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10의 게시물 표시

♤ 말 없는 침묵이 때로는... ♤

♤ 말 없는 침묵이 때로는... ♤ 한 사람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삶이 너무 힘들어 주체 없이 흔들릴 때,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떤 충고나 조언이 아닙니다. 그냥 말없이 그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철학자 칼 힐티는 "충고는 눈과 같아야 좋은 것이다. 조용히 내리면 내릴수록 마음에는 오래 남고 깊어지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도 말없음이 더 커다란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아낀다는 명목 아래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 충고하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고 힘겹게 만드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상대방은 힘겹고 어려운 순간, 당신이 곁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될 때가 많습니다. 소리 없는 침묵은 때로 더 많은 말을 들려 주고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해 줍니다.

살아 있는 날은 / 이해인(李海仁)

 살아 있는 날은 / 이해인(李海仁)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희망만이....

희망만이.... 미국의 최고 사이클 선수인 랜스 암스트롱은 생존 확율이 3%인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사이클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그가 한 말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망입니다. 희망만이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아니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세계까지 보게 합니다. 병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서면 전부터 있던 환자들은 그의 앞날을 짐작한다고 합니다. 들어서는 환자의 눈빛을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희망의 눈빛을 지닌 환자는 회복되어 나가지만 포기와 좌절의 눈빛을 띤 환자는 회복되기 힘들다고 합니다. 희망이 커지면 몸도 강해집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까? 희망만이 두려움을 없애고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합니다. <좋은 글>

남들이 생각하는 "나"?

남들이 생각하는 "나"?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나" 이 두 모습이 때론 당황스러울 만큼 다를 때가 있다.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남들이 내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나름대로 단정 짓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때론 우리는 남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에 그렇지 않은 자신을 구겨 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착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분명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여러 틀 속에 자신을 맞춘다.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안감 힘도 써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생활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싫어도 좋은 듯 지루해도 즐거운 듯 어느 정도씩은 자기 것을 양보하고 살아야 하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힘든 일이다. 본 모습을 조금 드러내면 변했다하고 사람들에게 맞추어 행동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중인격자라는 오해도 받는다. 남들이 바라는 나와 내가 바라는 나가 일치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위선이 아닌 최선을 선택하는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 - 좋은 글 중에서 -

<찬란한 기쁨의 시간, 인생의 오후 4시>

6월29일 화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마태오 16,13-19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찬란한 기쁨의 시간, 인생의 오후 4시>     독일 남부 한 시골 성당에는 이런 기도문이 새겨져 있답니다.     “천주의 성모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18년 동안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저에게 많은 시련과 실망을 통해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오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입니다. 두 사람 역시 오랜 세월 거듭되는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던 주님의 사도였습니다.     두 분은 다른 무엇에 앞서 예수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충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약속에 성실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수시로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늘 남보다 먼저 일어섰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희생했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인내했습니다.     오랜 단련 끝에 온전히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바오로 사도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 사업을 위해 고통 받는 것은 곧 은총입니다.”     두 분의 인생역정을 묵상할 때 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그분들의 생애는 예수님으로 인해 참으로 큰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예수님으로 인해 정녕 행복했던 생애였습니다.     두 분의 생애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확연히 구분됩니다.     물론 인생의 전반전은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만 살아왔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도 팍팍했습니다. 그리도 힘겨웠습니다.   ...

"하느님께 집중한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6.28 월요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125-202) 기념일 아모2,6-10.13-16 마태8,18-22           "하느님께 집중한 삶"       하느님께 집중할 때 본질적 삶에 충실합니다. 오늘은 집중력에 대해 많이 묵상했습니다.   “하느님,   내 마음 다하여 임을 찬미하오니,   몸소 하신 장한 일들 다 전하오리다.”   하느님께 집중하여 매일 찬미를 드리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월드컵 조별리그가 끝났을 때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잊지 못합니다.   “집중력이 필요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교훈이며   경기를 치르면서 집중력을 잃을 때도 있었지만   앞으로 그런 면을 인지하고 경기를 치러야 한다.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게 긍정적이다"   어느 분야든 성공적 삶을 위해 우선적인 게 집중력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집중력이 없어 주의산만하면 성공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고나 실패, 병들은 집중력을 잃어 마음이 분산될 때 생겨납니다. 집중력을 잃을 때 급기야는 우울증, 정신분열, 치매 등이 뒤 따릅니다. 안철수 교수님의 다음 말씀도 유익합니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소양을 한 가지만 들라면   ‘집중력’을 꼽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말콤 그래드웰이 있는데   그의 책인 ‘아웃라이어’에 보면   어떤 분야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입해야 된다면서 ‘만시간 법칙’을 이야기 합니다.   매일 3시간 씩 10년 하면 1만 시간이 되는 데 억지로 못합니다.   재밌어야 되요.”   우리 수도승들에게 하느님만을 찾는 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 집중하여 올인(all...

< 내일 홀연히 세상을 뜬다 할지라도 >

6월 28일 월요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마태오 8,18-22     "나를 따라라.” < 내일 홀연히 세상을 뜬다 할지라도 >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사람의 외로움이나 공허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못 다 표현한 마음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위령미사도 봉헌합니다. 매일 묘소에 들러 꽃을 얹어 놓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먼저 떠난 그 사람과의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들을 정처 없이 헤매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여야지 너무 지나치면 꼴불견이 되고 말지요. 빨리 추스르고 살 궁리를 해야겠지요. 가슴이 아프겠지만 이제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나름대로의 몫이 있겠지요. 결국 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빨리 슬픔과 허전함을 털어 내고 새 출발하는 것이 먼저 떠난 사람을 위한 일이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는 말씀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에게 약간은 섭섭하게 들리기도 하겠지요.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을 여읜 슬픔에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떠난 사람에게나 남은 우리에게나 아주 요긴한 말씀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제 우리 손을 떠난 사람들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 자비의 손길에 맡겨진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보다 영적인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호화판 장례식이나 왕릉같이 잘 꾸민 묘소 등등 외적이고 물질적인 과시는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으...

연중 제13주일-하느님을 소유하면.

†찬미예수님 오늘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 세 사람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습니다. 예수님도 갖고 싶고~~ 세상도 갖고 싶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소유하면 세상 것을 다 소유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데레사 성녀는 길에 있는 꽃도 꺽지 마라! 네가 꽃을 갖고 싶으면 먼저 하느님을 가져라! 그 러면 세상 것은 다 너의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 하다고 얘기하십니다. 첫 번째, 저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셨던 말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그거 알고 너 나 따라올 수 있느냐!” 다시 말하면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희생을 각오해야한다 .’ 하는 말씀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4대 희생 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의 희생 입니다. 두 번째, 절제의 희생 입니다. 세 번째, 전교의 희생 입니다. 네 번째, 육신의 희생 입니다. 기도 와 절제 와 전교 와 육신 의 희생을 하고 나를 따라올 수 있느냐? 나를 따르려면 안락한 집도, 좋은 침대도, 맛있는 음식도... 나는 너희에게 보장해주질 않는다. 오로지 나를 따르려면 육신의 절제와 전교의 희생을 해야 하는데 너 그거 알고 나를 따라다니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것이냐! 짐승에게는 안식을 누릴 굴과 보금자리가 마련되어 있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휴식처와 안식처를 가질 수 없을 만큼 희생의 길을 걸어야한다 는 그 뜻일 겁니다. 정녕 올바른 신자생활을 하려면 하루 24시간도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팔자를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팔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또 ‘희생, 바치겠습니다.’ 하고 세례 받을 때 분명히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