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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공동체의 꿈과 실현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2019.4.30.부활 제2주간 화요일, 사도4,32-37 요한3,7ㄱ.8-15 하늘나라 공동체의 꿈과 실현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   모든 이들의 영원한 화두는 아마 공동체일 것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바 이상적 아름다운 꿈의 공동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원한 꿈도 하늘나라 공동체의 실현일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하늘나라 공동체 꿈의 실현을 위해 평생 최선을 다했고 여기서 탄생된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완성은 없습니다. 사실 공동체 생활보다 더 힘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 저는 함께 사는 것이 수도생활이요 함께 사는 것이 수도생활의 어려움이요 함께 사는 것이 도닦는 것이라 수도생활을 정의하곤 합니다. 피정을 다녀가는 모든 분들에게 물어도 공동생활이 쉽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격월 간 수녀원에 가서 2시간 남짓 많은 수녀님들에게 고백성사를 드리지만 거의 모든 죄들이 공동체내 수녀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것들입니다. 수녀님들뿐 아니라 수도원을 찾는 분들의 모두가 공동체 인간 관계에서 파생되는 죄들입니다. 그러니 공동체 생활에는 답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늘 새로운 노력의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보여 줍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하늘나라 공동체의 모델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지향하는 이상이요 여기서 영감받아 탄생된 수도공동체입니다. 다음 묘사되는 사도행전 공동체는 얼마나 아름다운 지요. 그대로 하늘나라 공동체의 꿈이 실현된 모습입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하느님께서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최...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30)

어렸을 때부터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일주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종종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전거  하이킹의 모습은 늘 부러웠고,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었지요. 그러다가 2006년에 큰 맘 먹고  부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첫 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고생고생 하다가 겨우 수원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원까지 왔을  뿐인데도 온 몸이 쑤시면서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다음 날 그래도 숙소에서 잘 쉬었는지 개운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언덕을  오르면서 힘이 부칩니다.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어깨에  짊어졌던 모든 짐을 택배로 부쳤습니다. 반드시 필요해서 챙겼던 짐이었지만 마치 바위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면서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대구를 지났을 때 완전히  녹초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근처 PC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잃어버리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 여행을 멈출 수가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지요. 자전거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여행을 멈추는 것이 더 나아 보였던 것입니다. PC방에서  한 시간을 채운 뒤에 나왔지만 자전거는 처음 세워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군요.  결국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자신감 하나는 완전히  충만해질 수 있었습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조금만 더 가자.’라는  생각이 부산까지 갈 수 있게 해주었다는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려운 일이 ...

양승국 스테파노, SDB(성령 안의 삶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성령 안의 삶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시 보기 드믄 지도자 , 그나마 괜찮았던 유다인 니코데모에 대한 특별 교육을  계속하십니다 . “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 ( 요한 복음   3 장  7~8 절 ) 예수님께서는 내친 김에 간단하게나마  ‘ 성령 ( 聖靈 )’ 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 성령이란  ‘ 하느님의 영 ’,  ‘ 하느님의 기운 ’ 을 의미합니다 . 그런데 그 영은 마치도  바람같다고   말씀하십니다 . 특별하게도 그리스어로  영과 바람은 같은 단어 , 프네우마 (pneuma) 입니다 . 바람이 자유자재로 부는 것처럼 하느님 영의 움직임도 자유롭습니다 .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하느님 영의 흐름도 불가사의하고 신비롭습니다 . 성령도  바람같지만 , 우리네 인생도  바람같습니다 . 우리네 인생 뭐 대단한 것 같지만 , 따지고 보니 별것도 없습니다 . 때로 하느님 영의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속수무책입니다 . 마치 뜬  구름같은   우리네 인생 ,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 때로 엄청 어깨에 힘을 주고 , 스스로에게 큰 자부심을 갖고 , 영원히 여기에 머물 것 같지만 , 우리네 인생 잠시 뿐입니다 . 숨 한번 끊어지면 그만입니다 .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 억만금을 모아 하늘까지 이르는 첨탑을 쌓아올렸다 할지라도 ,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끝입니다 . “ 자 .  그간 고생 많았지만 ,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 아쉽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