같은 간호사님 같습니다! 오후도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입원중인 자매님을 생각하면 아프고 슬픕니다. 이렇게 고운 마음을 지녔고, 25년 이상을 헌신적으로 수도원과 저를 물심양면 헌신적으로 도운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착잡하고 답답할 때는 그동안 삶의 전 과정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게 되며 기도하게 됩니다. 35년동안 수도원에 정주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수도공동체와 관계를 가졌다 떠났는지 살펴 보면 더욱 기도하게 되며 삶의 전 과정을 성독하는 마음이 됩니다.   “깊고 넓은 내적시야를 지닙시다-기도와 성독(Lectio Divina)-”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부단한 기도와 성독이 깊고 넓은 내적시야를 지니게 됩니다. 성독의 대상은 비단 신구약 성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및 내 삶의 역사와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 역사 전체에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그러니 부단한 기도와 성독의 훈련이 우리에게 깊고 넓은 내적시야를 선사하면서 무지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합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제1독서의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야 말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느님과의 은밀한 소통의 대화의 기도가 그의 내적시야를 한없이 깊고 넓게 했음을 봅니다. 결국은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