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0의 게시물 표시

12월의 시

12월의 시 / 이해인 또한해가 가버린다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을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 지요. 해야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이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는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 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 일텐데 이런 행복 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 들이여

♣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한 법칙 ♣

♣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한 법칙 ♣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듯 부부가 살아가는 일에도 어떻한 법칙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해 이런 법칙을 덕담으로 이용해 보세요.... 1. 산울림의 법칙 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겨 울먹거리며 말했다.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다. 너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다. "야, 이 바보야!”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 ! ! !’ 하고 외쳐 보렴” 그러자 정말로 산이 소리쳐 주었다. “야, 이 천재야 ! ! ! ! !”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는 것이야 말로 부부의 황금율이라 할 수 있다. 2. 실과 바늘의 법칙 부부란 실과 바늘의 악장이라 할 수 있다.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지고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만다. 그렇다고 바늘 대신 실을 잡아당기면 실과 바늘은 따로 놀게 된다. 더구나 실과 바늘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된다. 실과 바늘의 조화, 여기에 부부화합의 비밀이 있다. 3. 수영의 법칙 수영을 배워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 없다. 모두들 물 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익힌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이치를 다 배워 결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사랑의 이치를 깨우쳐 가게 된다. 그러므로 피차 미숙함을 전제하고 살아갈 때 서로 인내할 수 있게 된다. 4. 타이어의 법칙 사막의 모래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이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멜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는 일이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다. 5. 김치의 법칙 배추는 5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 땅에서 뽑힐 때, 칼...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 Sr.이해인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 이해인수녀님 오늘도 하루 시작하면서 당신앞에 경견히 않아 제 마음의 사랑을 드립니다 사랑이신 당신이여, 당신께서 지어주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 제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이 주신 세상에서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찾으려 합니다 이 하루를 맞이하는 가운데 인간이 이연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가듯 당신과의 만남도 소중한 사랑임을 잊지 않게 도와주소서 오늘 하루 시작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며 그들과 스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제 마음안에 고이 간직하게 하소서 그리고 늘 그들을 대하는 제 마음을 소홀하지 않게 당신의 많은 사랑과 지혜를 허락하소서 사랑이신 당신이여, 제 안에 계신 사랑의 당신이시여, 미약하고 나약한 제 마음 꼭 붙잡아 주시기를 이 시간 간절히 청하오며 제 옆을 스치는 인연을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때로는 인연이란 고리를 내세워 스치면서 고울수도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못한 대립으로 미워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거두어 주시어 미움 마음을 고운 마음으로 다가갈수있는 삶을 허락하소서 세상을 사랑하신 당신이시여, 당신을 사랑하듯 당신이 허락하신 이세상 모든 만물을 사랑하며 살게 도와주서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것을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라볼수 있도록 도움 첳하오며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랑이신 당신이시여, 제 작은 마음을 봉헌하며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깨어나게 하소서 아멘!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17세기 어는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것을 저 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 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애기 저애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 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수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순 없아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과 부딪칠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은 틀릴수 있다고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지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어지는건 어쩔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

<가장 밑에서 시작하신 하느님>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요한 1장 1-18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가장 밑에서 시작하신 하느님>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 정말 불가사이한 일,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 해도 해도 너무한 일,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우리네 인생 내내 평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리저리 부딪치며 상처투성이뿐인 인생입니다.     누구든 따지고 보면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씩 있습니다. 다들 이런 하소연 한 두 번씩 던지며 살아가고 계시더라구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다리미로 주름 펴듯이 쫙 한번 펴주시면 좋겠는데, 어찌 그리도 꼬이고 꼬입니까?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시라면서 어찌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이해하지 못할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까?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느님께서 왜 나를 번듯한 가문에서 ‘꽃미남’ 아버지,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를 둔 ‘짐승남’으로 태어나지 하지 않으시고, 이리도 구린 한 평생을 살게 하십니까?     내 아들, 내 딸은 왜 김연아, 박지성 선수 같지 않고 저렇게 지지리도 못났습니까?     왜 이토록 혹독한 시련, 정말 이해하지 못할 사건, 정말 함께 하기 힘든 이웃들을 끝도 없이 보내주십니까? 정말 알 수 없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 존재 자체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탄생을 한번 보십시오. 그분 앞에 불가능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데, 그렇다면 이왕 구중궁궐 안 가장 따뜻하고 안락한 방에서, 내놓으라는 명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전하게 탄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

"오늘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25 토요일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이사9,1-6 티토2,11-14루카2,1-14 "오늘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천사의 우렁찬 복음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요셉 수도원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오늘 밤 가난한 땅, 곳곳에서 생명과 빛으로, 희망으로 새롭게 태어나시는 구원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기에 살맛나는, 희망찬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이 없다면 도대체 절망의 어둠 짙은 이 세상을 무슨 맛으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겠는지요. "정의의 태양, 떠오르는 샛별, 영원한 빛이신 주님,   어서 오시어, 어둠 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우리를 비추소서.” 오늘 밤 그동안 기도하며 학수고대하던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탄생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좋으신 하느님은 우리의 간절한 소원에 응답하여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구원자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우리가 오늘 밤 큰 빛을 보았습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우리에게 빛이 비칩니다. 이 절망의 시대에 희망으로,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죽음의 시대에 생명으로 우리 가난한 마음의 구유 안에 탄생하신 구원자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체험하는 구원자 그리스도의 탄생이 아닙니다. 깨어있는 가난한 영혼만이 구원자 그리스도를 체험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

☆ 행복은 작습니다 ☆

☆ 행복은 작습니다  ☆ 행복은 작습니다. 거창하고 큰 것에서 찾지 마세요. 멀리 힘들게 헤매지 마세요. 비록 작지만 항상 당신 눈앞에 있답니다. 행복은 이기적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남의 시선 따위는 무시해 버려요.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울 수 없답니다. 행복은 연습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행운의 복권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가는 길은 만갈래지만 방법은 하나랍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아는 길이 편하고 가던 길을 또 가듯이 살아가는 동안 몸과 마음에 배이는 향기입니다. 하나씩 날마다 더해 가는 익숙함이랍니다. 행복은 투자입니다. 미래가 아닌 현실을 위해 남김없이 투자하세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을 온전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답니다. 행복은 공기입니다. 때로는 바람이고 어쩌면 구름입니다. 잡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답니다. 행복은 선물입니다.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미소이기도 하고 소리없이 건네 줄 수 있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가장 달콤한 포옹이랍니다. 행복은 소망입니다. 끝없이 전달하고픈 욕망입니다. 하염없이 주고 싶은 열망입니다. 결국엔 건네주는 축복입니다. 행복은 당신입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당신입니다. 변함 없이 사랑하는 당신입니다. 이미 당신입니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기에 늘 고운 생각으로 행복한 나날 되세요. 좋은 글 중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16,24)”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하셨지 십자가를 만들거나 찾으라 하시지는 않으셨다. 굳이 없는 십자가를 만들 필요도 없고 하나의 십자가 다음에 또 다른 십자가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십자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 문제는 과연 그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내가 내 어깨에 짊어지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공부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거나, 장애인이 되어 버렸거나,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거나, 가족 내의 불화가 끊이지 않거나, 폭력과 학대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말았거나 등등, 그 어떤 경우도 내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살아야만 되는 것들 바로 이것이 나의 십자가이다. 이러한 십자가를 무시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으며 내팽개쳐 버리거나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를 내 어깨에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는 있는 것이다. -헨리 니우웬-

“너 어디 있느냐?”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8. 수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창세3,9-15.20 에페1,3-6.11-12 루카1,26-38 “너 어디 있느냐?” 주님은 아담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지체 없이 대답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좋은 삶, 바른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지위나 자리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 수 있는 좋은 삶, 바른 삶입니다. 예전 초등학교 교과목 중 첫째 번에 온 과목이름도 ‘바른 생활’입니다. 삶이 좋아야 생각도 말도 글도 행동도 좋습니다. 삶이 바라야 생각도 말도 글도 행동도 바릅니다. 삶이 좋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머리로 노력해도 좋은 생각, 좋은 판단, 좋은 말, 좋은 글, 좋은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삶이 바르지 않고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른 생각, 바른 판단, 바른 말, 바른 글, 바른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삶은 우리 모두의 바탕이며 뿌리입니다. 어느 분이 들려 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본당의 성전을 새로 짓고 이사 가자, 전에 임시로 빌려 사용했던 건물이 당구장으로 변한 것을 보니 마음이 참으로 착잡 미묘했다는 것입니다. 순간 신자생활도 저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합니다. 성당 같은 거룩한 생활을 하다 당구장 같은 속된 생활로의 전락입니다. 충실할 때는 성당 같은 생활이었는데 냉담으로 당구장 같은 생활로 전락한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거룩한 미사 도구인 성작과 성반도 제대위의 제자리에 있을 때 빛나지, 제대의 제자리를 떠나면 아무 쓸모도 없을 것입니다. 밥그릇으로 씁니까? 국그릇으로 씁니까? 한 결 같이 좋은 삶, 바른 삶을 살기다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