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성가정 공동체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12.29 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성화주간) 집회3,2-6.12-14 콜로3,12-21 마태2,13-15.19-23 . . 성가정 공동체 . 참 아름다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는 방금 미사 중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화답송 후렴을 흥겹게 불렀습니다. 해마다 성가정 축일 미사 때 마다 부르는 노래, 늘 불러도 새롭고 좋습니다. . 비단 교회나 수도원뿐 아니라 내 몸담고 사는 집이 주님 계시는 '주님의 집'입니다. 가정(home)보다는 집(house)만이 두드러지는 현실이지만 주님의 집은 가정과 집을 동시에 포함합니다. 바로 수도공동체기 그러합니다. . 제가 늘 펼치는 지론이 있습니다. ‘수도생활은 공동생활이요,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공동생활이요, 함께 사는 것이 바로 수도다.’ ‘밖에서 볼 때는 평화로워 보여도 안에서 보면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 수도원이다.’ . 저절로 공동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요하는 성가정 수도공동체입니다. 늘 새로운 시작만 있는, 영원히 답이 없는 성가정 공동생활입니다. 오늘은 성가정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기본 요소를 나눕니다. . . 첫째, 끊임없는 기도가 성가정 공동체를 이루어 줍니다. . 기도는 사랑의 샘이자 생명의 샘입니다. 함께 기도해야 하고 홀로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비로소 하느님과 연결되고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 서로 마음이 맞아 성향이, 취향이 같아서 공동체의 일치가 아니라 바라보는 하느님 중심이 같아야 일치입니다. . ‘함께 사는 일’보다 힘든 것은 없습니다. 하여 ‘하느님의 일’인 기도가 절실합니다. ‘하느님의 일’인 기도가 잘되어야 ‘함께 사는 일’도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 성가정 공동체의 우선적 요소가 기도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자발적 표현이 기도입니다. 말 그대...

<자동차 멈추기> ---- 12월 28일 토요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12월 28일 토요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R) - 마태 2장 13-18절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자동차 멈추기>         암흑의 세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유명했던 독일의 본 회퍼 목사님을 떠올려봅니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공개적으로 나치에 대한 저항의 깃발을 높이 올렸습니다. 그의 논리는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어떤 미친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대로를 질주하고 있는데, 나는 성직자로서 그 미친 사람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자동차 안으로 뛰어들어 미친 사람으로부터 핸들을 빼앗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거대한 범국가적, 조직적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았고,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정면으로 맞서다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왜곡된 사고방식, 그릇된 가치관, 그로 인한 극단적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 그 결과가 너무나 참담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러할 때 폐해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말도 안 되는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혼돈상태에 빠집니다. 사람들을 집단으로 죽음의 골짜기로 내몹니다. 때로 페스트나 콜레라보다 더 무섭습니다.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네로 황제가 그랬습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쉽게 그런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한 ...

사랑의 대가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12.27 금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 . 사랑의 대가 -성 요한 사도- . 정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 나 더하기 사랑이면 충만 이지만 나 빼기 사랑이면 허무입니다. 충만한 삶이냐 허무한 삶이냐의 열쇠는 사랑에 달렸습니다. .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리 있는 것이 사랑 같습니다. 가장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모르는 것이 사랑 같습니다.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힘든 것이 사랑 같습니다. .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생 사랑을 배워가야 하는 인생 학교입니다. . 사랑의 깊이는 그대로 하느님의 깊이입니다. 비상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사랑 체험이 바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진정한 대가는 사랑의 대가입니다. . 몇 가지 예화를 나눕니다. . 대가 교수의 특징에 대해 수도형제와 대화를 나눈 결과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됐고, 함께 공감했습니다. 첫째, 쉽게 가르친다. 둘째, 시험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셋째, 점수가 후하다. 이처럼 학생을 충분히 배려한 사랑의 교수라면 그대로 하느님을 닮은 사랑의 대가입니다. . 소통의 1:2:3의 원칙도 재미있습니다. 말하기 1에, 듣기 2에, 맞장구치기 3의 비율일 때 성공적인 소통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상대방을 배려한 사랑의 소통입니다. . 어제 글을 읽다가 사랑의 적은 개인주의(individualism)라는 어느 분의 통찰에 공감했습니다. 하여 개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랑의 친교 모임입니다. . 개인주의의 침투에 대한 마지막 보루가 균형 잡힌 일과표요, 공동식사, 공동휴게, 공동기도 시간입니다. 이런 주님 안에서 의무화된 공동모임이 없으면 사람은 점차 개인주의화하여 사랑을 잃게 됩니다. 온전한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로 통합된 사랑입니다. . 사도들 중 유일하...

시선의 엇갈림

“그 무렵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스테파노에 대한 언급들은 좋은 것 일색입니다. 은총 능력 지혜 성령   그리고 은총, 능력, 지혜, 성령이 그에게 그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충만하였다고 사도행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은총, 능력, 지혜, 성령이라는 말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듯 불러보면서 제게도 이것들이 있고, 더 나아가 충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했습니다.   사실 능력이 많은 사람은 많습니다. 저도 능력이 없지 않고, 많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은 많아도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수두룩하고, 지혜가 없기에 능력을 헛군데에 쓰거나 잘못 쓰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사실 능력도 많고 지혜도 많은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능력을 자랑삼다가 교만에 빠지고, 그래서 지혜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은총을 받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그 빈 것만큼 육(caro)이 찹니다. 그래서 겸손 대신 교만이 가득하고 지혜 대신 지식과 잔꾀만 가득하며 확신과 확고함 대신 고집과 완고함이 가득하고 사랑과 연민 대신 증오와 강팍함이 가득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와 스테파노를 둘러싼 사람들이 바로 이런 대조를 이루고 있고 스테파노는 이들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육적인 것들로는 영적인 것들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폭력을 통해서만 영적인 사람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테파노에게 폭력을 사용합니다.   그...

역시 믿음이 답이다 -빛과 어둠은 삶의 리듬-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12.26 목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사도6,8-10;7,54-59 마태10,17-22 . . 역시 믿음이 답이다 -빛과 어둠은 삶의 리듬- . 역시 믿음이 답입니다.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삶의 리듬입니다. 늘 순탄대로 순경의 삶은 없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 나라의 역사를 봐도 이런 삶의 리듬이 들어납니다. 이런 삶의 리듬 중에도 평상심을, 평정심을 유지하여 한 결 같이 살아가게 하는 믿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서 의연하게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게 믿음입니다. . 어제는 생명과 빛, 은총과 진리로 가득한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입니다. . 예수님 탄생 다음에 순교자 축일이 의미심장합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의 장면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바로 이게 삶의 리듬이요,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큰 위안이 됩니다. . 주목할 것은 죽음의 날이 축일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죽음의 날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 날, 천상탄일입니다. 바로 주님 성탄의 은총으로 성 스테파노의 죽음의 슬픔은 천상탄일의 기쁨으로 바뀝니다. . 전례력의 배치가 참 은혜롭습니다. 어제는 주님 탄생 대축일이요 오늘은 성 스테파노의 천상탄생 축일이니 말입니다. 스테파노는 죽었지만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난 무수한 스테파노 형제들로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리고 있는 성 스테파노입니다. .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장례미사를 통하여 위로를 받는지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 생명의 시작인 천상탄일임을 은연중 깨닫기 때문입니다. . 하여 장례미사를 집전할 때는 꼭 축제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지상의 슬픔을 천상의 기쁨으로 전환시켜주는 장례미사의 은총입니다. . 진정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어떤 상...

<제2의 예수 그리스도, 스테파노> --- 12월 26일 목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12 월 26 일 목요일 *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R) -   사도   6,8-10; 7,54-59 "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제 2 의 예수 그리스도 , 스테파노>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전례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 바로 다음날 돌에 맞아 참혹하게 순교한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 결국 이 말은 우리 가톨릭교회는 고통이나 십자가를 멀리하거나 외면하는 교회가 아니라 아주 긴밀한 관계 ,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   스테파노의 삶과 죽음은 어찌 그리도 예수님의 생애와 흡사한지 모릅니다 . 전승에 따르면 스테파노는 현재 예루살렘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 있는 성문 밖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 그래서 오랫동안 그 성문은 스테파노 성문이라고 불렸습니다 .   스테파노는 신성모독이란 죄명으로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당합니다 . 굵직굵직한 돌들을 고스란히 맞으며 죽어가던 스테파노는 십자가상 예수님과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   무지막지한 적대자들은 무죄한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도 모자라 극심한 고통 중에 신음 중이던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 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   “ 아버지 ,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사람들이 들고 있던 돌을 하나하나 던질 때 마다 조금도 피하지 않고 맞으며 죽어가던 스테파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   “ 주 예수님 ,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주님 ,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   스테파노가 고발당한 이유 , 다시 말해서 신성모독죄에 걸린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때문이었습니다 . 그는 적대자들...

사람은 누구인가?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12.25 수요일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이사52,7-10 히브1,1-6 요한1,1-18 . . 사람은 누구인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존재- . 어제 인용했던 ‘사람이여,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하느님이 당신을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이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다’ 바로 성탄 복음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으니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신비가, 사람의 신비가 밝혀집니다. 하느님과 사람을 알 수 있는 신비의 열쇠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 하느님이 말씀이 되신 예수님을 모르면 인간은 영원한 물음표로 남게 되어, 무의미한 인생, 목표 없이, 중심 없이 허무하게 살다가 인생 마칠 것입니다. .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란 말씀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란 말씀과 그대로 통합니다. 다음 복음 말씀을 통해 하느님, 예수님, 말씀 간의 신비로운 관계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 어제 밤 미사의 복음이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면 오늘 성탄 낮 미사의 복음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입니다. .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이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하느님-말씀-그리스도-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이 연결 안에 뚜렷이 계시되는 존엄한 품위의 인간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새삼 말씀의 신비를 통해 해명되는 인간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 . 말씀은 생명과 빛입니다. .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으니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것이 말씀이신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 바로 말씀이 생명이자 ...

<참으로 은혜롭고 고마운 아기 예수님의 성탄> ----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12 월 25 일 수 요일 * 예수 성탄 대축일 (R) - 요한 1,1-18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참으로 은혜롭고 고마운 아기 예수님의 성탄>     아기 예수님 성탄구유와 관련된 우화를 하나 읽었습니다 .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 옆에 마리아와 요셉이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 천사는 아기 예수님의 마구간에 들어가기 적당한 동물을 선발하기 위해 동물들을 전원 집합시켰습니다 .   첫 번째로 나선 동물은 사자가 으르렁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나처럼 적합한 동물도 없을걸요 . 아기 예수님 곁에 얼쩡거리는 동물들은 다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예요 .”   천사가 말했습니다 . “ 너는 다 좋은데 너무 폭력적이로구나 .”   이번에는 간사한 표정을 지으며 여우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 “ 저는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위해 매일 아침 가장 달콤한 꿀과 가장 신선한 우유를 훔쳐 올게요 .”   천사가 말했습니다 . “ 너는 그렇게 부정직해서 쓰겠나 ?”   뒤이어 휘황찬란한 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가 다가와 자신의 날개가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 것인지를 한참 설명한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저는 이 초라한 마구간을 화려하고 웅장한 왕궁으로 뒤바꿔놓을 겁니다 .”   천사가 말했습니다 . “ 보아하니 너는 대단한 허풍장이로구나 !”   천사는 ‘ 이러다 아기 예수 옆에 서 있을 동물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 하는 생각에 슬슬 걱정이 커졌습니다 . 그 순간 한 마리 당나귀와 두 마리 황소가 천사의 눈에 띄었습니다 . 그들은 땅에 머리를 처박고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   천사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 “ 어이 , 자네들 ,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는데 뭔가 드릴께 없나 ?”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