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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대필해주지 않는 책 스스로 저자가 되어 엮는 한 권의 책을 누구든 쓰게 됩니다. 지난 장에 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지 못했어도 돌아보기조차 아프고 힘든 장이었다 해도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은 아직 책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골이 깊어야 산이 높은 것이니 과정에 힘겨워하지 말아요. 결론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인생 마지막 장에 '후회함이 없다'고 썼고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 쓰셨지요. 그러나 험난한 과정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지난 장이 힘들고 고단했던 것은 이 새로운 장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것이지 싶습니다. 과거는 다시 쓸 수 없으나 미래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오늘 부터 멋진 책을 완성하기 위해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 갑시다. 언젠가 책장을 덮는 날이 오겠지요. 오늘 나태하면 미완성의 작품이 되고 무분별하게 살면 추한 작품이 될 것이니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의 노력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장점과 단점

장점과 단점 사람이 미우면 단점만 보이고 사람이 사랑스러우면 장점만 보인다고 합니다 매사 하는일이 꼴보기 싫으면 미운 감정이 내속에 있는것이요 하는일이 모두 어여뻐 보이면 사랑의 감정이 내맘에 있는 것이랍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모두가 장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점만 지니는 완벽한 사람 없으며 단점만 지니고 있는 미숙한 사람 없지요 우린 좋은사람   나쁜사람  평가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으면 좋은 사람이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세상 완전하고 완결하고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런 분이 있다면 오직 신 뿐이겠지요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고도 하는것 같에요 나에게 단점이 있다면 개선하고 나에게 장점이 있다면 부각시켜 개선해야 겠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를때 모르고 행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알고도 잘못을 할 경우엔   용서받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에게 단점을 알고 그것을 성찰할때 자아 발전이 될수 있으며 장점이 많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존경하며 존중할것입니다

<극복되어야 할 ‘끼리끼리’ 문화>

2월 27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 마태오 5,43-48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극복되어야 할 ‘끼리끼리’ 문화>    잠시라도 집단적인 따돌림을 당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공동체로부터 배척받고 울며 돌아선 적이 있으십니까? 그도 아니라면 어떤 장소에 갔었는데, 군중속의 철저한 고독을 맛본 적은 없으십니까? 그곳에 있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가운데, 그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상황에서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저는 그런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마음 느긋하게 먹어보지만, 참으로 잊고 싶은 기억들입니다.    사실 인간사회에서 ‘끼리끼리’ 문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사람,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 만만하고 격의 없는 사람과 같은 식탁에 앉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지나치면 꼴불견이 되고 맙니다. 최근까지 학교 안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현상’ 그것처럼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일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몇몇 청소년들과 자녀들 못지않은 충격으로 괴로워하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평생 가슴에 안고 가게 될 그 쓰라림, 그 악몽 같던 순간의 느낌, 그 상처가 떠올라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보다 폭넓은 사랑, 큰 사랑, 관대한 마음을 지닐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

겸손은 生의 약입니다

겸손은 生의 약입니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지만 바람보다도 가벼운 사람, 돌보다도 무거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바람보다도 가볍다는 것은 후후 불면 떠다니며 지나는 사람의 신경줄을 빳빳하게 당기는 솜털 같은 그런 사람이요, 돌보다도 무겁다는 것은 물 아래 고요히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자기 자리 지키는 그런 사람입니다. 가볍고 무겁다는 건 마음 무게요 마음 무게는 말과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표출되는 빛과 그림자는 겸손함과 경솔함으로 나타나고 경솔함은 상대 마음에 상처를 입힙니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 자기 무게를 모른다는 것, 언제나 저울 위에 올려 놓고서 스스로의 기울기를 재보아야 합니다 . 이것이 나 아닌 또 하나의 나입니다 "겸손은 生의 약"이고 "경솔은 害의 독"입니다. -좋은글 중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인생을 돌아보며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미구(未久)에 맞이할 죽음을 거치면 - 부족하고 자격도 없지만 -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은 당신의 그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받아주실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이 누리시는 생명,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묵시 21,4) 그 생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아, 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까를로 까레또 수사는 하느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짓이겨서라도 기어이 당신 것으로 만드신다고 했다. 내 경우도 어느 정도 그러했다. 신부되는 것,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될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셨고 주교와 추기경의 삶은 명령으로 떨어졌고, 여기에 따르는 긴 세월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결단의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뜻대로 하소서"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죄인이다.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고개도 들 수 없는 대죄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오히려 이런 죄와 허물을 통해서 - 사도 바오로가 죄 많은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고 하신 대로 -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당신의 그 풍성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달리 말하면 나는 죄로 말미암아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믿게 되었다. 아니, 하느님은 죄까지도 당신 은총의 기회로 삼으셨다. 나의 하느님은 참으로 돌아온 탕자를 껴안아 주시는 어진 아버지이시다. 오, 펠릭스 꿀빠!(Oh, Felix Culpa! 오, 복된 탓이여!) 이제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큰 은총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생이 얼마일지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진실로 하느님 영광...

서두르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바쁠수록 돌아가라"(아시아 격언).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즉시 출발하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게 된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과제를 완성하겠다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 과제를 의미 있게 해낼 수 있는 방법과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제로 직접 향하는 대신, 돌아가는 것을 감수하는 사람은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얻는다. 그는 과제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완성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보다 넓은 시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는 동안, 곧장 일에 매달렸더라면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해결책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하느님께서는 " NO " 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하느님께 나의 오만을 없애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NO " 라고 말씀하시며 오만은 내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께 인내를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NO " 라고 말씀하시며 인내는 고난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께 행복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NO " 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은총을 줄 뿐이지 행복은 너에게 달려있다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께 나의 영혼을 성숙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NO " 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네가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가지를 쳐 줄 뿐이라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께 내 고통을 덜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NO " 라고 말씀하시며 고통으로 인해 네가 나에게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께 나를 사랑하시는지 여쭤보았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yes " 라고 말씀하시며 그래서 당신의 외아들을 나에게 보내 주셨다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께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만큼 내가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 아 ! 드디어 네가 바로 그 생각을 했구나 " 하셨다.  

작은 일도 충실하게

작은 일도 충실하게 땅에 점같이 작은 꽃씨를 심어보니 알겠습니다. 조그만 것, 힘없이 약해 보이는 것의 그 대단한 위력을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님을 매일 매순간을 작은 일에 충실하게 살게 하소서. 가끔은 누군가에게서 못마땅한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이를 통해 자신을 바로 보고 성숙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지혜를 지니게 하소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어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저도 매일 매일의 삶의 길에서 저를 이기게 하소서. 겸손으로 교만을,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게 하소서. 너그러움으로 옹졸함을, 자신을 내어줌으로 이기심을 이기게 하소서. - 이해인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

☆ 자녀에게 주어야 할 7 가지 인생 선물 ☆

☆ 자녀에게 주어야 할 7 가지 인생 선물 ☆ ☆ 첫 번째 선물 - 존경심 존경심은 숭고한 마음의 작용으로 사람을 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며, 올바른 길을 걷게 만든다. 누구나 인생에서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자신도, 다른 사람도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자. ☆ 두 번째 선물 - 인내심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게 마련이다. 자녀에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억제하는 법을 가르쳐라. ☆ 세 번째 선물 - 사랑 사랑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전해 주는 것이 자녀 교육의 기본이다. 부모가 따뜻한 사랑을 충분히 주고 부모 자식간의 신뢰 관계가 확고하다면 자녀 교육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 네 번째 선물 - 의욕 자녀가 스스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분위기를 연출하자. 부모 스스로 즐겁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녀에게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라. ☆ 다섯 번째 선물 - 개성 아이들은 모두 잘 갈고 닦으면 빛을 내는 보석과 같다. 그 아이만의 좋은 개성은 부모만이 잘 살릴 수 있다. 자녀의 개성을 이해하고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 ☆ 여섯 번째 선물 - 배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인생관을 갖도록 조언해 주자. 높은 이상은 배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도전하는 것에 신선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라 ☆ 일곱 번째 선물 - 꿈 자녀의 눈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면 칭찬해 주자. 그것이 자녀의 꿈과 마음을 키워주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한 마디의 말

한 마디의 말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서 한 점 별빛으로 빛나는 말, 그 말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일생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비수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을 헤집는 말 그 말로 인해 어떤 사람은 일생을 어둡게 암울하게 보낼 수 도 있습니다   - 이정하의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중에서 -

- 사순시기의 기도 /권태원 프란치스코 -

- 사순시기의 기도 /권태원 프란치스코 - 당신이 부르시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죽음보다 더 강한 당신 사랑의 힘으로 오늘 하루도 기도로서 시작합니다. 죄를 뉘우치고 나면 내 영혼이 옹달샘처럼 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날마다 새롭게 당신을 만난 첫 설레임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춥고 외로운 인생의 사막에서도 당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어둠의 산을 넘고 있습니다. 늘 당신 앞에서는 성당의 나무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를 일으키시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에게는 나의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가면 나의 슬픔과 상처까지도 깨끗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 대한 나의 기쁨과 평화를 나 혼자만 지니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직도 살아 있는 나를 당신에게 봉헌합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당신을 좀 더 닮고 싶습니다. 지난 날의 불안과 고통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당신의 거룩한 은총입니다. 당신에게 좀 더 잘 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날은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멀리 멀리 세상 속으로 갔다가 당신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눈물로 애절하게 바치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과 함께 다시 살게 되어 너무 기쁘고 좋습니다. 당신을 더 가까이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사는 일에 쫓기어 쓰러지고 쓰러질 때마다 오로지 당신밖에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나를 위해 애타게 기다리시는 당신의 사랑을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이길래 당신은 나를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사순절에는 침묵하겠습니다.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당신의 빛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서 고요히 머무르고 있겠습니다. 오직 당신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조용히 있겠습니다. 당신의 한가운데서 휴식하고 있습니다. 성체조배실에서 영적 도서를 보거나 읽지 않고 오로지 당신의 성체만 바라보며 묵상하고 있습니...

"진정성"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23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이사55,10-11 마태6,7-15                                                                         "진정성"     진정성 있는 말이나 글, 행동이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입니다. 말이나 글, 행동에 진정성이 없을 때 즉시 느껴지는 공허함입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게 상대방의 진정성입니다.   사실 내 자신의 진정성이 없는 말이나 글, 행동에 내 자신부터 먼저 느껴지는 공허함과 씁쓸함입니다.   진정성이 없을 때, 진정성을 모를 때 판단이요 비난이지 진정성을 알게 될 때 자취 없이 사라지는 판단이요 비난입니다. 과연 우리의 하루 중 진정성 있는 말과 글이나 행동은 얼마나 될까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한 정화와 성화, 치유로 변화되어 진정성 있는 삶입니다. “너희는 ...

"절제의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24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3,1-10 루카11,29-32                                                                       "절제의 삶"       ‘절제의 미학’, ‘절제의 아름다움’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순시기 육신의 절제로 자기를 이겨내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대부분의 죄는 무절제의 식욕, 무절제의 성욕, 무절제의 탐욕에서 기인합니다.   아침 성무일도 때, 아름다운 찬미가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윽고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은총이 넘치는 때 빛나는도다.   절제의 약으로서 병든 세상을, 치료해 주시고자 정한 시기네.   하느님 우리들의 마음과 육신, 힘써서 절제토록 도와주소서.” 두 가지 깨달음을 나눕니다. 며칠 전 큰 소화불량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과식을 삼가며 절제했는데 냉장고 속의 우유가 상할까 봐 한 팩을 다 마신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과도한 우유가 신체의 리듬을 깨 고통을 겪었던 소화불량이었습니다.   이처럼 과도...

듣기를 갈망해야 한다.

듣기를 갈망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듣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듣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이런 갈망 없이는 출발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할 일이 태산 같다고 하여 부산스 러움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경청의 기도를 하려 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듣고 싶어해야 합니다. 들으려고 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여쭤보고 싶어한다는 뜻입니다. 의지의 장난에 주의하십시오.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척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나쁜 뜻을 품더라도  결코 방해하지 않으시는 신중하고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 경청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해주시길 청하고 마음이 무딘 것을 고백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겸손 한 행동 앞에서는 항상 감동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경청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기도 중에서-

<다급해지다보니>

2월 25일 사순 제 1주간 목요일 - 마태오 7,7-12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다급해지다보니>    요즘 한 며칠 아이들을 위해 집중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사는 게 기도지", 그게 아니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기도지"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했었는데, 다급해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장 원시적인 청원기도를 하게 됩니다.     "꼭 돌아오게 해주세요.", "하느님 이 부탁은 꼭 들어주셔야만 하겠습니다." 등등 어린애가 떼를 쓰듯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 참으로 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건강을 위한 기도, 제 성취를 위한 기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는 제대로 먹혀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는데, 타인을 위한 기도, 특히 방황하는 아이들이나 절박한 이웃을 위한 기도는 거의 90% 이상 OK되는 특별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 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늘 흔들리는 우리에게 참 으로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기에 앞서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를 식별하는 일은 기도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일인 듯싶습니다.     적어도 너무 터무니없는 청원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을 한 장 샀으면 그저 한번 추첨시간의 그 짜릿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야지, 꼭 1등에 당첨되도록 기도하기 위해서 산다면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겠지요.    하느님을 마치 무당 대하듯이 대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어느 쪽 땅이 빨리 그린벨트가 풀릴 것인지 ...

♣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언제, 또 소중히 여길 때가 있을까? 우리는 이미 지나간 어제를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내일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 순간만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이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것만이, 곧, 아름다운 과거를 만들고 황홀한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참고한 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김 정 수 레오 신부 지음 이글에 대한 묵상과 성경말씀. 바로 이 순간만이 우리가 온전히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시간을 잘 쓰십시오."(에페5,16)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5,6)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째서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는가?" 묻지 마라.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코헬7,10) 낮 동안에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처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요한9,4)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시어 사랑과 희망으로 그들을 감싸주시어 희망찬 하루를 맞게 하소서! 당신의 영으로 그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시어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만나게 하소서! 하느님의 신비를 이웃 안에서 알아보고 믿게하시어 좋은 만남이 되게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와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25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에스4,17 마태9,7-12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와 삶"     오늘 ‘주님 없이는 저희가 있을 수 없사오니’ 란 말마디 그대로 우리의 실존적 고백입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찾은 에스텔, 우리 궁극의 피신처 역시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께 피신하는 자에게는 방패가 되어 주시고 주님은 당신의 오른 팔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대수도원 본원의 원장 소임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은 압니다.   마침 본원장 신부님의 영명축일을 맞이하여 수고 많다며 축하인사를 전할 때, 본원장 신부님의 차분하면서도 짤막한 답변을 잊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삽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사는 것, 바로 이게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온통 자기 힘으로 하려기에 무거운 짐이자 스트레스입니다.   하여 세례 받은 이들이 공통...

인생의 작은 교훈들

인생의 작은 교훈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다음에 일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이라. 먼저 무엇이든 일하기 시작하라. 그리하면 좋은 생각이 그 뒤를 따르는 법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 한 사람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좋은 아이디어 자체까지 미워하지 말아라. 네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네가 바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알고있으려니 기대하지 말아라. 네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하여라. 누군가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다섯 사람을 물어 보아라. 그 대답이 그 사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줄 것이다. 네가 진정 보고 싶고, 가지고 싶고,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몇 푼의 돈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말아라. 종업원이 특별한 서비스를 하였거든 팁을 넉넉히 주어라. 그리고 "훌륭한 서비스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식사가 참 즐거웠습니다" 라고 칭찬하여라. 손톱 밑에 때가 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는 각별한 존경심으로 대하도록 하여라. 네가 운이 좋아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은 너의 예금구좌뿐 아니라 너의 영혼까지도 충만케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전문적인 충고가 필요할 때는 친구가 아니라 전문가에게 충고를 구하여라. 물건의 가치는 가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필요에 달린 것이다. 항상 품위 있게 행동하라. 너에 대한 평가가 그로부터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힘쓰라. 너의 재정 문제와 관련된 일에는 무자비하게 현실적이 되어라. 가장 가까운 친구 두 사람에게 네 집 열쇠를 주어라. 스스로 살펴보아 불안하다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도록 하여라. 잭슨 브라운 <인생의 작은 교훈>중에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밥 보딘, 'WHO' 중에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밥 보딘, 'WHO' 중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사업이 잘되지 않아서 전망이 어둡다는 불평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바보 같은 불평을 끝까지 조용히 듣고는 이렇게 물으셨다. “너를 괴롭히고 있는 게 그게 다니? 흠, 정말 엄청난 문제들이구나.” 아버지는 책상 서랍 오른쪽 끝에 있는 조그만 카드 위에 내 고민에 대한 답변이 적혀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카드를 꺼내 뒤집어보았다. 그 위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뭐가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내 물음에 아버지는 천천히 답했다. “나 역시 여러 복잡한 상황과 환경 때문에 골치 아픈 걱정들과 싸워야 할 때가 있었단다. 그럴 때면 이 카드를 꺼내 보곤 했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우리를 괴롭히는 어리석고 부정적인 생각들 대부분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단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그런 생각들이 너를 괴롭히게 그냥 내버려 둔다면, 네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크게 자라게 될 거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거니?” 나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과거의 일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나쁜 생활 습관을 키워오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마음속에 몰래 들어와서 우리의 꿈과 목표를 포기하게 만든다. 성공의 기회는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음에 또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면, 잠시 멈추어 서서 자문해 보라. “누가 그런 말을 했니?” 그리고 이렇게 답하라.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꼽냐?>

2월 26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 마태오 5,20ㄴ-26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꼽냐?>    언젠가 소년 분류 심사원에서 데려나왔던 한 아이가 기억납니다. 나이에 비해 체격이 땅땅한 것이 아주 야무졌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착했지만 첫인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척 보면 "깍두기" 계보라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거기다 눈빛이 사납다보니 본의 아니게 친구들과 자주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별 생각 없이 쳐다보는데도 상대방에서는 "저것이 내게 감정이 있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눈빛이 날카로웠지요.    소년원이나 심사원, 또는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자주 체험하는 일입니다. 우리 가정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밀집되어 생활하다보니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고 또 심하게 다투기도 하고 급기야 큰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형사건의 첫 시발점은 너무도 사소한 것이어서 웃음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머리가 터지고 갈빗대가 나가는 전치 5주쯤 되는 싸움의 원인을 추적해 가다보니 "왜 째려봐?"였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언제 째려봤다고 그래?" "그래서 꼽냐?" "그래 꼽다." "아니,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하면서 주먹을 한 대 날립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날아든 주먹에 코피가 터진 상대방은 격분한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해 상대방의 턱에 시속 100Km짜리 헤딩으로 응수합니다. 턱이 얼얼해진 상대방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어 흉기가 될만한 것을 집어듭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전치 10주의 부상, 결국 살인에까...

♣ 상황에 따라 적응하라!

♣ 상황에 따라 적응하라! 우리의 생각과 행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그에 맞도록 잘 조정 되어야 한다. 할 수 있을 때 하라! 시간과 기회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예외 없이 적용될 규칙을 세워 놓고 무리하게 쫓아가는 생활을 하며 살지는 말라! 그것이 아무리 미덕을 위한 것일지라도 자신의 의지에 정해진 법칙을 부여하지는 말라! 오늘 그대가 버리는 물을 내일 마셔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한 글 “세상을 보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이글에 대한 묵상과 성경말씀.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가 선을 이뤄야 합니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8,28)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1베드1,22)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2,3)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4,2-3)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오늘 이처럼 일어나게 하시고 맑은 공기을 마시며 가슴부듯한 아침을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겸손과 온유로서 인내심을 발휘하여 서로 사랑하게 하시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성호경

그리스도인은 성호경을 외우면서 몸에 십자가를 긋는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보여준 최대의 사건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떠나셨다고 생각되는 그 곳,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절규가 저절로 새어나오는 그 곳, 하느님이라면 도저히 계실 것 같지 않은 그 곳, 십자가에도 하느님께서는 계신다는 신뢰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끝까지 십자가에 달려 있게 하셨다. "십자가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우린들 안 믿을 수 있겠는가?" 라는 인간들의 조소에도 그분께서는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시며 끝까지 십자가에 달려 계셨다. 십자가는 한 많은 세상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표지이다. 십자가는 말하자면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준 장소며 신앙의 절정이다. 그곳은 죽은 생명이 되살아나는 곳, 하느님의 생명을 가장 가까이서 온몸으로 느끼고 숨쉴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구원의 장소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에서 당신의 최후(완성)를 보이신 그 날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어떠한 일을 하든 몸에 십자를 긋는다.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기쁜 일에도 괴로운 일에도 십자를 긋는다. 이는 기쁜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먹는 일이든 싸우는 일이든 매사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매사를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행하겠다는 고백의 표현이다. 이 고백의 자세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그리스도인이게 하고, 이 고백이 우리로 하여금 힘든 세상을 용기백배하여 더욱 희망찬 인간으로 살아가게 한다. 십자를 몸에 그으면서 그리스도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하고 경문을 외운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만이 그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예컨대 식사를 할 때 몸에 십자가를 크게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이름으로"하고 경문을 외운다면, 십자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