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작은 친절

작은 친절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두려움이 많은 존재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작은 미소, 다정한 한마디, 조그만 보살핌이 서로에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바로 이 작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것들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덕분에 인생의 고비 고비를 하나씩 넘어갑니다. - 정용철 '사랑의 인사' 내용 중에서 -

품위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품위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이의 가슴속에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하느님이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음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음면서 품위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겪는 어듬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 좋은 글 중에서 -

행복과 고난은 쌍둥이입니다

행복과 고난은 쌍둥이입니다 당신에게 지금 '고난' 이 찾아 왔습니까? 당신에게 지금 '아픔' 이 찾아 왔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불청객이라 여기고 꺼립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것들이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찾아온 이유는 당신이 과연 '행복' 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입니다. 행복은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에게 고난이나 아픔 또는 시련으로 변장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우렐리우스 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언젠가 삶이 우리를 모질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려고 할 때 당신은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것은 고난이다' '이것은 불운이다' 가 아니라 '이것을 훌륭하게 견디어 내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라는 것이다. -내 삶의 휴식이 되어주는 이야기 중에서 -

"주님을 찬미하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8 부활 제3주일 사도2,14.22ㄴ-33 1베드1,17-21 루카24,13-35 "주님을 찬미하라" 참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성모님의 달 5월입니다. 계속되는 부활 축제에 저절로 하느님 찬미입니다. 찬미의 달, 은총의 달인 5월이 참 깊게 느껴집니다. 어느 수사님이 전해 준 말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물을 모아 바다를 만들었고 은총을 모아 성모님을 만들었다.” 이래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야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하며 성모송을 노래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깊이요 성모님 은총의 깊이입니다. 넓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깊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현대인의 위기는 바로 깊이의 상실에서 기인입니다. 신록 짙어 가는 5월의 산이 점점 깊이를 더해 갑니다. 몇 주 전 인용했던 ‘저 산의 깊이는 어디쯤 일까?’시를 다시 나눕니다. “저 산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각양각색 온갖 초목들을 꽃들을 품에 안은 산! 저 산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저 산 같은 사람이 공동체가 그립다 5월의 불암산을 바라볼 때 마다 저절로 나오는 시입니다. 산의 깊이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의 깊이요 사랑의 깊이입니다. 살아갈수록 하느님을 닮아 우리의 삶도,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의 삶을 깊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깊게 합니다.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삶의 허무에 대한 유일한 처방도 하느님 찬미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찬미가 허무의 먹장구름을 날려 빛나는 하느님 사랑의 현존 안에 살게 합니다. 주님 부활시기와 겹치는 5월은 말 그대로 은총의 달이자 찬미의 달입니다. 성모님을,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알렐루야의 달입니다. 초점은 언제나 하느님께 모아지며 저 절로 솟아나는 하느님 찬미...

♡ 가장 훌륭한 사람은 ! ♡

♡ 가장 훌륭한 사람은 ! ♡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강한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고, 가장 존경 받는 부자는, 적시적소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놀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일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인격은, 자기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사람이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늘 일하는 사람이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겨울나이가 되어도, 항상 창조, 도전, 열정으로 사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이다. - 좋은글 中에서 -

"영적인 삶을 추구하십시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9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사도6,8-15 요한6,22-29 "영적인 삶을 추구하십시오." 영원한 생명, 영원한 현재, 영원한 삶 등 ‘영원’이란 말만 들으면 마음이 위로가 되고 평화로워짐을 느낍니다. 모두가 영원한 하느님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불행은 영원을, 하늘을 잃어 자초한 화입니다. 주로 현세의 보이는 것들만을 추구하다 보니 영원을 잃어 허무와 무의미로 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 이상적인 삶과 현실적인 삶의 두 차원의 삶 중에 꼴 잡혀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의 우선적 관심사는 영원한 생명의 영적 삶입니다. 사도행전의 위로부터 은총과 성령, 지혜를 충만히 받은 스테파노가 그 모범입니다. 평생 하느님만을 찾아 영원한 생명을 누렸던 스테파노임이 분명합니다. 영원을 잃어버려 종교공해가 된, 하느님께 걸림돌이 된 믿는 이들에게 온갖 핍박의 타깃이 된 스테파노입니다.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은총으로 빛나는 스테파노의 얼굴이 그의 영적 삶을 반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역시 당신을 찾아 온 군중들에게 영적 삶을 추구할 것을 신신당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오늘날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에 주시는 주님의 우레 같은 말씀입니다. 보이는 것들을 통해 하느님의 무수한 기적의 표징들을, 무궁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영원한 생명의 풍요한 내적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선물 중의 선물이 아드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양식은 ...

"내가 생명의 빵이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10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사도7,51-8,1ㄱ 요한6,30-35 "내가 생명의 빵이다." 오늘은 석가탄일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좋아도 생명의 빵이신 주님만은 못합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 하느님을 배고파하는 인간, 바로 이게 인간의 정의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 수 있어도 텅 빈 허무의 무한한 가슴은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의 결정체인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모시고자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성체성사(생명의 빵)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시적 상징으로, 몸의 언어로 가득 찬 미사전례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생명의 빵인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찾아가야 할 유일한 분은, 믿어야 유일한 분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참된 빵, 생명의 빵인 주님뿐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만이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고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 주님을 모셔야 성령 충만한 영원한 삶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미사 중 빵과 포도주를 높이 들어 올리며 하는 예물준비기도입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빵(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온 우주가, 하늘과 땅이, 은총과 노력이 하나로 담겨있는 빵과 포도주가 성령으로 축성되어 생명의 빵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고 우리의 전 존재 역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이어 주님과 함께 봉헌된 후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생명의 빵을 모심으로 주님과 완전 일치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