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3의 게시물 표시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1/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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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바오로 신부님 == 1/11/2023(매일미사) ==[(백) 모든 성인 대축일]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백) 모든 성인 대축일] [(백) Solemnity of All Saints] =========================== 오늘 전례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따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린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어 609년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5월 13일이었는데, 9세기 중엽에 11월 1일로 바뀌었다. 교회는 이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사이의 연대성도 일깨워 준다. 제1독서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1/10/2023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루카 13,19)

  231031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루카 13,19)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한 쌍의 비유를 전해줍니다. 곧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루카 13,19)    ‘겨자씨’는 유다문학에서 ‘작은 것’의 전형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그것은 ‘정원’에 심었을 때를 말합니다. 아무 데나가 아니라 ‘정원’에, 그것도 “자기 정원”에 심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면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라는 말에서, “깃들다”는 단어의 뜻은 “밑에 거주하다” 곧 “장막에 들어가다”,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곧 새들이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날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안전하고 영속적인 거처를 마련하고 지속해서 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교회’라는 혹은 ‘가정’이라는 생명의 말씀나무에 한 둥지를 틀고 사는 새 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미 한 그루의 생명나무입니다. 당신께서 뿌려진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 사랑으로 피어난 나무입니다.   한편, ‘겨자씨의 비유’가 하늘나라의 외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누룩의 비유’는 내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누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위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들어가 자기의 능력을 전체에 돌려줍니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반죽되어야 하고, 섞여야 됩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속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 섞여서, 부풀리고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룩’을 밀가루 “속에” 집어넣었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예수고난회 박태원 신부님 [10월 31일] 살아있는 매일의 지혜(희망을 품은 고통)

    -  희망을 품은 고통  - 거룩한 고난의 학교에서 마음의 겸손과, 하느님 앞에서 나의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이고 침묵과 희망 속에서 고통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 기도 ]   사랑하는 예수님, 주님께서는 비록 인간본성에서 때때로 울부짖었지만 고난에 따르는 고통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부께서 그 고통을 선을 위해 주셨음을 믿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저도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사랑을 위한 잠시의 정화임을 믿고 받아들이게 해 주소서.     - ' 살아있는 매일의 지혜 '   중에서   -  

함 승수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1/10/2023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루카 13,18-2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둘 다 당시 이스라엘 가정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흔하고 일반적인 식재료이지요. 이 둘은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둘째, 너무 흔해서 귀한 취급을 받지 못하며 셋째, 자기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고, 넷째, 그것이 온전히 성장하면 다른 존재에게 유익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 겨자씨는 흙 안에서, 누룩은 밀가루 반죽 안에서 열과 수분과 양분을 만나 변화됩니다. 겨자씨는 죽어서 싹이 트면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까지 깃들이는 안정적인 거처가 되고,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하여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빵이 되게 하지요. 결국 예수님이 이 두 가지 재료를 ‘하느님 나라’에 비유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들의 공동체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그런 모습으로 살라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날개 아래로 부르신 것임을 강조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각각의 재료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겨자씨’는 유다 문학에서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음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정원’에 심으면 아주 큰 나무가 된다고 하시지요.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을 잘 준비되고 정돈된 우리 마음이라는 정원에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든든한 안식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잘 심고 가꾸어 큰 나무로 키워낼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게 크고 튼튼한 나무를 달라고 떼를 쓰는 겁니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1/10/2023 ==하느님의 소원_

  -우리 하나하나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삽시다-     하느님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늘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이점 잊지 말고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평생 날마다 쓰는 강론이지만, 제일 힘든 일이 강론쓰는 일입니다. 첩첩산중疊疊山中 매일 산을 넘는 마음으로 강론을 씁니다. 강론을 쓰는 일은 살아 있음의 확인이기에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산을 넘듯 강론을 쓰려합니다. 때로 생각이 안날 때, 막막할 때 옛 시집을 펼쳐 봅니다. 18년전 2005년도 이때쯤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일을 시작하였다(이사43,18-19ㄱ) 그렇다 흘러간 것들에 마음 아파해하지 말자 아쉬워하지 말자 쓸쓸해하지 말자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 흘러간 사람은 사랑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   만나는 사람에, 사랑에, 시간에 충실한 게 제일이다 이게 영원한 현재를, 젊음을 사는 길이다 흐르고 흘러도 늘 새롭게 만나는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오늘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예수님의 평생 화두가, 평생 희망이자 꿈이 하느님의 나라였고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삶자체가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의 꿈이 실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꿈의 사랑, 희망의 사...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31/10/2023 == 하느님 나라라는 목표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2023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덜 중요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진정한 목표에서 멀어진다.”   미국의 작가 로버트 브롤트의 말로, 크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 정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지도를 펼쳐 보니, 예상처럼 산 정상과 전혀 다른 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요?   첫 번째, ‘어차피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하잖아? 가다 보면 다시 정상으로 가겠지.’   두 번째, ‘그냥 산에 가기만 하면 되잖아? 굳이 정상에 가지 못했어도, 이 산은 간 거지.’   이런 마음으로는 산 정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산 정상이라는 목표를 결정했다면 산 정상만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걸어야 합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목표만을 봐야 합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아들이 다쳤습니다. 다친 아이를 데리고 어디에 가겠습니까? 당연히 병원이고 병원만을 바라보고 바쁘게 뛰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목요일마다 신학교에 가서 강의합니다. 어느 날 강의하러 가기가 너무 싫은 것입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싫다고 가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당연히 강의하러 갔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이기에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인 ‘사랑 실천’이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나의 구원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목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 순간에는 작고 중요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바라보고 실천해 나갈 때, 목표에 가까워지면서 엄청난 결과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1/10/2023==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순례 중에 ‘남양 성모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저는 성지를 담당하는 신부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였던 마리아가 생각났습니다. 신부님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34년 동안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성모님의 성당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한결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저의 친한 동창 신부의 형님이기에 30년 전에 ‘남양 성모 성지’엘 몇 번 갔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빈들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었는데 34년이 지난 지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성모님의 성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의 성당에 자리를 잡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괴로움은 동료 사제들의 몰이해와 오해였을 것입니다.   60이 훌쩍 넘은 신부님은 아직도 청년과 같은 ‘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지난 팬데믹 때입니다. 3000곳이 넘는 성모성지 중에서 남양 성모 성지가 교황청에 의해서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남양 성모 성지는 교황님과 함께 팬데믹 종식을 기원하는 ‘묵주기도’ 성지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교황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하는 30곳의 성지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성모님과 함께하려는 좋은 몫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성모 대성전 아래에 ‘예술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반 신부의 복음 묵상 =31/10/2023==소리 없는 변화

  연중 제 30 주간 화요일  ( 루카 13,18-21)   소리 없는 변화   “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  그것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  왜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하셨을까 ?  겨자씨는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입니다 .  오늘 그 씨를 보여드립니다 .  얼마나 작은지 보십시오 .  그런데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새가 깃들만큼 우거집니다 .  누룩 역시 밀가루 반죽 속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입니다 .  누룩도 밀가루 양에 비교해 아주 보잘것없을 만큼 적은 양이지만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서 밀가루 전체의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한 사람이 내 삶의 자리와 머무는 곳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믿음을 가진 우리 한 사람 ,  한 사람이 겨자씨와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내가 바로 서면 지금은 미약하지만 분명 큰 변화를 이룹니다 .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합니다 .  사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입니다 .   콩나물을 키울 때 콩나물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나갑니다 .  하지만 콩나물은 크고 있습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장과 변화는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  믿음의 사람에게는 순간순간이 은총의 기회요 희망입니다 .  실망과 좌절 안에서도 여전히 성장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따라서 매 순간을 감사해야 합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었는데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  이미 왔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천만다행입니다 .  왜냐하면 완성으로 갈 기회가...

오늘의 성서말씀과 좋은 말 with TikTok 31/10/2023

 

오늘의 그림과 말씀 묵상 ==31/1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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