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올바른 판결
나이 30대의 어느 여성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직업도 안정되었으며
다른 외적조건도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이제 딱 한 가지 멋진남자를 만나서 혼인만 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의 매일 기도 주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혼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도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한 채 그녀의 나이는 어느새 마흔이 되어
버렸습니다.그 여성은 지쳤고 절망햇습니다.
친구들도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일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인생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응답 없이 침묵하시는 하느님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계셔도 그만
안 계셔도 그만인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자
삶은 더욱 외로워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겼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였지요.
"내생각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이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55,8-9)
하느님의 뜻은 우리 뜻과 다를 때가 매우 많습니다.
하늘과 땅의 높이와 깊이만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뜻 안으로
하느님을 끌어들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얼굴을 감추시고 맙니다.
만일 마흔에 이른 그 여성이 그토록 바라던 혼인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여기고 슬프게만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하느님마저도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분으로 여긴다면
그녀의 인생은 늘 공허하고 외로울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느님께서 더 큰 무엇을 주시려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운명을 주신다고 넓게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그에게 끊임없이 졸라대는 과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과부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 판결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이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 깃든 하느님
뜻을 올바르게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올바른 판결은 깊고 높은 하느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직업도 안정되었으며
다른 외적조건도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이제 딱 한 가지 멋진남자를 만나서 혼인만 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의 매일 기도 주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혼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도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한 채 그녀의 나이는 어느새 마흔이 되어
버렸습니다.그 여성은 지쳤고 절망햇습니다.
친구들도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일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인생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응답 없이 침묵하시는 하느님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계셔도 그만
안 계셔도 그만인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자
삶은 더욱 외로워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겼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였지요.
"내생각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이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55,8-9)
하느님의 뜻은 우리 뜻과 다를 때가 매우 많습니다.
하늘과 땅의 높이와 깊이만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뜻 안으로
하느님을 끌어들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얼굴을 감추시고 맙니다.
만일 마흔에 이른 그 여성이 그토록 바라던 혼인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여기고 슬프게만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하느님마저도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분으로 여긴다면
그녀의 인생은 늘 공허하고 외로울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느님께서 더 큰 무엇을 주시려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운명을 주신다고 넓게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그에게 끊임없이 졸라대는 과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과부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 판결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이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 깃든 하느님
뜻을 올바르게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올바른 판결은 깊고 높은 하느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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