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신우식 토마스 신부님 --1/5/2021(매일미사)-- 요한 14,7-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2021년 5월 1일 토요일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백) Saturday of the Fourth Week of Easter]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30/4/2021 -- 생명으로 이끄는 길 : 열매를 위해 꽃을 떨어뜨리는 길

  2021년 나해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생명으로 이끄는 길 : 열매를 위해 꽃을 떨어뜨리는 길>  복음 : 요한 14,1-6 오늘 복음도 역시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이유가 아버지께 가서 우리가 거처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목적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도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당신 의견과 당신 삶을 따라야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의견을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그 의견대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돈과 명예, 쾌락에 빠져 살아갑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즐겨 받는 의견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가 유튜브나 TV, 인터넷에서 어떤 정보를 많이 접하는지 살펴보면 될 것입니다. 보통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보는 프로그램이 내가 따르고 싶은 의견이 무엇인지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사람이 이런 의견을 주고 저런 의견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의견의 홍수 속에서 참 생명으로 이끄는 의견을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을까요? ​       며칠 전에 우연히 TV를 보았는데 귀신이 나타나 장군에게 전투에 관한 의견을 주는 야사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신립 장군이 소년 시절, 경기도 광주에서 무술을 연마한 후 조선 시대 모자인 초립을 쓰고 외출을 하려는데 보라매 한 마리가 날아와 신 장군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0/4/2021 --- 진리와 생명의 하늘 길이신 예수님 -“두려워하지 마라, 믿어라, 따르라”

  2021.4.30.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13,26-33 요한14,1-6       진리와 생명의 하늘 길이신 예수님 -“두려워하지 마라, 믿어라, 따르라”-     날마다의 하늘 단비 같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시들어가는 우리의 영육을 살립니다. 새벽 하늘 단비 은총이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습니다. 마침 어제 주방장에 채소농장 책임을 겸한 스테파노 수사님이 놀랍게도 봉자자와 일꾼들을 동원 그 큰 밭의 모종을 끝냈고 단비가 내리니 참 통쾌합니다. 야콘, 고추, 파등 무수한 채소 모종들입니다. 새삼 이런 투철한 책임감도 말그대로 구체적 믿음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은 중요한 순 우리말은 대부분 한 자라는 것입니다. 문, 길, 집, 물, 밥, 빵, 돈, 불, 물, 빛 등 끝이없습니다. 여기 수도원 ‘문’을 들어서 ‘길’을 걸으면 ‘집’에 도달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일컬어 문이요 길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문을 들어서 주님의 길을 걷다가 주님의 집인 성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대로 우리 삶의 여정을 압축합니다. 하여 제가 가장 많이 사진에 담는 사랑하는 길이 수도원길 하늘길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   땅에서 하늘로 난   하늘에서 땅으로 난   당신의 하늘 길이 되고 싶다   예수님처럼!”-2019.8.1   참 자주 자작시에 등장하는 수도원길, 하늘길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매일 끊임없이 이 길을 걸어 주님의 집 성전을 찾는지 모릅니다. 말 그대로 생명의 길, 진리의 길, 구원의 길을 상징하는 하늘 길, 주님의 길입니...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 30/4/2021 -- 주님께 항복합시다! 그분 손길에 우리 존재 전체를 내어 맡겨 드립시다!

  작은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갈대처럼, 끝도 없는 방황을 거듭하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참으로 큰 위로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복음 14장 1~2절)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의지할 곳은 영원한 보루이신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참 평화, 잠깐의 평화가 아닌 영원한 평화를 주실 분은 홀로 주님뿐이십니다.   우리의 내면이 주님의 현존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열렬한 기도를 통해 그분과의 지속적인 통교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과도 같은 현실 앞에서도 잔잔한 호수 같은 내적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입니다. 회심한 재소자 형제들의 삶을 통해서 느끼는 바입니다만, 감방과 수도원은 마음먹기 차이입니다.   감방 안에 하루 온 종일 갇혀 있다할지라도 마음이 자유로우면, 그래서 감사와 찬미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수도원입니다. 거룩한 분위기의 수도원 담 안에서 생활한다할지라도 마음이 꼭 닫혀있으면 그곳이 곧 감방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대체로 다 그런가 봅니다. 어느 정도 쓸쓸하고, 어느 정도 허전하고, 어느 정도 외롭고, 고달프고...누구나 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공허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든 가슴에 구멍 숭숭 뚫리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엄청난 양의 술로도 채워보지만 잠시 뿐입니다. 이런 저런 취미활동이나 세상의 좋은 것으로 다 채워 봐도 허사입니다. 결국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홀로 서야 됩니다. 그분 앞에 철저한 심연의 고독도 느껴봐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 역시 내면 깊숙한 곳에는 다양한 근심걱정들이 자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 30/4/2021 -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함께 지내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중학생 때 자전거로 학교엘 다녔다고 합니다 .  어느 날 ,  자동차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  다행히 큰 상처 없이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무척 놀라셨습니다 .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위해서 노란색 종이에 빨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  잘 가지고 다니면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  노란종이가 자신을 지켜주지는 않겠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나중에 어머니는 세례를 받았고 ,  이제는 노란종이 대신에 작은 십자가를 주셨다고 합니다 .  늘 가지고 다니면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십자가를 보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노란종이든 십자가든 중요한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게 고생할 때입니다 .  이집트 땅에서 지낼 때가 좋았다고 불평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  이집트에서는 힘은 들었지만 배불리 먹었기 때문입니다 .  광야에서는 자유로웠지만 먹는 것도 ,  자는 것도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불뱀을 내리셨고 ,  많은 사람들이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  사람들은 모세에게 도와달라고 청하였습니다 .  모세는 하느님께 기도했고 ,  하느님께서는 구리뱀을 만들어 높이 매달라고 하셨습니다 .  구리뱀을 보는 사람은 뱀에 물렸어도 깨끗하게 치유되었습니다 .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리뱀만 보았습니다 .  구리뱀이 자신들을 구원한다고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  모세는 구리뱀을 부셔버렸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은 구리뱀이 아니라 ,  하느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   비봉 추모관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 신부의 복음 묵상 -- 30/4/2021-- 흔들리지 마라

  부활 4주간 금요일 (요한14,1-6)   흔들리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14,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예견하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마저 배신하는 끔찍한 세상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은 너희가 머물 곳을 아버지 집에 마련하러 가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당부이십니다. 그러나 그런 보증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의 산란함 속에 살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도 믿음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인간적인 이득을 따지게 되고 계산하면서 결국은 주님의 뜻과는 먼 삶을 살아가면서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다다르는 수단이십니다. 아버지와 만남을 이루는 방법은 예수님을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개자이십니다. 아버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시니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길이신 그분을 따라가면 영원한 생명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셔서 아버지 안에 살고 아버지께서 그 안에 사십니다. 그래서 누군가 예수님을 알면 아버지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아버지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알려주는 계시자로서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참된 생명을 추구하기에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생명이십니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완전한 방법으로 드러내고 세상에 구원을 알립니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 주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

서철 바오로 신부님 --30/4/2021(매일미사)-- 요한 14,1-6 ==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2021년 4월 30일 금요일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또는 [백] 성 비오 5세 교황] [(백) Friday of the Fourth Week of Easter]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9/4/2021 --- 사랑하면 왕과 종이 생긴다. 그래서 행복해진다.

  2021년 나해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사랑하면 왕과 종이 생긴다. 그래서 행복해진다> 복음 : 요한 13,16-20   오늘 제목을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사랑은 평등한 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부부가 협의하듯 함께 동등하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여길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순종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왕직’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면 왕과 신하만 생길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종이 되어 순종하여야 하고 파견받아 소명을 완수해야 하는 게 왜 행복일까요? 많은 개신교 교파는 목자를 장로들이 투표로 결정합니다. 대통령을 뽑는 것과 같습니다. 싫으면 있던 사람을 내보내고 다른 목사를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라고 해서 왕정을 실천하는 부탄과 같은 나라보다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부탄이 행복도에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습니다. 평등한 것보다 순종하는 주종관계가 더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쉬울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 복이 없으면 남편 복도 없고,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     만약 누군가 고아로 자랐다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배울 수 없을까요? ‘순종’을 배울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 29/4/2021 -- 당신은 쓴맛이 조금도 없는 감미(甘味)이시므로 그 감미로움으로 배고픈 우리를 먹이십니다

  꽃과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 이어 인접해있는 도시 시에나에 들렀을 때였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느낌, 시간이 멈춰 선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 사이로 빼곡히 들어선 고풍스런 옛 건축물 사이를 걸어 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토록 고색창연한 명품도시 시에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인물이 있으니,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성녀(聖女)로 유명한 시에나의 카타리나 동정 학자(1347~1380)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하였지만 도미니코회 재속3회 회원으로서 그녀는 탁월한 신앙생활은 즉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 빛나는 수덕생활, 사심 없는 이웃사랑의 실천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지상에서 머물러야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불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단명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하루하루를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후세 사람들은 대신비가, 탁월한 중재자, 위대한 신학자, 명설교가, 간호사들의 수호성인, 최초의 여성 교회 박사 등의 영예로운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카타리나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찾았고 만났으며, 사랑의 합일로서 주님과 일치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녀의 고백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주님 사랑에 깊이 빠져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벌거벗음을 덮어주시는 의복이십니다. 당신은 쓴맛이 조금도 없는 감미(甘味)이시므로 그 감미로움으로 배고픈 우리를 먹이십니다. 오, 영원한 삼위일체이시여!”   깊은 묵상과 관상기도 안에서 주님의 형상을 뵙고 난 카타리나는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향해 인자하게 웃으시자 두근거리던 제 가슴이 진정되었습니다. 저도 그분을 향해 방긋 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