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좋은글 -05/2014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슬픔도 고통도 비극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다만 ‘지나가는’ 시간이 좀 필요하고, 그 시간을 넘어선 ‘마음의 힘’이 필요할 뿐입니다(송정림). 행복해지기는 간단하다. 다만 간단해지기가 어려울 뿐(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놓아 버리면 종종 놀랍게도 대단히 아름다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다니엘 데비앙). 믿음은 걱정이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고 걱정은 믿음이 시작하는 곳에서 끝난다(조지 뮬러). “난 못해.”라는 말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지만, “해 볼 거야.”라는 말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토머스 J.빌로드). 삶이 힘들다 해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박현욱).

평생공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2014.5.23.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사도15,22-31 요한15,12-17 평생공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평생공부가 하느님 공부, 사랑 공부입니다.   인생은 졸업이 없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평생 사랑을 공부해야 하는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 사랑은 아무나 하나', 우스개 소리 같지만 진리입니다. 사랑도 공부해야 합니다.   문제는 사랑에 있고 답도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사랑 공부에 있어 '영원한 초보자'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느님 자비에 결코 실망하지 마라'는 분도 성인의 말씀입니다. 결코 내 부족한 사랑에 결코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공부에 지치거나 지루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복음 말씀을 중심으로 평생 배워야 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답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안에 있습니다.   첫째, 깨끗한 형제애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깨끗한 사랑, 끝없이 깊고 넓은 사랑입니다. 집착없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행복하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게 주님께 배워야 할 깨끗한 사랑입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부단히 배워갈 때 비로소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 편협한 사랑은 끊임없이 정화되고 확장되어 주님의 사랑을 닮아갑니다.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말씀하시며 공평무사한 형제애를 강조하시며, 분도 성인 역시 당신 수도승들에게 깨끗한 형제애의 사랑을 강조하십니다.   둘째, 형제들의 ...

관상과 활동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2014.5.22.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사도15,7-21 요한15,9-11 관상과 활동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어제 상담을 공부하려는 어느 분에 대한 충고가 생각납니다. "상담가의 우선적 자질은 공감의 사랑입니다. 이런 기본적 자질인 사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이듯이 사람을 대하는 상담 역시 테크닉이 아니라 공감의 사랑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비결은 사랑뿐이듯 상담을 잘하는 비결도 사랑뿐입니다. 진정 사랑할 때 알고 보임으로 올바른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관상과 활동 역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관상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활동입니다. 그러니 우선적인 것이 사랑의 관상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역시 제가 자주 써드리는 고백성사 처방전의 보속 말씀입니다.   어제의 '내 안에 머물러라.'에서 구체적으로 '사랑'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샘, 관상의 샘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이 예수님의 샘솟는 사랑, 지칠줄 모르는 사랑의 근거였음을 봅니다.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은 이런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지금도 주님을 통해 끊임없이 제공되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바로 이게 관상의 사랑, 관상의 행복, 관상의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명은 '사랑의 관상가'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눈 만 열리면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 존재임을 봅니다.   이를 실감나게 묵상할 수 있는 사랑의 관상시간이 성전에서의 미사, 기도, 묵상시간입니다. 아니 어느 자리에서든 이런...

교황 프란치스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교황 프란치스코: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Pope at Mass: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2014-05-20 11:14:11 Published on May 20, 2014 http://en.romereports.com During his homily at Casa Santa Marta, Pope Francis said that the peace that comes from money, power and fame, are only temporary. Only God, he said, can provide everlasting peace. (Vatican Radio) - "돈이나 권력에 의해 주어진 평온함에 '피상적인' 신뢰를 두기로 한 사람들과는 달리, 성령을 받아들인 이들은 굳건한 그리고 한없는 평화가 함께 할 것입니다."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의 화요일 아침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시는 메세지입니다. 세상 것들 -재물, 권력, 허영-에 의해 주어진 평화, 그리고 성령 안에 머무르는 평화(peace in Person, the Holy Spirit)가 있습니다. 첫번째...

"내 안에 머물러라" -영원한 쉼터-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2014.5.21.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15,1-6 요한15,1-8 "내 안에 머물러라" -영원한 쉼터- 오늘 연피정을 끝내면서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참 고마운 말씀을 주십니다. 피정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이 말씀보다 중요한 말씀은 없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주님 안에 머무르지 못함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무려 오늘 복음에 '머무른다'는 말이 8회 나옵니다.   오늘은 위 말씀에 대한 풍부한 묵상을 나눕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가 되겠습니다.   첫째, 주님과 공동체의 일치의 비결은 "내 안에 머물러라.“이 한 말씀 밖에 없습니다.   개인을 상대로 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향한 말씀입니다.   주님께는 개인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언제나 '너' 개인이 아닌 '너희' 복수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에 이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네 '개인의 마음 안'이 아닌 '너희 공동체 안'에 머무르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여 비로소 주님 안에서 공동체의 온전한 일치, 개인의 내적일치가 실현됩니다.   이 길 말고는 공동체의 일치도 개인의 내적일치도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공동체를 떠난 하느님 체험이 얼마나 위험한 환상이요 착각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둘째, 어제 자기훈련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궁극의 자기훈련은, 가장 핵심적이자 본질적인,   가장 중요한 자기훈련은 "내 안에 머물러라.“는 주님의 한 말씀뿐입니다.   바로 오늘 이 복음 말씀이 사도행전의 논쟁에 답을...

평화의 선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2014.5.20.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사도14,19-28 요한14,27-31ㄱ 평화의 선물 너나 할 것 없이 떠남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도 언젠가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영원토록, 평생토록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없습니다.   잘 떠나는 것보다 아름답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잘 떠날 때 아름답습니다.   떠남의 선물 중 평화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향기 같은 평화의 여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 고별 담화에 나오는 주님의 평화가, 또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이러합니다.   저 역시 어제 방문하신 신심 깊은 분을 통해서 이런 평화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떠난 후로도 향기 같은 평화의 여운이 남아 있어 오후 내내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자매님은 주님께서 저에게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라고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정말 훌륭하고 성실한 믿음의 자매입니다.   요셉수도원을 사랑하는 모임인 예수성심자매회를 10년 동안 매달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책임을 다하는 분이며, 예전에는 전진상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매주 1회 하루를,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봉사한 분입니다.   지금도 집안 일에 충실하면서도 무려 매 주 본당 성물방 봉사, 레지오 모임(단장), 성경공부, 노인대학 급식 봉사 등 초인적 봉사를 하는, 참 책임감이 강한 분입니다.   이 또한 주님 향한 믿음의 표현이자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분들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의 평화를 선사하십니다.   저 역시 여기 수녀원에 머물면서 수녀님들의 따뜻한 환대를 통해 주님의 평화를 흡족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떠남 중의 결정적 떠남이 죽음의 떠남입니다. 언젠가 갑자기 평화로운 마지막...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이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2014.5.19.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사도14,5-18 요한14,21-26 . .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이다 . . 참 알기 어려운 게 우리 인간입니다. 신비 아닌 것이 없지만 인간은 신비입니다.   .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 저는 1독서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리스트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쳐주자 신들처럼 대하는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쳤던 이 말마디를 읽는 순간,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똑 같으면서도 똑 같지 않은 사람입니다. . 어찌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함으로 부활 선포의 복음의 일꾼이 된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이들 우상을 섬기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나 이방 민족의 사람들과 같겠습니까? . 수심가측(水深可測), 물의 깊이는 헤아릴 수 있으나, 인심난측(人心難測),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릅니다. 하여 함께 사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의 신비는 하느님만이 해결의 답을 줍니다. . 하느님이 없으면 아무리 물어도 인간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나를 믿을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하여 우리 인생은 선물이자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선물로 받은 고귀한 인간 존재이지만 미완의 과제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하느님을 닮아 가는 평생과제를 부여 받은 우리들입니다. . 참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직업을 봐도 얼마나 많은지 끝이 없습니다. 타고난 재능들도 끝이 없습니다. 다양함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 정말 무서운 것도 사람입니다. 인면수심이란 말도 있듯이 밖으로야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지만 천사표 같은 사람도 있고 야수 같은 사람도, 괴물 같은 사람도, ...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면 행복할 텐데!(‘그럼에도, 행복하라’ 중, 앤드류 매튜스)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면 행복할 텐데!(‘그럼에도, 행복하라’ 중, 앤드류 매튜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부부에 대해 우리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즉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도 행복했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다! 누군가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영화나 노래에서 나온 것 같다. 영화나 노래의 주인공들은 흔히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나는 너무 외롭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당신이 내 삶을 바꿔놨어!” 이런 것이 근거 없는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노래나 영화와는 다르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난 그저 불행하기만 했어.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서 내 인생은 정말 비참해졌어!” 이래야 맞는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에게 끌리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에게 끌린다. 당신이라면 기분이 아주 좋은데 ‘우울해하고 있는 사람을 좀 만나봐야겠어’라고 생각하겠는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당신은 우울한 사람 대신 또 다른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유유상종이다. 그러니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싶으면 당신이 먼저 웃고 다녀야 한다. 당신이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에는 누구도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스스로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당신이 밝은 면을 보기 시작하면 주위에 행복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만약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화를 내지 말고 다르게 대응해 보자.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기뻐하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인생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정해진 규칙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해지기가 더 쉽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2014.5.16.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13,26-33 요한14,1-6 . .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 우리 수도자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여 수도원을 하느님의 집이라 하며, 하느님의 집에서 사는 수도자를 일컬어 하느님의 사람이라 하며 수도자가 바치는 성무일도를 일컬어 하느님의 일이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이 수도자의 존재이유이자 삶의 의미임을 깨닫게 됩니다. .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사람 모두가 마음 깊이에서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이에서는 수도자라 말합니다. 우리의 궁극 목적지인 하느님을 찾아가는 평생 순례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 . 첫째,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 하느님을 찾는다 함은 길을 찾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길에서 태어나 길을 가다가 길에서 죽는 사람들입니다. 가도가도 제자리 걸음 같아, 또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몰라 두려움이요 불안입니다. . 좌우간 길을 잃어 방황이요 혼란이요 복잡한 삶입니다. 길눈이 어두우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듯이 마음의 길 눈이 어두우면 환상과 유혹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 길은 많아도 우리가 찾아가야 할, 따라야 할 유일한 길은 '나는 길'이란 하신 주님 한분뿐입니다. 함께 길을 가는 우리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길벗은, 도반은 주님뿐입니다. . 주님은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 . 둘째, 집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 하느님을 찾는다 함은 아버지의 집을 찾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입니다. . 찾아갈 곳은 많은 것 같아도 결국 우리가 머물집은 아버지의 집 하나뿐이요, 찾아갈 사람은 많은 것 같아도 결국 찾아가 뵈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