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10의 게시물 표시

◈ 웃음은 참으로 신비한 힘 ◈

◈ 웃음은 참으로 신비한 힘 ◈       세상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인 것 같습니다. "웃음" 이라는 것, 참으로 신비한 힘을 지녔지요.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엄마의 웃음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은 평안해지지요. 불안해질 때마다 아빠의 믿음직한 웃음으로 인해 든든함을 얻습니다. 순간 순간 그려지는 사랑하는 이의 웃음은 삶의 샘물 같습니다. 나를 바라보며,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웃음으로 안아 주는 이들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함박 웃음으로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속삭여 보려 합니다. "당신의 웃음을 살며시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이 나의 가슴에서 뜁니다."라고... - 좋은 글 중에서 -

홀로 있는 시간 / Sr.이해인 클라우디아

홀로 있는 시간   / Sr.이해인 클라우디아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막판뒤집기>

11월 21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루카 23장 35-43절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막판뒤집기>     축구시합을 할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주 극적인 경우를 봅니다. 막판 뒤집기입니다. 경기가 거의 다 끝나가는 순간입니다. 후반전 남은 시간은 1분, 스코어는 1:0 우리가 지고 있습니다. 우리 팀의 패배가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나 가끔 기적 같은 일이 생기지요. 막판에 젖 먹던 힘을 다합니다. 정규 시간이 끝나는 순간 우리 편이 한 골을 넣고 동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심판이 준 추가시간이 2분, 한골 넣은 여세를 몰아 종료직전 한골을 더 넣습니다. 극적인 역전승이지요.     그 순간의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입니다. 선수고 코칭스텝이건 다들 너무 좋아 얼싸안고 그라운드 위에 쓰러집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적인 ‘막판뒤집기’ ‘인생 역전’이 오늘 복음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우도였습니다.     그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이제 정규 게임은 끝나고 후반전 인저리 타임에 막판뒤집기를 성공시킵니다.     그는 너무나 죄스러웠고 송구스러워, 차마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아룁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그는 누구였습니까? 좌도에게 자신의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우도는 형 중에 가장 극형으로 손꼽히는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십자가형은 예수님처럼 무죄한 형벌이 아니었습니...

두려움을 멈추는 법(페마 초드론,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질 때’ 중에서)

두려움을 멈추는 법(페마 초드론,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질 때’ 중에서) 한 젊은 전사가 있었다. 스승은 그에게 늘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전사는 스승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두려움’이란 너무 무시무시한 사나운 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전사는 이쪽에, ‘두려움’은 반대쪽에 섰다. 전사의 눈에 ‘두려움’은 엄청 크고 살기등등해 보였다. 전사는 마음을 다잡고 ‘두려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당신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두려움은 답했다. “내가 가진 무기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내 얼굴을 당신에게 바짝 들이대는 것이지. 그러면 사람들은 완전히 기가 죽어서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거든. 하지만 알고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설령 당신이 나를 따르지 않아도 그걸 강제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 모든 게 당신 하기에 달렸어. 내가 시키는 대로 당신이 따르지 않으면, 내게는 아무런 힘도 없지.” 우리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일을 지금 당장이라도 멈출 수 있다. 깨어 있어 마음 챙김을 하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세히 알아차린다. 따라서 증폭되는 감정의 연쇄 반응을 즉시 멈출 수 있다. 사소한 일은 그냥 내버려둬라. 그러면 작은 일은 그냥 작은 일에서 멈춘다.

<40도 안된 나이에...>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 루카 20,27-40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40도 안된 나이에...>       작년 여름, 안타깝게도 40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한 형제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병실을 방문할 때마다 매번 느꼈던 안타까움은 그분의 생명이 눈에 확 띄게 시시각각으로 여위어지는 것을 확인해야만 하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암세포의 전이로 인한 고통이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자세는 참으로 의연했습니다. 그분은 묵주와 성서가 언제나 머리맡에 있어야만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임종에 가까워지면서 그분이 특별히 가까이 했던 성서구절이 있었는데, 시편 23장이었습니다. 자주 암송했기에 나중에는 성서를 펴지 않고서도 다 외울 정도였습니다. 언젠가 드디어 시편 23장을 다 외웠다고 자랑하시던 모습, 그리고 보란 듯이 제 앞에서 시편 23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외우시던 모습은 차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먼저 떠나보내기가 너무도 안타까워 몸부림치는 가족들을 오히려 조용히 위로하고 격려하던 그분의 모습은 제게 참으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고통 가운데서도 평온했던 그분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참된 부활신앙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

"날마다 ‘말씀 맛’으로"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1.19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요한 묵10,8-11 루카19,45-48 "날마다 ‘말씀 맛’으로"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우리 믿는 이들은 날마다 말씀 맛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 장면은 그대로 매일 미사를 연상케 합니다. 복음 말씀을 활성화하는 고마운 미사전례입니다. “주는 당신 백성을 찾아 속량하셨도다.” 아침 성무일도 시 즈카리야 후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전의 당신 백성을 찾아오신 똑같은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에 앞서 ‘사람을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선 가르치시기에 앞서 성전부터 정화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기도의 집’이어야 할 성전이, 우리 마음이 강도의 소굴로 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역시 고백의 기도에 이은 자비 송으로 정화한 후 말씀 전례를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성찬전례를 통해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완전한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새삼 성전의 기도의 집이자 말씀의 집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라는 말마디가 중요합니다. 한두 번 가르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날마다 미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영육이 삽니다. “이것을 받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다.” 묵시록의 요한은 말씀의 두루마기만 받아 삼켰지만 우리는 고맙게도 말씀과 더불어 성체까지 받아 모십니다.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 영육의 성전은 온전히 정화, 성화되고 주님의 생명으로 충전됩니다. 입에는 ...

내 영혼의 성전[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성지에 와서 불편함 때문에 성모님이 여러분을 불러주신 목적을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매일같이 이곳에 천 명 가까운 분들이 오십니다. 또 기도찬미의 밤에는 천 몇 백 명씩 옵니다. 그러면 성당의 크기는 한계가 있고, 그 많은 분들이 첫 토요일 날을 지키려고 그 전날부터 와서 자리를 맡아 놓는데 그날 오후가 되면 싸움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대성전을 하루아침에 짓는 것도 아니고..... 내년 봄부터 저 운동장에 야외제대를 차려서 첫 토요일을 지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이 성지를 향해 떠났을 때부터 마귀가 같이 따라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 얘긴 뭐냐? 마귀는 여러분들이 은총을 받게 그렇게 만만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오만 방법을 총 동원해서 성지에서도 분노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싸움질까지 하게 만들고, 순례도 못 끝내고 중간에 돌아가게 만들고, 집에 가서도 땅을 치게 만드는 겁니다. 이곳은 빛이 강한 곳이기에 사탄의 계략도 만만치 않습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진한 겁니다. 은총을 받고 난 후에는 침묵 가운데 사셔야합니다. 순례 갔다 와서 은혜 받고 난 다음에 사탄은 우리의 입을 통해서 시궁창에 다 쏟아 붓게 만듭니다. 피정하기 전보다도, 순례 갔다 오기 전보다도 오히려 영혼의 상태가 더 비참해질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 앞으로 갈 때는 군인이 전쟁터에서 경계를 하듯이 늘 앞뒤 좌우를 살피면서 어둠이 내 영혼을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로막지 않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축일입니다. 라테라노 성전은 베드로 대성당이 로마에 생기기 전에는 가장 큰 성당이었고 지금도 로마 교황님의 주교좌성당은 베드로성전이 아니라 라테라노 성전입니다. 그래서 모든 큰 행사는 라테라노 성당에서 하죠.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은 바로 내 몸을 두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와있는 이 성전도 언젠가 허물어집니다.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