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2의 게시물 표시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님 == 1/5/2022(매일미사)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주일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백) Third Sunday of Easter] ============================================================== 오늘 전례 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자는 데 생명 주일을 지내는 뜻이 있다. ▦ 오늘은 부활 제3주일이며 생명 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믿음의 빛을 밝게 하시어, 교회 안에서 성사를 거행할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게 하십니다. 우리도 사도들처럼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이 앞에서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선포합시다.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5,27ㄴ-32.40ㄴ-41 그 무렵 대사제가 사도들을 27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40 예수님의...

헨리 나웬 신부님 == 30/4/2022==목숨을 잃고 목숨을 얻는다는 것

  헨리 나웬  신부님(1932.1.24-1996.9.21) 의 오! 그리고 늘! 4 월 30일 <목숨을 잃고 목숨을 얻는다는 것 > Losing and Gaining Our Lives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큰  역설(逆說), 즉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되기도 하는 건   목숨을 잃은 이가 목숨을 얻는다는 겁니다.  아주 평범한 상황에서 이 역설을 볼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매달리면 잃어버릴 수 있지만 서로의 관계에서 넌 내 것이라는 마음을 버리면 오히려  더 많은 친구와 사귈 수 있는 겁니다.  이름을 드높이려 애를 쓰고 바라지만 일단 뜻을 이루고 나면 어느샌가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알려질 필요도 없는데 이승을 떠난지 오래 지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도 있는 겁니다. 가운데 있으려고 하면 가장자리로 쉽게 놓여지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다면 그 자리가 종종 가운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남들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친다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재주(기예 技藝)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겁니다. 바로 그 재주를 통해 우리는 목숨을 얻게 되는 겁니다. "네 빵을 물 위에다 놓아 보내라. 많은 날이 지난 뒤에도 그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코헬11,1) Losing and Gaining Our Lives APRIL 30 The great paradox of life is that those who lose their lives will gain them. This paradox becomes visible in very ordinary situations. If we cling to our friends, we may lose them, but when we are nonpossessive in our relationships, we will make many friends. When fame is what we seek and...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0/4/2022==우리는 이웃들에게 생명의 말씀, 기쁨의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릴 때입니다 .  학교 화장실에 낙서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 ‘ 옆을 보시오 ,  뒤를 보시오 ,  앞을 보시오 ,  일이나 보시오 .’ 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  최근에 화장실 낙서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  빌딩의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 ‘ 신은 죽었다 .  니체 ’  그러자 그 아래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 ‘ 니체도 죽었다 .  신 ’  그리고 끝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 ‘ 니들 다 죽었어 .  청소 아줌마 ’  청소 아줌마에게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나 ,  니체도 죽었다고 한 신이나 큰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  다만 청소해야 하는데 낙서를 해 놓으니 그것이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을 교리로 고백합니다 .  니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았어도 교회는 매년 삼위일체 중의 한 분이신  ‘ 예수 그리스도 ’ 의 죽음을 전례를 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  유교는 공자가 세웠습니다 . ‘ 인 ,  의 ,  예 ,  지 ,  신 ’ 이라는 덕목을 이야기합니다 .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습니다 .  살아 있는 세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살아 있을 때의 일도 바쁘기 때문에 굳이 죽음 이후의 삶을 성찰하거나 ,  고민하지 않습니다 .  공자의 탄생일을 기념하기는 해도 ,  공자의 죽음을 매년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  불교는 부처가 세웠습니다 .  인생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  원수를 만나야 하는 고통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  원하는 것을 채우지 못하는 고통 ,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0/4/2022==“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공동체 일치의 중심이신 주 예수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공동체 일치의 중심이신 주 예수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복음중 항해여정중 큰 폭풍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제자 공동체를 향해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들을 때 마다 늘 새롭고 반갑고 고맙고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바로 수도원 십자로 중앙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이기도 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두려움과 불안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서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가 365회 나오니, 주님은 1년 365일 하루하루 날마다 우리 모두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제자들을 태운 배는 항해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공동체란 배에 몸담고 인생 항해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인생 항해 여정중 조난당하거나 파손되거나 난파된 공동체란 배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고 보니 요셉 수도원이란 수도공동체란 배도 1987년 개원후 35년채 항해 여정중입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위기도 많았지만 주 예수님께서 선장이 되어 주셨기에 오늘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항해 여정중 주 예수님께서 잘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 앞서 어제는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후에 주 예수님은 열광하는 군중들을 피해 공성이불거( 功成而弗居) , 분별력의 지혜로 혼자서 산에 오르시어 하느님곁 제자리에서 머물러 계시다 바로 위기에 처한 항해 여정중의 제자공동체를 구출해 주십니다. 주 예수님 부재시 내외적 어둠과 혼란에 빠져드는 공동체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완전한지 제자들은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 예수님이야 말로 공동체 일치의 중심이요 어둠과 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30/4/2022==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의 성당 친구들을 만납니다. 종교로 뭉친 우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큰 것은 어렸을 때 신앙학교를 비롯해서 함께 했던 시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만 해도 어디를 여행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신앙학교’라는 이름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가기 전에는 솔직히 낯설고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신앙학교를 다녀온 뒤 우리는 너무나 친해졌습니다. 처음의 집 떠남이 겁났었지만, 새로운 만남에서 깊은 유대감을 얻은 것입니다. 종종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더 이로울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안에서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만드는 것이라면 절대로 피해서는 안 됩니다. 40년 넘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주고, 소중한 기억을 남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세상의 익숙한 것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관점 안에 살라고 하십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세상의 눈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놀라운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십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예로부터 하느님이 구원의 길을 걸으시는 동작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욥기에는 하느님은 바다의 등을 밟으신 분(욥 9,8)으로 표현하고 있고, 시편 77,20에는 바다를 밟고 가로질러 다니시는 분으로 표현하며, 이사 43,16에는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으로 전해줍니다. 이제 하느님의 능력이 오늘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께 옮겨져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물 위를 걷는 사람은 누구나 놀라고 무서워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배...

반 신부의 복음 묵상 ==30/4/2022== 어려움은 최선을 다할 기회

  부활 제2주간 토요일(요한6,16-21)   어려움은 최선을 다할 기회   나를 지켜줄 후원자가 있다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드러내 놓지 않고 남모르게 후원하는 이도 있습니다. 후원받는 이들은 누가 후원을 하였든, 든든한 그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쁨을 간직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늘 지켜주고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것은 신나는 일이고 힘이 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후원자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좌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산에 올라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바람이 일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습니다. 그리고 어둠이 짙어졌을 때 호수 위를 걸어 배에 있는 제자들에게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6,2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습니다”(요한6,21).   여기서 어둠은 세상의 빛(요한8,12)이신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자체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배가 원하던 곳에 닿았다는 것은 자연의 힘, 파괴하는 힘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행위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모든 방해물과 모든 거리를 넘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의 위력, 그 어떤 혼돈의 소용돌이에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바람에 휘둘리고, 물결에 흔들리는 것은 바로 우리이고, 그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늘 나와 함께하셨지만 나는 밖에서 허둥거렸습니다.   이 상황은 우리 인생 항로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

김상우 바오로 신부님 == 30/4/2022(매일미사) =[(백) 부활 제2주간 토요일]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백) 부활 제2주간 토요일]   [(백) Saturday of the Second Week of Easter] ===================================================== 제1독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29/4/2022==. 필립보와 안드레아는 아직 오지 않는 미래의 걱정 때문에 그동안 보여 주셨던 주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 ,  현재 ,  미래로 구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  과거는 기억과 추억으로 남습니다 .  미래는 기대와 희망으로 기다립니다 .  저도 과거의 기억과 추억으로 웃음 짓곤 합니다 .  실수도 ,  성공도 지나간 과거로 남으면 추억의 앨범에 남는 사진과 같습니다 .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  성지순례를 갔을 때 ,  동창 신부님들과 휴가를 갔을 때도 생각납니다 .  나환자 마을에 봉사 갔을 때 ,  농촌으로 봉사 갔을 때도 생각납니다 .  이렇게 우리는 과거라는 기억과 추억에 의지하면서 현재를 살아갑니다 .  미래는 지금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디딤돌이 됩니다 .  이민 온 분들이 고생하면서 새벽잠을 설치던 것도 아이들에게 더 낳은 미래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  농부가 뜨거운 여름 땀을 흘리면서 밭을 가는 것은 가을의 풍성한 결실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  저도 미국에 온지  3 년이 되었습니다 .  이제는 지나간 날이 남은 날보다 더 많습니다 .  미래에 대한 희망은 신앙의 발판이 됩니다 .   그런가하면 과거 때문에  ‘ 발목 ’ 을 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 ‘ 나 때는 ’ 는 이라고 말하면서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 나 때는 ’ 이라고 하면서 율법과 계명의  ‘ 틀 ’ 로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  과거에 누렸던 부귀와 영화에 젖어 있으면서 현실의 고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그런 사람들에게 과거는  ‘ 유령 ’ 이 되어서 현실의  ‘ 늪 ’ 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  이민 온지  40 년 , 50 년이 된 분들은 변화된 한국의 현실을 쉽게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