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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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1/9/2024 ==[(녹) 연중 제22주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024년 9월 1일 주일  [(녹) 연중 제22주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녹) Twenty-second Sunday in Ordinary Time] ==================================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시어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하셨다. 이날 교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의미를 묵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며, 생태계를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파스카를 기념하는 이날 함께 모인 거룩한 백성인 우리를 주님께서는 굽어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입술로 드리는 찬미가 마음 깊은 곳에서도 울려 퍼지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주님의 말씀으로 온 삶이 거룩하고 새로워지게 하여 주시기를 청합시다. 제1독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는 안 된다. 주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4,1-2.6-8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김찬선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1/8/2024 == 자랑하지 않기

  “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은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   독서와 복음에 비추어 볼 때 저는 저의 출신과 처지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선 복음에 비춰 저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아니니 다행입니다 . 저는 그야말로  Positive Thinking( 긍정적 - 적극적인 사고방식 ) 의 소유자입니다 .   그래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고 특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그 일을 하는 데 저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선이요 사랑이시라고 하느님을 믿고 모진 분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며 , 사람들에 대해서도 믿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인지 잘 믿는 편입니다 .   그런데 제가 믿기로 선택한 것에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 옛날 이발소에서 머리 깎으면 면도사가 면도해줄 때의 일입니다 .   얼굴을 면도하고 나면 턱을 거쳐 목까지 면도해주는데 하루는 목 부분을 면도할 때 문득 저분이 면도하다가 제 목을 확 따버리면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러고 보니 저는 그동안 사람을 믿어왔던 것입니다 . 문제는 그 이후였는데 계속 믿고 면도할 것인가 ? 이런 생각을 하게 됐으며 그리고 그때 선택했습니다 . 계속 믿기로 그리고 모두 믿기로 .   그리고 독서에 비춰 저는 유력한 가문 출신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왜냐면 잠언이 얘기하듯 우리는 세속적인 것에 영향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 잠언은 인간이 영적으로 얼마나 약한지 정확히 꿰뚫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   “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 주님이 누구냐 ?’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

양승국 신부님의 복음 묵상 ==31/8/2024 ===눈만 뜨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이 하루는 너무나 은혜로운 탈렌트입니다!

  탈렌트 비유를 묵상하면서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탈렌트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저는 우울한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내면서, 주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주님, 저 사람들에게는 저리 좋은 탈렌트를 주셨으면서, 어찌 제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나요? 백번 천번 생각해도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니, 어찌 이리 사람을 차별대우 하시나요?” 하면서 많이도 따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공동선을 위해 사용할 탈렌트를 분명히 주셨다는 것을. 관건은 우리 인간 측의 노력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주셨는데,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고, 캐내고 갈고 닦고, 엎그레이드 시키려는 우리 측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늦었지만 주님께서 제게 주신 탈렌트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봅니다. 제게 선물로 주신 재능, 장점, 오랜 기간 쌓아올린 전문성, 스펙 등도 탈렌트이겠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지니고있는 이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이 둘도 없는 탈렌트입니다. 아직 내게 남아있는 젊음과 열정이 좋은 탈렌트입니다. 조금 나이든 중년의 원숙함과 균형감각도 좋은 탈렌트입니다. 크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노년의 지혜로움도 멋진 탈렌트입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새 아침과 24시간이라는 하루가 너무나 은혜로운 탈렌트입니다. 하루 온종일 빈둥빈둥 영양가 제로의 하루를 보낸 날이 있습니다. 하루의 끝자락에 서면 무의미한 하루를 허송세월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하고 우울해집니다. 반대로 하루 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헌신한 날이 있습니다. 몸은 파김치처럼 녹초가 되고 너무나 고되어 자동으로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지만, 마음은 뿌듯해지고 영혼은 맑아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잘 사용했기 때문에 기쁨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주님께서는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이렇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

이영근 신부 님의 복음 묵상 == 31/8/2024==주신 분을 신뢰하는 일

  <주신 분을 신뢰하는 일>   오늘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는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탈렌트를 맡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탈렌트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종들에 대한 주인의 ‘믿음의 표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의 선물’이요,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명’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선물은 ‘잘 보관하라’고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하라’고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곧 선물은 말씀처럼 ‘씨앗’(마태 13,1-23)으로, 곧 ‘종자돈’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할 때는 그 선물을 활용하여 맺은 열매에 따라 대가를 지불합니다.   결국 ‘선물에 따른 응답 실행’이 바로 하늘나라를 얻기 위한 경기의 규칙인 셈입니다.  주인은 첫째와 둘째 종에게 말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태 25,21.23) 그리고 셋째 종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 25,26) 사실 은총의 선물은 항상 충만히 주어지지만, 주는 대로 다 받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만큼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1/8/2024 ==나에게 맡겨진 탈렌트

  “날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시편33,12)   제 유일한 소망은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  조용히, 묵묵히,  가을단풍처럼, 저녁노을처럼, 곱고 품위있게 나이들어 가는 것입니다. 외관에는 초연하고 자유로우니, 안이 맑고 밝으면 밖도 저절로 그러하리란 믿음 때문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자비의 집 숙소 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볼 때 마다 되뇌는 오래된 자작시가 있습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도 여전히 새롭게 마음에 와닿는 시입니다.   “문열면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 구름   빛나는 별들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1998.9>   하느님의 사랑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도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뵙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삶의 좋은 지혜가 됩니다. 매사 소홀히 해서는 안됨을 깨닫습니다.   “선은 아무리 쌓아도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악은 아주 작은 불씨일지라도 집을 태울수 있다.”<다산> “선은 반드시 쌓인 후에 이뤄지고 악은 비록 사소하더라도 경계해야 한다.”<주자>   어제 교리문답같은 말마디도 고마웠습니다. “예수님이 30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사셨고, 그로써 우리의 일상을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루하루 맡겨진 사명에 최선의 노력을 다함으로 거룩한 일상을 사는 게 참으로 중요하며 잘 사는 일입니다.   어제 마산 배기현 주교님이 수도공동체에 선물한 “거제도 가는 길, 피델리스” 책을 보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