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공부 -참 사람이 되는 세 길-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4.2.16 연중 제6주일, 집회15,15-20 1코린2,6-10 마태5,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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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공부
-참 사람이 되는 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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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물이자 과제이다.’
제가 즐겨 인용하는 말마디입니다.
누구나 과제로 부여 받은 미완의 선물인생입니다.
평생 완성해가야 하는 유일무이한 내 선물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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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이 되는 공부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공부도 없습니다.
사람이 문제이고 하느님이 답입니다.
하느님 탐구와 함께 가는 ‘참 나’의 탐구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참 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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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옛 초등학교 후배교사로부터 선물 받은 책을 늘 곁에 두고 심신이 피곤할 때 마다 봅니다.
‘조상의 숨결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국보와 보물의 해설이 붙은 책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을 40여 년 동안 탐방하며 대부분의 국보와 보물을 촬영하여 정성껏 만든 사진첩입니다.
전에는 외관의 사진만 보였는데 요즘은 이면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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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예인(藝人)들이 얼마나 정성을 다해 국보와 보물들을 만들었는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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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고 국보와 보물만 남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 보입니다.
기도하는 인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아름다움의 추구는 하느님의 추구입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움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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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이 되는 하느님을 향한 세 길에 대한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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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할 때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체험은 그대로 하느님의 아름다움의 체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다섯 가지 가르침을 통해 사랑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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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한 가르침,
분노에 대한 가르침,
간음에 대한 가르침,
이혼에 대한 가르침,
맹세에 대한 가르침 등 아주 구체적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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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율법의 본령은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입니다.
모두가 사랑의 표현인 율법이기에 어느 하나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되는 율법입니다.
사랑만이 율법의 의미를 환히 밝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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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모든 가르침은 다음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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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비로소 참 나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마음의 순수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라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길은 단 하나 순수한 사랑의 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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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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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확신에 넘친 주님의 말씀이요 한 결 같이 근원적인,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사랑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이르러 참 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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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자유의 길입니다.
값싼 사랑도 없듯이 값싼 자유도 없습니다.
부단히 계명과 율법의 사랑 실천의 수행을 통한 자유입니다.
자유로워 사람입니다.
자유로울 때 아름답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적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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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독서의 집회서의 주제는 ‘인간의 자유’입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유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자유자체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닮아 자유로운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하느님의 계명을 떠나선 참 자유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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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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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때 행복합니다.
자유도, 행복도 선택의 결정입니다.
살 줄 몰라 부자유요 불행입니다.
아무도 내 행복에 대한 책임이 없고 오직 나에게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고 충실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택할 것이냐 죽음을 택할 것이냐,
행복을 택할 것이냐 불행을 택할 것이냐 순전히 나의 자유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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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시고 우리의 행위를 낱낱이 아십니다.
또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지으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새삼 자유의 남용이 큰 죄임을 깨닫습니다.
죄를 지라고 주신 자유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생명을, 행복을 택해 당신을 향해 참 자유의 길을 가라고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느님의 자유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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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혜의 길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넓이의 지식들은 넘치지만 깊이의 지혜는 결핍된 참 가난한 현대인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진정 지혜로운 자가 하느님의 벗입니다.
지혜의 길을 통해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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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독서는 ‘하느님의 지혜’에 대해 말합니다.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요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에는 어리석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대우(大愚)가 대지(大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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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보이십니다.
어리석어 보여도 참으로 하느님의 큰 지혜가 그리스도이십니다.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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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가 이런 하느님의 지혜에 대해 명쾌하게 밝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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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당신의 지혜인 주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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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 역시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분을 따르는 길만이
하느님께 이르는 지혜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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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자유로워, 지혜로워 하느님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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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길, 자유의 길, 지혜의 길은 하느님 목표지점에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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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같지만 궁극은 하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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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혜요 사랑할 때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이 세 길을 동시에 가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자유로우셨고 지혜로우셨고 사랑 충만 하셨던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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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사랑과 자유, 지혜로 충만케 하시어 참 사람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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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시편119,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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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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