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매일 미사 묵상 (01/5/2020) -- [(백) 노동자 성 요셉]

2020년 5월 1일 금요일 [(백) 노동자 성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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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아버지이다. 목수로 일한 성인은 오늘날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19 참조). 그는 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보호하려고 멀리 이집트까지 피해 갔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6─2,3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오늘의 묵상

초대 교회가 선교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무지함도, 교회 공동체의 게으름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여야 해!’라는 자아도취적 선민의식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주축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리스도교가 유다주의를 기반으로 시작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 중심, 유다 문화 중심은 더욱 보편적인 선교에 걸림돌이었습니다. ‘적어도 유다의 이런저런 전통은 지켜야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지.’라는 선민의식의 폐쇄성은 초대 교회가 성장하는 데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사람들의 폐쇄성 때문에 존경은커녕 무시의 대상이 되어 버리십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보다는 예수님의 주변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부모가 누구며, 형제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집안이 어떤지 ……. 대개 사람들은 제 사상과 신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본질을 보는 눈을 잃어버리지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또 질투나 열등감에 그것이 사라져 버렸으면 할 때, 사람들은 자신 안에 단단히 자리 잡은 나름의 논리로 눈앞의 것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기 마련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저 보기 싫은 것뿐입니다. 그들의 비좁은 마음에는, 저들보다 많은 지혜와 깊은 학식을 지니신 것처럼 보이며 갑자기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적어도 자신들보다 잘나서는 안 된다는 지독한 경쟁의식과 패배주의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더 많이 알고 더 자세히 아는 데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마음의 빈자리를 만드는 일이 복음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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