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좋은 명언들 - 10/2014

적당주의자가 되지 말라.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휴그 왈폴).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파울로 코엘료).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진다(김미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마세요.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여러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여러분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니까요(롤랑 바르트). 중요한 것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라(아빌라의 성 데레사).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을 마귀가 지옥에 밀어 넣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아빌라의 대 데레사).

지혜의 길 - 이수철 프란치스코 요셉 수도원 신부님

2014.9.4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1코린3,18-23 루카5,1-11                                           지혜의 길 어제는 21km를 걸어 '상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도착하여  성 도미니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가정집 같이 푸근한 알베리게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제와는 달리 3인1실의 침대가 있는 독방으로 마치 호텔과도 같습니다.  저녁 6시30분에는 수녀원 저녁기도에도 참석했습니다.  똑같은  수녀복, 한 목소리의 찬미에 개인은 이미 사라졌음으 봅니다.  개인은 사라지고 찬미만 남아  한평생 '찬미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 눈에 어리석음의 길을 택한 수녀님들입니다. 주님을 만나, 주님이 그의 사랑이자 운명이 된 자는 세상 눈에 어리석음의 길을 택할 수뿐이 없습니다.  1독서의 바오로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세상 눈에 어리석음이 하느님 눈엔 지혜이고, 세상 눈에 지혜로움이 하느님 눈엔 어리석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허황됨을 아십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길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소들을 보면서 우보천리의 겸손이 지혜임을 깨달았...

바로 여기가 천국 - 이수철 프란치스코 요셉 수도원 신부님

2014.9.3 수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기념일,  1코린3,1-9 루카4,38-44                                    바로 여기가 천국 바로 여기 스페인  '나제라 시립 순례자 숙소(Albergue de Peregrinos municipal de Najera)'가 천국입니다.  어제 로그로노(Logrono)에서  4시 기상하여 강론을 쓸 때도 몇몇 순례객들은 짐 싸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5시 미사 및 아침식사 후  6시 출발하여 중도에 2회 쉬고 오후1시 반에 이냐시오 도반과 나제라에 도착했습니다.  분명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둘다 별로 어려움 없이 12kg정도의 배낭을 메고  75리 길을 스페인 산야를 충분히 감상하면서 7시간만에 주파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도, 산티아고 순례길도, 순례객들도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의 선물이요 기적입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이 모두가 가능했습니다.  특히 여기 알베르게는  자발적 희사(donation)로 운영되는 값싼 곳이기에 남녀노소 모두가 많이도 모이는 곳입니다.  큰 창고 같은 건물에 2층 침대만 무려 45개가 나란히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었고  저녁 때쯤에는 순례객들로 가득차니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흡사 양계장 같네요." 말하니 이냐시오 형제도 공감하며 웃었습니다.  정말 사람 양계장 같았고 집단 수용소 같았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했고 편했습니다.  모두가 가면을 벗은, 또 무장해제된 모습이요 에덴 동산 천국이었습니다....

영적인 인간 - 이수철 프란치스코 요셉 수도원 신부님

2014.9.2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1코린2,10ㄴ-16. 루카4,31-37                                                  영적인 인간 어제는 28km를 걷고 피곤하여 4시에 기상하여 쓰는 강론입니다.  오늘은 나제라까지 29.6km를 걸을 예정입니다.  영적인 삶의 자리가 거의 현실적 삶의 자리가 되어 버린듯 합니다.  다 즐겁고 유쾌하게 순례합니다만 기도하거나 묵상하는 경건한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먹고, 걷고, 쉬고, 자는 것만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자리가 이젠 거의 돈의 자리가 된듯 하고 고색찬연한 성당 건물도 유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오로의 영의 구분이 흥미롭습니다.  하느님의 영, 세상의 영으로 나눕니다.  여기에 복음의 마귀의 영을 더하면 셋이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요. 현세적 인간은 세상의 영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서 오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대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영에 따라 사느냐, 마귀의 영에 사로잡히느냐의 갈림길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

착하고 성실한 종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요셉 수도원)

2014.8.30 토요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1코린1,26-31 마태25,14-30                                                      착하고 성실한 종 강론을 쓰는 이곳은  어제로 부터 24km 떨어진 '푸엔테 라 레이나'에 있는 알베르게, 새벽 2시 30분입니다.  도반들과의 순례를 통해 참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웁니다.  결국 삶은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을 알아갈수록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우선적인 것이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나의 탐구와 하느님 탐구는 함께 갑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이를 수록 하느님을 닮아 자비로워지고 겸손해지며 지혜로워집니다.  오늘 말씀은 모두 '자기를 알라'는 주제에 집결됩니다.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주 인이 가리키는 바 주님이요, 종들이 가리키는 바 부르심 받은 우리 모두들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결과의 양이 아니라 과정의 충실도 입니다.  각자 받은 탈렌트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참으로 신비의 인간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받은 바 능력이 다르고 차이도 천차만별입니다.  결코 비교하여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건 많건 자기 받은 탈렌트에 충실하...

깨어 있어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요셉 수도원)

2014.8.28 목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1코린1,1-9 마태24,42-51                                                  깨어 있어라 새벽2시 반 강론을 쓰는 자리는 스페인 땅, 지비리 알베르게 순례자 숙소입니다.  미사는 새벽5시,  여기 식당에서 아침 식사전 봉헌할 예정이며 미사 후 6시에는 또 순례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느님은 때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미사를 통해 은혜로이 깨닫는 진리입니다.  어느 때는 방이, 식당이, 휴게실이, 안내실의 탁자가, 제대가 되곤 합니다.  하여 모든 곳이 하느님의 제대가 되는 거룩한 땅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피레네 산맥 중턱 산장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는  피레네 산맥을 제대로 하여 피레네 산맥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성생활의 궁극목표는 '오늘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요,  믿는 이들에겐 영원한 오늘, 영원한 현재만 있을뿐입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나 '사람의 아들' 대신 '죽음'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기다릴 대상이 있을 때, 깨어 준비합니다.  기다릴 분이 있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과연 누구를 기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