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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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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 1/3/2024(매일미사)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

2024년 3월 1일 금요일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자) Friday of the Second Week of Lent] ========================================== 제1독서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7,3-4.12-13ㄷ.17ㄹ-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

김찬선 신부님의 복음 묵상 == 29/2/2024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 “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그 잎이 푸르고 줄곧 열매를 맺는다 .”   오늘 예레미야서를 바탕으로 의지와 신뢰의 차이를 묵상해봅니다 .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과 누구를 신뢰하는 것의 차이 말입니다 .   의지의 문제점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기대어 서기에 스스로 지탱하거나 설 수 없습니다 .   지팡이에 의지하면 지팡이 없이는 서 있거나 걸을 수 없습니다 . 술에 의지하면 술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술 중독자가 되기도 합니다 .   이것은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의지하는 그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서지 못합니다 .   의지하는 그 사람이 다행히 좋은 사람이면 다행이지만 좋은 사람인 줄 안 그가 그렇지 않으면 큰 문제겠지요 .   그에 의한 행복이 그에 의한 불행으로 바뀔 것이고 , 나의 인생과 나의 행불행이 그에 의해 좌우되고 그에게 매입니다 .   그렇다면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 자기를 믿고 자기 힘에 의지하는 사람 말입니다 .   자기 인생과 자기 행복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훌륭하고 , 불교의 경우 이런 면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종교라고 할 수 있지요 .   그러나 오늘 예레미야서가  “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 ” 라고 얘기하듯 자기를 과신하거나 아무도 믿지 않는 곧 과신과 불신의 자기 믿음이라면 다른 얘기일 것이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보다 더 문제일 것입니다 .   그것은 자기 과신이 타인 불신으로 이어지고 타인 불신이 단절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자기 과신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이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이고 하느님과도 단절하게 하기에 더 큰 문제입니다 .   주님을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의 복음 묵상 == 29/2/2024 == “어떤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어떤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돈이 든 자루도 옷 두 벌도 금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얼핏 보기에는 ‘좀 너무하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근본 생각을 헤아려보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깊은 뜻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넉넉한 돈 자루를 지니고 있다면 제자들이 하느님을 의지하기보다 재물이나 사람을 더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에게 제일 위험한 생각은 ‘돈이면 다 된다.’라는 풍조입니다.   런데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이고 ‘진실’입니다.   물론 돈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궁극적인 힘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떠나 인간에게 의지하는 자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에례 17,5-6)   그리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를 또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7-8절)   아무리 사막이라도 물가에 심은 나무는 싱싱하게 자라듯이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는 지치지도 않고 생기 있게 하느님 안에 사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부자와 라자로’의 주님 비유 이야기를 전하며 사람이 어디...

양승국 신부님의 복음 묵상 == 29/2/2024 ==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잘 잡아낼 수 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잘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에 가면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부조 조각화 한 점 있는데, 그 모습이 아주 기괴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 그 모습이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작품입니다.   그냥 지나치는 관광객들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작품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큰 감명과 깨달음을 주곤 한답니다.   주인공의 형상은 대충 이렇습니다. 앞머리는 숱이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완전 대머리입니다. 발뒤꿈치에는 조그마한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요, 길게 늘어뜨린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발견했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내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나의 이름은 바로 ‘기회’이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 외적으로는 행복한 것처럼 비춰지지만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불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모를 잘 만났든지, 아니면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 났던지,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몇 평생을 쓰고도 남을 재산을 축척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무슨 말이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 좋은 기회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것입니다. 관대한 나눔을 통해 어려운 이웃도 돕고 또 자신을 위해서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실을 보십시오. 라자로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거지가 자신의 식탁 바로 아래 기어 다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외면...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의 복음 묵상 == 29/2/2024 ==루카 16,19-31: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복 음 :  루카  16,19-31: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자주색 옷을 입은 부자의 잘못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는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투성이로 대문 앞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지만 가엾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자기 재산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식상에서 내버리는 빵부스러기라도 그 거지에게 주었어야 했다. 아무 동정도 받지 못한 라자로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으려 했다. 게다가 불치의 병이 그를 괴롭혔다. 개들조차 그의 종기를 핥으며, 그를 해치지 않고 돌보고 있다. 그런데 부자는 개들보다 잔인했다. 라자로를 가엾이 여겨주지도 않았고 무자비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늘에서의 삶과 영원한 형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에 관한 결과이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25-26절) 라고 하신다. 이 구렁은 서로 반대되는 삶을 선택한 데 대한 심판이다.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삶을 선택하면 깊고 가늠할 수 없는 구렁을 파고 만다. 주님께서 고통을 겪고 있는 부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 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는 살아있을 때 라자로와 그 같은 사람들을 돌봄으로써 그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 두었어야 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고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부자는 고통을 겪으며 마지막으로 라자로를 자기 집으로 보내어 다섯 형제가 또 이 고통스러운 곳으로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한다. “...

함 승수 신부님의 복음 묵상 == 29/2/2024 ==루카 16,19-31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루카 16,19-31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비유’는 그 이야기를 듣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즉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에 따라 같은 말씀이라도 그 뜻이 미묘하게 달라질 때가 있는데 오늘 복음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듣는 이들은 바로 ‘바리사이’들입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잘 살면 구원받는다고 믿던 근본주의자들이지요. 그런데 자신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잘 살아도 죄를 지어 부정해진 이들과 접촉하면 그 부정함이 자신에게 물든다고 생각했기에, 바리사이들은 자신이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큼, 부정한 이와 접촉하지 않는데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죄인들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켜 영적인 거룩함과 순수성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들을 일컫는 ‘바리사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분리된 사람’, 혹은 ‘구분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 타인과 나를 분리시키는 개인주의,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여기는 이기주의가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커다란 ‘장벽’이 됨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당시 왕들이나 입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하고 값도 비싼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 정도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 집 문 앞에 병든 채 누워있는 라자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질병과 굶주림에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던 그를 동네 개들이 달려들어 귀찮게 구는데도 그 상황을 나 몰라라 했지요. 자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