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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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님 = ==1/2/2025 =[(녹) 연중 제3주간 토요일]

  2025년 2월 1일 토요일 [(녹)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녹) Saturday of the Third Week in Ordinary Time] =================================== 제1독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 31/1/2025===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사람은 모른다.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복음 :  마르  4,26-34: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  사람 은 모른다 .   우리가 우리 마음에 좋은 뜻을 품는다면 ,  그것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  그러나 그 씨가 어떻게 싹이 터서 자라는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 .  자기 안에 심어져 자라나고 있는 덕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직 헤아릴 수 없다 .  땅이 은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열매를 맺듯이 ,  인간도 그렇게 스스로 선행의 열매를 맺는다 .  그 열매들이 영글면 곧 낫을 댄다 .  추수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 (31 절 )  하느님 말씀의 씨앗에서는 커다란 나무와 같이 자라며 ,  이 나무는 바로 세상 곳곳에 세워진 교회이다 .  이 교회에 하늘이 새들 ,  곧 하느님의 천사들과 사람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 .    주님은 겨자씨였다 .  그러나 백성들은 그분을 겨자씨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  그분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려고 잘게 부서지기를 원하셨다 .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  겨자씨처럼 동정녀의 태라는 정원에 뿌려지신 그분은 십자가 나무로 자라셨고 ,  그 가지들은 온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    수난의 절구에 빻아진 그분의 열매는 그분과 관계를 맺는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이 맛을 지니고 보존될 수 있도록 넉넉한 양념이 되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빻아짐으로써 당신 안에서 우리 모두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모든  것이 되셨 다 .   그분은 당신 정원 ,  교회에 씨를 뿌리셨다 .  교회는 온 세상으로 퍼져가는 정원이다 .  복음의 쟁기로 갈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1/1/2025 =하느님의 나라

  2025.1.31.금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학자(1815-1888) 기념일             히브10,32-39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                                                              “꿈과 실현”     “주님만 바라고 너는 선을 하라.  네 땅에 살면서 태평을 누리리라.”(시편37,3)   흰눈 내리는 새벽 산책길, 다시 생각나 오래 전 ‘님의 편지’란 자작 애송시를 나눕니다. 하느님 나라를 그리는 마음에 문득 떠오른 시입니다.   “계속 쏟아지는  흰 눈발들  님 보내시는   천상 편지    하얀 그리움  가득 담겨 있는  님의 편지   잔잔히 물결치는 마음    글씨 보이지 않아도  다 알아 보겠네”<2001.1.28.>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은 물론 그분을 따랐던 성인들의 평생 꿈이자 화두였고, 평생 하느님의 나라를 사셨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주...

양승국 신부님의 복음 묵상 ==31/1/2025 ===힘들면 언제든지 오라토리오로 달려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줄테니!

  힘들면 언제든지 오라토리오로 달려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줄테니!   돈보스코의 제자 중에 아버지로부터 상습 폭행과 아동 학대를 받던 펠리체 레빌리오가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들어오게 된 스토리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아버지는 어린 펠리체에게 하루 온종일 중노동을 시키고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한창 성장기에 있어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팠던 아이는 혹독한 굶주림에 늘 울고 다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돈보스코가 아버지 몰래 펠리체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펠리체! 얼마나 힘드니? 얼마나 배고프니? 혹시라도 더 이상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땐, 도망쳐서 오라토리오로 달려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줄테니.”   더 이상 아동 거듭되는 아동학대와 굶주림을 견디기 힘들었던 펠리체는 마침내 가출을 한 다음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로 달려왔습니다. 안그래도 죽을 고생을 하고 있던 펠리체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돈보스코는 만면에 가득 미소를 짓고,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펠리체를 온 몸과 마음으로 끌어 안았습니다. 펠리체는 그 은혜로웠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며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제가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 돈보스코가 보여주었던 친절과 자비와 환대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돈보스코에게로 달려갔을 때, 어머니 맘마 마르가리타는 굶주린 제게 따뜻한 스프와 빵을 마음껏 먹도록 준비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두 분은 손수 제 잠자리를 챙겨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돈보스코 오라토리오에 받아들여진 두 번째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기꺼이 환대하고, 양육시키고, 성장시키고, 성화시키는 본당이요, 학교요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 광주대교구 용봉동 성당 설립 25주년 기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놀랍게도 용봉동 성당 주보 성인이 돈보스코였습니다. 사목적 열정으로 가득한 주임 신부님께서는 본당 설립 25주년...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31/1/2025==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또 당연한 일도 당연하지 않은 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025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성당 꼬마들이 제게 다가와서는 “신부님, 로제 알아요? 에스파는 알아요? BTS는 아시죠? 세븐틴 멤버 이름 알아요?” 등의 질문을 하곤 합니다. 이 질문에 저는 “당연히 모르지.”라고 답합니다. 진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르는 저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장원영 모르는 사람, 처음 봤어요.”   제 나이 또래에게 물어보면 앞서 꼬마들의 질문에 다 안다고 말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꼬마들이 연예인들을 잘 아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심이 있고, 그래서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관심 없으면 좋아할 수도 또 재미도 없습니다. 연애하는 이유도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가는 재미를 갖습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도 독서는 재미없었고,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책상 앞에 앉아 있음이 행복하고, 책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당연히 공부도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으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재미있고 여기서 기쁨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설레기도 합니다. 스스로 하느님과 맞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내 쪽에서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없는 관심이 영원히 없을까요? 아닙니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분임을 깨닫는 순간, 관심이 생기고 그 관계에 기쁨을 갖게 됩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냉담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걱정도 주님께 맡기십시오. 부모님보다 더 열심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힘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또 당연한 일도 당연하지 않은 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