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매일 미사 묵상 (1/3/2020) -- 마태오 4,1-11 --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020년 3월 1일 주일  [(자) 사순 제1주일]  [(자) First Sunday of Lent] ================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7-9; 3,1-7 7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3,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9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9/02/2020 - 복음이 기쁘면 회개한 것이다

2020년 가해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이 기쁘면 회개한 것이다>  복음: 루카 5,27ㄴ-32 페니는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급기야 미시간 주 배틀 크릭에 있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창문 너머로 찬송가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찬송가였습니다. 그는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사랑하는 하느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재기에 성공하여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풀이 죽어서 그곳에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지만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로 등장하고, 예수님과 식사를 함께 하는 세리와 죄인들은 회개한 사람들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하시기 때문에 ‘회개’라는 것을 넘지 않으면 복음을 믿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회개의 의미를 모른 채 복음을 믿으려하기 때문에 넘어지고 맙니다.       회개는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생일대의 대전환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복음일까요? 바오로 사도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20)라고 말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조재형 신부님 - 29/2/2020 -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뉴멕시코에서 뉴욕으로 오는 길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신 어르신의 추도식에 올 수 있는지 확인하는 문자였습니다 .  시간이 되기에 갈 수 있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  추도식장에는 어르신의 영정이 있었습니다 .  교회의 목사님 ,  사찰의 스님도 오셨습니다 .  종교는 다르지만 ,  신념은 다르지만 어르신을 위한 추도식에 함께하였습니다 .  어르신께서도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어르신의 추도식에 함께 하면서 나바호 족 어르신과의 대화도 생각났습니다 .  왜 우리는 이 좁은 지구에 살면서 전쟁과 폭력으로 소중한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가 ?  왜 우리는 편을 가르면서 나와 다른 편을 죽이는가 ?  모든 갈등과 분쟁은 본질은 외면하고 현상에 머물기에 생긴다고 합니다 . 불가에서는  ‘ 색즉시공 ( 色卽是空 ),  공즉시색 ( 空卽是色 )’ 이라고 합니다 .  본질은 현상으로 드러나고 ,  현상은 본질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  그러기에 드러나는 모든 현상은 같은 본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  그러기에 서로 다른 현상을 가지고 편을 가르고 ,  싸우고 ,  빼앗고 ,  죽이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  하얀 종이로 배를 만들 수도 있고 ,  새를 만들 수도 있고 ,  비행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배 ,  새 ,  비행기라는 현상은 다르지만 하얀 종이라는 본질은 같다고 합니다 .  새는 다시 배가 될 수 있고 ,  배는 다시 비행기가 될 수 있고 ,  비행기는 다시 새가 될 수 있습니다 .  이 세상이라는 현상에서는 힘들게 사셨지만 ,  어르신께서는 더 이상 눈물도 ,  슬픔도 없는 ...

무지無知의 치유 -29/2/2020 - 끊임없는 회개가, 예수님이 답이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2020.2.29.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이사58,9ㄷ-14 루카5,27ㄴ-32   무지無知의 치유 -끊임없는 회개가, 예수님이 답이다-     새벽 인터넷 뉴스를 보면 저절로 한숨 짓게 됩니다. 좌우간 코로나 19 사태의 위기를 잘 통과해 나가야 하고 나갈 수 있고 나가야 함을 믿습니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잘못된 종교, 광신도의 광적 종교는 세상의 아편이나 부패, 암적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신에 퍼져나가는 암적 존재, 전신이 썩어가는 부패의 존재처럼 사회 전체에 퍼져가는 암적 존재, 부패의 존재말입니다. 참으로 바르게 믿어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과 같은 종교인이 진짜 종교인이고 우리 가톨릭을 포함한 그리스도교가 목표하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세상의 빛인 참된 그리스도교인들이요, 세상의 부패를, 세상의 암세포의 확산을 막아주는 세상의 소금인 참된 그리스도교인들입니다. 참 많이도 강조했던 마음의 병, 무지입니다. 동방영성의 통찰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인간 모든 불행이 무지라는 마음의 병에서 기인합니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종교가 아니라 무지의 어둠을 조장하는 어둠의 종교라면 바로 아편이요 암적존재요 부패의 존재입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 ‘무지의 인간’이라 정의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마음의 병중 가장 기본적인 병은 ‘무지ignorance’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무지의 병입니다. 무지를 선두로 ‘망각forgetfullness’이, ‘완고함hardness’이, ‘눈멈blindness’이, ‘오염contamination’이, ‘무분별imprudence’이 뒤를 잇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병의 근원적 치유는 무지의 병으로부터의 치유입니다.   무지의 병은 무지의 죄, 무지의 악이라 해도 좋습니다. 참으로 무지의 병의 치유가 힘든 것은 무지의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광신狂信과 맹신盲...

찬미와 성서 말씀 - 시련속에서 주님을 경외함 (집회 2:1-7)

요즘 같이 바이러스 같은 질병속에서나 서로에 대한 의심으로 불안한 마음이 늘어날때, 눈에 보이는 것들에 들리는 소리들에 불안한 마음이 늘어날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늘어날때, 마음에 담아 두면 좋은 성서 말씀이랑 찬미 곡 올립니다. ========================== 집회서 2장 1절 - 7절 ( 시련 속에서 주님을 경외함) 애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네 마음을 바로 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때 허둥대지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디라.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 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 찬미: 이제 역전되리라 (시와 그림) 가사 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원망치 마라 너의 입을 지켜라  저들은 너의 입을 보고 있다 마음을 뺏기지 마라  내가 널 도우지 않는단 소리에  너의 모든 게 모든 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저들의 힘이 너를 압도해도  저들의 힘이 네 숨을 조여도  너는 보리라 기도의 능력을  내가 역전시키리라 ...

한재호 루카 신부 - 매일 미사 묵상 (29/2/2020) -- 루카 5,27ㄴ-32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2020년 2월 29일 토요일  [(자)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자) Saturday after Ash Wednesday]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8/2/2020 - 이웃이 신랑처럼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으면 단식해야 할 때이다

2020년 가해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웃이 신랑처럼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으면 단식해야 할 때이다>     복음: 마태오 9,14-15  미국의 존 머레이는 한 푼의 돈도 헛되게 쓰지 않는 검소한 생활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느 날 머레이가 밤늦도록 독서를 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켜놓은 촛불 2개 중 하나를 끄고 정중히 할머니를 맞았습니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는 겸연쩍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 기부금을 부탁하려고 왔어요. 거리에 세워진 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조금만 도와주세요.”라며 간곡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머레이는 돕겠다는 대답과 함께 5만 달러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선뜻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말에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조금 전에 촛불 하나를 끄는 것을 보고 모금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거액을 기부하겠다니 기쁘고 놀라울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머레이가 대답했습니다. “독서를 할 땐 촛불 2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는 촛불 하나면 충분하지요. 이처럼 절약해왔기 때문에 돈을 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제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 절제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하느님은 절제하고 단식하는 것 자체로만은 칭찬을 해주시지 않으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잘못된 단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단식은 나를 작게 만들이 이웃을 크게 보려는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웃을 판단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단식해...

조재형 신부님 - 28/2/2020 - 나의 몸을 채우는 것이 ‘사랑, 자비, 희생, 나눔’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나바호 원주민 할아버지와 대화하였습니다 . “ 할아버지의 꿈 ,  희망은 무엇입니까 ?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 50 년 전에 물어보았다면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  그러면 할아버지의 삶을 이야기 해 주세요 ?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  언젠가 우리가 사는 땅에 많은 사람이 왔다 .  영국 ,  폴란드 ,  슬로바키아 ,  스페인 사람들이 왔다 .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  그들은 우리와 친교를 맺으러 오지 않았다 .  그들은 땅과 재산을 빼앗으러 왔다 .  우리는 그들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  마치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처럼 ,  일본에 의해서 끌려갔던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는 도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  미국 정부는 우리에게 살던 땅으로 돌아오게 했다 .  의료와 교육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  우리는 더 이상의 항의나 투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  미국의 동부에서 서부로 철도를 연결하면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  그들에게 원주민은 어떤 대상이었을까요 ?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아도 되고 ,  원주민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도 되고 ,  마음에 안 들면 원주민들을 쫓아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원주민들의 문화 ,  원주민들의 철학 ,  원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먼 이국땅으로 여행 왔던 사람이 고향에서 보던 나무와 비슷한 나무를 보고 향기를 맡아보았지만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  돌아와서 원주민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 흠 ,  저 나무는 고향의 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향기가 없네 !’  그러자 원주민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 누군가 당신에게 갑자기 다가와 묻지도 않고 냄새를 맡으면서 실망한 표정으로 저 나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