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2의 게시물 표시

정천 사도 요한 신부님 == 01/10/2022(매일미사)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2년 10월 1일 토요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백) Memorial of Saint Therese of the Child Jesus, Virgin and Doctor of the Church] ============================================================= 오늘 전례 <로마 보편 전례력에 따라 2018년부터 기념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결핵을 앓다가 1897년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짧은 기간의 수도 생활이었지만 데레사 수녀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고행하였다.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그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성녀가 선종한 뒤에 나온 그의 병상 저서들은 세계 각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비오 11세 교황은 1925년 그를 시성하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성녀는 ‘소화(小花) 데레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1독서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 욥기의 말씀입니다.42,1-3.5-6.12-17 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3 당신께서는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5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12 주님께서...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30/9/2022 == "나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220930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나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가을이 익어갑니다. 우리 안에 사랑도 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곧 ‘회개하지 않은 도시들에 대한 불행선언’(13-15절)부분과 ‘파견 받은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파견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16절)는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 코라진, 벳사이다. 가파르나움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는 회개하지 않은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도 회개하지 안했기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곧 그들은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기적을 보지 못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도 여전히 회개하는 일에는 더딘 저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오늘 <복음>의 둘째부분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애태우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죄인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이는 말씀을 전하는 이가 얼마나 존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30/09/2022=저희도 하느님 말씀에서 생명의 샘을 찾고 구원의 양식을 얻어 더욱 풍요로이 살아가게 하소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게 됩니다 .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  겟세마니 동산에는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던 곳에 성당이 있습니다 .  지금도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을 위해서 깨어 있을 것을 다짐하곤 합니다 .  겟세마니 동산 위로는 주님의 눈물성당이 있고 ,  더 위에는 주님의 기도 성당과 주님의 승천 성당이 있습니다 .  예루살렘 성전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가 있고 ,  성전 안에는 주님의 무덤 성당이 있습니다 .  예루살렘 성전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면 참회의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  가나에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 표징을 보여 주셨던 혼인잔치 성당이 있습니다 .  그곳에서 부부들은 혼인갱신 예식을 하곤 합니다 .  타볼 산에는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한 성당이 있습니다 .  한쪽에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의 경당이 있고 ,  다른 한 쪽에는 예언을 대표하는 엘리야의 경당이 있습니다 .   갈릴래아 호숫가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고 ,  복음을 전한 곳들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  어부들은 그물을 버리고 ,  배를 버리고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  빵을 많게 한 기적 성당과 참된 행복을 전한 진복팔단 성당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 너 나를 사랑하느냐 ?’ 라고 물었던 바위가 있습니다 .  그 바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여전히 주님께서 저에게도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 ‘ 가브리엘 너 나를 사랑하느냐 ?’  저는 베드로 사도처럼  ‘ 예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 라고 응답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30/09/2022 ==회개의 생활화 -하느님 공부;기도와 말씀-

회개의 생활화 -하느님 공부;기도와 말씀-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95;7.8).   꽃도 물주지 않으면 시들 듯 영혼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듯 하느님도 그러합니다. 끊임없이 꽃에 물주듯 영혼에 끊임없는 물주기가 기도와 말씀 공부, 즉 하느님 공부이고, 영혼도 끊임없이 하느님을 만나야 가까워지고 건강해지니 이래서 역시 한결같은 기도와 말씀의 하느님 공부입니다.    주님을 만남과 동시에 이뤄지는 회개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주님 만남을 통해 주님을 닮아 사랑과 순수, 겸손과 온유, 자비와 지혜, 기쁨과 평화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회개 은총이 너무 차고 넘칩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한결같은 회개의 생활화, 일상화, 습관화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영혼 건강에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모든 수행이 그러하듯 끊임없는 회개 역시 의식적 영적훈련입니다.   이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회개 은총에 감격한 제 자작 고백 기도시가 다음 행복기도로 일명 예닮기도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좌우명 기도와 더불어 참 많이 나눈, 2018년 성령의 은총으로 탄생한 기도문입니다. 어제도 서교동 성당 자매님들과 나눴고 반드시 낭송하여 바치도록 합니다.    주님과 만남의 기쁨, 회개의 기쁨을 노래한 감사와 감격에 넘친 사랑 고백의 기도시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에 위치한 예수성심상 앞을 지날 때, 자주 바치는 기도문입니다. 좋은 시나 기도문은 늘 읽어도 새롭고 회개를 촉발합니다. 영혼을 맑고 밝게 아름답게 향기롭게 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30/09/2022==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의 본모습을 인정하면서, 다른 이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사랑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완벽한 배우자’가 아니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노총각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여성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 이 형제님은 결혼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였습니다. 어느 날, 이 형제님의 지인이 “아직도 완벽한 배우자를 못 찾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는 만났었다고 고백합니다. 지인은 깜짝 놀라서 “그렇다면 왜 지금도 혼자예요?”라고 물었지요. 이 형제님께서는 한숨을 내쉰 뒤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딱 한 번 완벽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더군요. 그래서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완벽한 배우자만 찾고 있었지, 본인 스스로가 ‘완벽한 배우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실 자기의 완벽함을 채우는 데 먼저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우리 일상 삶 안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방의 완벽함을 요구하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에 관해서는 철저히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자기의 완벽함 정도를 먼저 봤어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완벽하시고, 그에 반해 인간은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은 기억한다면 남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모습을 늘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즉, 남에는 엄격하고, 자기에게만 관대합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도시들은 율법 학자들의 종교교육이 가장 성행하던 종교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만과 자기도취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했고,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종교도시였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곳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듣던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예수님...

반 신부의 복음 묵상 ==30/09/2022 =회개의 삶

연중 제26주간 금요일(루카10,13-16)   회개의 삶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우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목마른 사람에게는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물을 찾아가는 사람은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게 될 것입니다. 만약 살았다면 말을 잘 들은 사람이요, 죽었다면 말을 듣지 않은 사람입니다. 말을 듣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진 죽음은 누가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에 떨어진 것입니다.   오늘 언급된 코라진, 베싸이다, 지역은 가파르나움과 함께 갈릴래아 호수 북동 해안에 삼각대를 형성하고 있고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로써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신 예수님의 기적들이 특히 두드러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동네들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생활하는데 더뎠습니다. 많은 은총을 입은 만큼 새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경고합니다. “심판 때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네가 하늘에 오를 것 같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루카10,15).   사실 띠로와 시돈은 이방인 지역으로 유다인들은 이 동네 사람들을 세속적인 관심사에 빠져버린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자기네 동네와는 달리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보다도 못하다고 꾸중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꾸중을 듣는 것이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거두고 자신의 속을 본다면 얼마나 큰 은총인지요? 쓴 것이, 약이 된다는 말을 새삼 생각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세상의 자녀들보다도 못하다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았다면 매를 맞아도 많이 맞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시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각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응분의 칭찬을 받게 ...

강수원 베드로 신부님 == 30/9/2022(매일미사)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22년 9월 30일 금요일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백) Memorial of Saint Jerome, Priest and Doctor of the Church] ============================================= 오늘 전례 예로니모 성인은 340년 무렵 크로아티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깊이 공부한 뒤 정부의 관리로도 일하였으나,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사제가 된 그는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하였다.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가 그것이다. 또한 성경 주해서를 비롯한 많은 신학 저술을 남겼다. 420년 무렵 선종한 예로니모 성인은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제1독서 <아침에게 명령해 보고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았느냐?> ▥ 욥기의 말씀입니다.38,1.12-21; 40,3-5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12 “너는 평생에 아침에게 명령해 본 적이 있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지시해 본 적이 있느냐? 13 그래서 새벽이 땅의 가장자리를 붙잡아 흔들어 악인들이 거기에서 털려 떨어지게 말이다. 14 땅은 도장 찍힌 찰흙처럼 형상을 드러내고 옷과 같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15 그러나 악인들에게는 빛이 거부되고 들어 올린 팔은 꺾인다. 16 너는 바다의 원천까지 가 보고 심연의 밑바닥을 걸어 보았느냐? 17 죽음의 대문이 네게 드러난 적이 있으며 암흑의 대문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18 너는 땅이 얼마나 넓은지 이해할 수 있느냐? 네가 이 모든 것을 알거든 말해 보아라. 19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느냐? 또 어둠의 자리는 어디 있느냐? 20 네가 그것들을 제 영토로 데려갈...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9/09/2022 == 왜 천사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까?

    2022년 다해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 왜 천사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까? >            복음: 요한 1,47-51       민수기 22장에 재미있으면서도 아리송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압 임금은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예언자 발라암을 불러와 이스라엘 군대를 저주하려 합니다. 하지만 발라암은 하느님께서 가기를 원치 않으시자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니 나귀를 타고 떠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이 바뀌셔서 발라암을 죽이려 하십니다. 천사가 칼을 들고 나귀가 오는 앞길에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귀는 천사를 봅니다. 자신과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길에서 벗어납니다. 그러자 발라암은 말을 안 듣는 나귀를 때립니다. 천사가 더 위협해오자 나귀는 벽으로 붙습니다. 그러자 발라암은 나귀를 더 심하게 때립니다. 이젠 막다른 골목에 다다릅니다. 피할 길이 없자 나귀는 주저앉습니다. 발라암은 나귀가 미쳤나보다 생각하고 나귀를 죽도록 때립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주십니다. 나귀는 자기가 칼을 든 천사를 보고 피하려고 한 것인데도 왜 죄 없는 자신을 때리냐며 따집니다. 나귀가 하는 말을 듣자 발라암은 그제야 눈이 열려 칼을 들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천사를 봅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너의 나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렸느냐? 네가 내 앞에서 나쁜 길을 걷기에, 내가 막으려고 나왔다.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이나 내 앞에서 비켜났으니 망정이지, 내 앞에서 비켜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귀는 살려 주고 너는 이미 죽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29/09/2022=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 천사 ( 天使 )’ 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  첫째는  ‘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로써 ,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 .’ 입니다 .  예언자들은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그릇된 길을 갈 때면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면 하느님의 징벌을 전하였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과 절망 중에 있을 때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  초대교회에는 교부들이 있었습니다 .  교부들은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  교부들은 신학과 교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  이단과 이교도와 맞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  교부들은 영성과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  성인과 성녀들이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  성인과 성녀들은 세상의 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였습니다 .  우리가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다면 우리들 역시 천사가 될 것입니다 .   두 번째는  ‘ 착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 .’ 입니다 . ‘ 측은지심 ( 惻隱之心 )’ 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  그렇게 보면 주변에는 천사들이 많습니다 .  제가 미사를 도와 드리는 부르클린 한인 성당에도 천사들이 있습니다 .  매주 친교를 준비하는 성모회원들이 있습니다 .  김밥 ,  비빔밥 ,  국수 ,  떡 ,  빵 ,  커피 ,  컵과일 같은 것을 마련합니다 .  미사를 마친 후에 교우들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