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침묵 할 줄 아는 사랑

침묵 할 줄 아는 사랑 말 없이 바라만 보아도 깊어가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사람은 진정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침묵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다툼으로 오는 그 어떤 아픔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될 것입니다. 침묵은 어떤 말보다도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랑의 아픔을 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요. 오해를 풀어 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엉켜버리기 마련입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때론 침묵하십시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의 진심을 이해해 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 생각이 많을 때,말을 아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해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이 알려질 때까지 침묵하십시오. 오해를 풀려고 하면 더욱 마음 아파지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김옥림(시인,아동문학가,수필가) -

마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 입니다

마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 입니다 생각은 우물을 파는 것과 닮았습니다. 처음에는 흐려져 있지만 차차 맑아지니까요. 살다 보면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흔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원수는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속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병은 육체의 병이지 마음의 병은 아닙니다. 성한 다리가 절룩거리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리에 생긴 이상이지 마음에 생긴 이상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육체의 병 때문에 마음까지 고통받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이해가 되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병들면 무척 곤란한 일입니다. 마음은 우리 몸의 뿌리같은 것이라서 뿌리마저 병들면 회생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다이아몬드 처럼 순수 할수록 더 무게가 나갑니다. 마음은 팔고 사지 못하지만 줄 수는 있는것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이정하 '돌아가고 싶은날의 풍경' 中에서-

"하느님을 보아라!"

2011.6.18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코린12,1-10 마태6,24-34 "하느님을 보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길(道)이자 눈(眼)입니다. 하느님을 잊어 길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이요 눈멀어 맹목적인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실태입니다. 얼마 전 다음 두 예를 체험하면서 ‘아, 하느님 없이도, 하느님을 모르고도 평생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어제 뜨거운 날 배 밭 봉지 싸느라 수고하시는 분들을 찾아봤습니다. 오후 참을 들기 바로 직전, ‘참이 나왔다’고 ‘참을 하시라’는 수사님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봉지를 싸는 자매들이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이 사람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만듭니다. 순간 ‘아, 노동이 있어 단 식사, 단 휴식, 단 잠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런데 하느님 없이도 일하고, 먹고, 쉬고, 놀고, 자고… 이렇게 평생 연속된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깨달음처럼 떠올랐습니다. 사실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또 얼마 전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건강을 위해 ‘타고난 것이 30%, 환경이 30%, 음식이 40%’라는 기사에 얼핏 공감하다 깨달음처럼 스친 ‘어, 하느님이 빠졌네.’라는 생각입니다. 참 공허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것이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하느님 빠진, 기도 빠진 일이나 건강, 참 공허합니다. 하느님 빠진 일이나 건강의 우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여 일이나 건강에 앞서 기도를, 하느님을 강조하는 우리 분도수도생활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하느님을 섬긴다하면서 재물을 섬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눈멀게 하는 재물이요 눈 밝게 하는 하느님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승들은 물론 진정으로 믿는 모든 이들은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오시는 하느님"

2011.6.19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탈출34,ㄱㄷ-6.8-9 2코린13,11-13 요한3,16-18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오시는 하느님"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죽어있는 화석과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 교리가 아니라, 온 누리가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체험적 신앙고백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지난 주 성령강림 대축일과 이번 주 삼위일체 대축일 사이에 저와 저희 수도공동체는 하느님께 참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의 선물은 동시에 수도공동체의 선물이기에 저의 기쁨은 동시에 공동체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제 30여년 수도생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마침 올 해는 제 수도서원 25주년 은경축을 맞는 해이기에 그대로 하느님께서 저와 제 수도공동체에 주시는 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예기치 않은 선물이라 기쁨 역시 큽니다. 얼핏 책의 표지를 봤을 때 솔직히 실망이었습니다. 저의 주름살 많은 노인 같은 얼굴에 전체 분위기도 산만해 보였고 품위와 무게가 없이 웬 지 가볍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볼수록 친근감이 있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한 눈에 가득 들어오고 한 손에 딱 잡히는 참 뿌듯한 느낌이었고 내용 역시 팜프렛에 소개된 그대로였습니다. “읽고만 있어도 마음이 환하고 편안해지는 행복 메시지!” 책의 표지와 책 내용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게 정원의 요즘 드높은 벚나무였습니다. 까맣게 익어가고 있는 버찌들인데 도저히 높아서 따 먹을 수가 없으니 보기만 할 뿐입니다. 얼마 전 화장실 앞 높이 달린 빨갛게 익은 버찌를 보기만 할 뿐 따먹지 못한 안타까움이 또 연상되었습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속담대신 ‘따먹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말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즉시 저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묵상했습니다. 우리 삼위일체 하느님은 결코 나무 높이 열매를 달고 있는 그런 분이 절대 아닙니다. ...

예쁜 마음그릇

예쁜 마음그릇 우리는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만 보려 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나쁜 면을 갖게 됩니다. 남의 나쁜 면만 말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남의 좋은 면, 아름다운 면을 보려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의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의 좋은 점만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을 닮아 갑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됩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머지 날들을 수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격을 가질 수 있는 티없이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 말에 진실만 담는 예쁜 마음 그릇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최복현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