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12의 게시물 표시

♡ 귀의 침묵 ♡

귀의 침묵 늘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듣습니다. 다른 목소리들, 곧 악이나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서 오는 투덜거림이나 사랑이 없는 말에는 귀를 닫습니다. -마더 데레사와 함께하는 15일 기도 중에서 

기도의 사람 - 6.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2.6.21 목요일 성 알로이시오 수도자(1568-1591)기념일 집회48,1-14 마태6,7-15 기도의 사람 ‘살기위하여’ 기도입니다. 하느님이 보는 것과 사람이 보는 것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학식 많은 박사보다는 기도하는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여 하느님의 생각을, 하느님의 길을 잘 깨닫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님의 소탈하고 겸손하신 인품에 감동했습니다. 지난 새벽 뜻밖에 대주교님의 이메일 편지를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수도회 규칙과 분도성인전을 잘 받아보았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매일 봅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나누어 주셔서. 가물어서 어떤지요. 배 밭 봉지 싸는 일은 끝나가는 지요? 매일 기도일과에 열심이신 수사님들 생각하며 그 리듬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명동에서. 염수정 드림- 주교님의 단순하고 겸손하신 인품이 그대로 배어있는 짧은 편지입니다. 끝부분의 호칭을 생략한 ‘염수정 드림’이라는 글귀가 겸손의 절정입니다. 수도원 피정 동안도 수도생활 리듬에 따라 충실하시며 여가 시간도 늘 묵주를 손에 들고 끊임없이 기도하신 기도의 사람, 염수정 대주교님이셨습니다. 깨달음처럼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아, 교회장상들 위로 올라갈수록 참 고독(孤獨)하겠다.   점점 자기는 없어져 무아(無我)가 되겠구나.”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주님과의 친교로 풍요로운 고독이 되기 위한 기도요 무아가 은총으로 텅 빈 충만이 되기 위한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기도일과에 열심이신 수사님들’이란 대목에서 떠오른 얼마 전 사진작가 황석선님과의 대화입니다. 수도원 25주년을 맞이하여 사진첩을 만들기 위해 촬영한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반응이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깨끗하다’...

성 바르나바 사도 축일 - 착함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바르나바 사도에 대한 사도행전의 묘사를 읽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복음을 잘 선포할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르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착한 사람이기에 바르나바는 복음을 잘 선포하고 사도가 되었을까요? 착하다고 복음을 잘 그리고 열심히 선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혼자 착하게 사는 것으로 그칠 수 있지요.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꽤 있지요. 너무도 착해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감화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신앙생활에 입문하기는 하지만 착한 사람이 꼭 복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착한 사람보다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복음을 잘 또는 열심히 선포할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은 선을 많이 지니고 있고 그 선을 움켜쥐지는 않아도 그 선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은 역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사람은 분명 선을 많이 가지고 있고 움켜쥐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눠주려고 하지 않을 수 있고, 적어도 주지 못해서 안달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장사로 치면 착한 사람은 많은 좋을 것을 진열해놓고는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고, 스스로 누가 와 좋은 것임을 알면 그래서 원한다면 사라는 식입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지도 않고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붙잡고 설명하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랑 많은 사람이 선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복음을 잘 그리고 훌륭히 선포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복음이기에 은총으로 주님을 체험한 사람, 아니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 곧 주님의 성령을 체험한 사람만이 잘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 기원이 아닙니다. 은총으로 체험한 주님이 그 복음 선포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

인생의 세 가지 후회

인생의 세 가지 후회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며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쥐어 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란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 했던가? 하고 후회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고 한다. -*-< 좋은 글 중에서 >-*-

행복의 시작

어떤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동산에 올라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앉아서 보니 좀더 위쪽이 더 좋아 보여 그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오른쪽이 훨씬 더 아늑해 보여 다시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맞은편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연인은 한 번만 더 자리를 옮기리라 생각하고 맞은편으로 갔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일까요. 다시 보니 아래쪽이 가장 좋은 자리로 보여 "한번만 더...."하며 아래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아래쪽에 앉은 남녀는 똑같이 마주보고 쓴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 자리는 자신들이 맨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티븐슨의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좀더 좋은 것을 찾으려면 한이 없습니다. 행복은 현재의 자리에서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좋  은  글  중  에  서

♧ 행복은 이해를 바라는것이 아니다 ♧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아주 흔한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는 직접적으로 우리가 늘 맞부딪치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낳거나,끊임없이 인정과 이해를 받고자 하는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꿈꾸는 이해에 대한 욕망은 해소가 불가능한 것이다. 행복이란 집착이나 욕망에서나오지않는다 만약 행복이 집착과 욕망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행복의 진실은 혼란스러움에 있지 않고 조화로움 속에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고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두 가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중에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 찬미예수님 한 주일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리스도교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요 파라독스한 종교다! 하는 말을 외부에서들도 하고 있고 또 우리들도 신앙으로 믿습니다. 역설의 종교가  무슨 뜻이겠습니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건 역설입니다. 죽어야 산다! 썩어야 새로 태어난다! 세상 이치와는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요, 파라독스한 종교입니다. 창녀가 성녀가 되는 종교입니다. 죄인이었던 세리가 의인으로 인정받는 종교입니다. 크리스천을 잡아 죽였던 사울이 바오로가 되는 종교입니다. 개망나니로 살던 어거스틴과 프란치스코가 성인이 되는 종교가 바로 그리스도 종교입니다. 이들은 죄 중에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많이 용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많이 용서받은 자만이 많이 사랑할 수 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성인이고 성녀 입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병 중에서..... 그 병이 나에게 옮아 올까봐 겁을 냅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정밀 진단을 받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몸에 한두 가지씩 병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수많은 병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 이 무슨 병이겠습니까? 우리들은 암이라고 그럽니다. 또 에이즈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암보다 에이즈 보다 더 무서운 병은 ‘못 느끼는 병’ 다른 말로 ‘불감증 ’이라고 그럽니다. 이 불감증은 육의 불감증 이  있고 영의 불감증 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고로 신경이 끊어져 버리면 불에 데어도 통증을 못 느낍니다. 팔다리가 끊어진 나가면 끊어진 부분에는 신경이 죽기 때문에 바늘로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육의 불감증보다 더 무서운 병 이 뭐냐? 영의 불감증 이 있습니다. 영이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의 3대 불감증 을 일컬어서 첫 번째가 은총의 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