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09의 게시물 표시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22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사무 상1,24-28 루카1,46-58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가난한 이들을 각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가난한 이들의 그리스도교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의 집 수도원입니다.   하여 몸과 마음이 지친 가난한 이들이 끊임없이 여기 수도원을 찾습니다.   하느님 없는 가난은 파멸이지만, 하느님 안에서의 가난은 축복입니다.   가난의 길을 통해 하느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찬미노래를 통해서도 약하고 가난한, 겸손한 이들의 하느님이심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혁명가적인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심...

♣ 행복은 작습니다 ♣

♣ 행복은 작습니다   ♣ 행복은 작습니다. 거창하고 큰 것에서 찾지 마세요. 멀리 힘들게 헤매지 마세요. 비록 작지만 항상 당신 눈앞에 있답니다. 행복은 이기적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남의 시선 따위는 무시해 버려요.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울 수 없답니다. 행복은 연습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행운의 복권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가는 길은 만갈래지만 방법은 하나랍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아는 길이 편하고 가던 길을 또 가듯이 살아가는 동안 몸과 마음에 배이는 향기입니다. 하나씩 날마다 더해 가는 익숙함이랍니다. 행복은 투자입니다. 미래가 아닌 현실을 위해 남김없이 투자하세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을 온전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답니다. 행복은 공기입니다. 때로는 바람이고 어쩌면 구름입니다. 잡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답니다. 행복은 선물입니다.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미소이기도 하고 소리없이 건네 줄 수 있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가장 달콤한 포옹이랍니다. 행복은 소망입니다. 끝없이 전달하고픈 욕망입니다. 하염없이 주고 싶은 열망입니다. 결국엔 건네주는 축복입니다. 행복은 당신입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당신입니다. 변함 없이 사랑하는 당신입니다. 이미 당신입니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기에 늘 고운 생각으로 행복한 나날 되세요. 좋은 글 중에서  

<작은 가능성에서 시작하시는 하느님>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루카 1장 57-66절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작은 가능성에서 시작하시는 하느님>    대림시기 복음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마리아, 엘리사벳, 세례자 요한, 즈카르야...    이분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분들의 삶은 대림시기를 보내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할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다른 무엇에 앞서 그들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기다렸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등 뒤에서 수군수군 거렸지만 그저 하느님의 언약만을 기억하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굳건한 신앙의 눈, 순수한 영적인 눈을 지닌 사람들이었기에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특별하고 기이한 사건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순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처럼 꼬치꼬치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반박하지도 않습니다. 깊은 침묵 가운데, 심오한 관상 가운데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명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비록 보잘 것 없는 봉헌이지만 자신들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신앙들의 모델이요, 이정표요, 안내자들입니다.    대림시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아주 좋은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삶을 그대로 본받아보십시오. 세례자 요한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충직함과 오랜 창조적 기다림을 묵상해보십시오.   ...

대림 제4주일 - 만남의 소중함

†찬미예수님 날씨가 많이 춥죠? 겨울은 좀 추워야 일 년 내내 농사도 잘될 것이고... 추위도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어깨가 펴질 겁니다.     삶은 곧 만남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 만남의 무대에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선과 악이 서로 싸우고 진리와 거짓이 같이 만납니다. 신의와 배신이 있고 행복과 불행이 엇갈리는 바로 대결의 장이 만남의 장이 아니겠는가?     성서를 보면 카인과 아벨의 만남은 질투와 질투로 인한 살인의 만남 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류최초의 불행한 만남이 카인과 아벨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예수님과 유다스의 만남은 배신과 뉘우침 가책의 만남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은 진리를 사랑하는 깊은 내면적인 만남이었고 아우구스티노와 암브르시오 주교와의 만남은 바로 아우구스딩을 회개시키는 회개의 만남이었지요.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코 성인의 만남은 기울어져가고 부패해가는 중세교회를 재건하는 그런 특별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단종과 성상문의 만남은 신과 의를 잇는 불멸의 충성을 빛나게 하는 만남이었습니다.     공자와 안회의 만남은 유교를 창립하게끔 했던 특별한 만남이었고 석가모니와 아난의 만남은 불교의 기본교리를 정립시키는 만남이 되었고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인류의 구원 기간이었던 교회를 탄생시키는 그런 만남이었습니다.     감곡신자들과 김웅열 신부와의 만남은 과연 얼마나 행복한 만남일까? 감곡신자들을 만난 것은 내 생애의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살고 있는데 감곡신자들은 과연 어떨까?     인간이 선하게 변하는가 아니면 악하게 변하느냐 하는 것은 어떤 만남이었는가에 따라서 결정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성서 공부를 하는 자매님들의 만남은 성서를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남을 흉볼 수는 없기 때문에 선하게 변화가 됩니다.   ...

"위대한 침묵"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23 대림 제4주간 수요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위대한 침묵"   입소문은 놀랍습니다.   저희 수도 형제들은 이미 3년 전에 다운 받아 본, 카르투시안 수도원을 소개한 ‘위대한 침묵’이란, 약 3시간 정도의 영화가 상영 기간을 12월말까지로 연장했으며 표도 매진되었다 합니다.   몇 자매들도 영화 본 이야기를 자랑했습니다.   순간 침묵을 목말라 하는 현대인의 영적 갈증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소음과 공해 가득한 세상에서 수도원의 위대한 침묵을 통해 생명의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은 영적갈망의 반영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침묵은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생래적으로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입니다.   참으로 고독과 침묵을 사랑했던 수도승들이었습니다.   옛 구도자들 역시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 고독과 침묵의 사막을 찾았습니다.   하여 인위적인 사막 분위기를 만들고자 수도원의 침묵은 일상적이며 특히 끝기도 이후 아침 식사 시...

<아침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12월 24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루카 1장 67-79절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아침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대 침묵 피정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요즘 여러 수도회나 교구에서 종신서원이나 사제품을 앞둔 후보자들에게 의무적으로 대 침묵 피정을 시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은 그럭저럭 참을만한데, 일주일, 열흘, 사십일 대 침묵 피정,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괴로움입니다.    특히 차 한 잔 앞에 두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담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술 한 잔씩 들이키며 ‘술술’ 풀어놓아야 쌓인 것이 풀리는 사람들에게 있어 ‘대 침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10개월간의 대 침묵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그 10개월 동안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요? 억울한 심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타의에 의해서 10개월 동안 말을 못하게 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더불어 10개월 만에 혀가 풀리고 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0개월 만에 말을 하게 된 즈카르야가 내뱉은 첫마디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 대한 투덜거림이었을까요? 강한 분노의 표출이었을까요? 자신이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강한 벌칙을 주셨냐며, 하느님께 따졌을까요?    모두 아니었습니다. 즈카르야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 마디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찬가 ‘즈카르야의 노래’였습니다.    저희 수도자들은 매일 아침기도 때 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바칩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구약을 완성하기 마지막 대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교향곡(‘삶에 휴식이 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교향곡(‘삶에 휴식이 되는 이야기’ 중에서) 인간의 가슴 안에는 수많은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바로 ‘감사’라는 음악입니다.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감사’라는 음악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가장 추하고 쓸모없는 ‘불평’이라는 음악을 애용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은 우리가 ‘불평’이라는 음악으로 낭비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울리는 불평의 음악을 이제 꺼 두십시오. 당신 입에서 나오는 불평,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당신 인생 전체를 무너뜨리고도 남을 힘을 지닐 테니까요.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글('좋은 글' 중에서)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글('좋은 글' 중에서)     화는 마른 솔잎처럼 조용히 태우고 기뻐하는 일은 꽃처럼 향기롭게 하라 역성은 여름 선들바람이게 하고 칭찬은 징처럼 울리게 하라 노력은 손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반성은 발처럼 가리지 않고 하라 인내는 질긴 것을 씹듯 하고 연민은 아이의 눈처럼 맑게 하라 남을 도와주는 일은 스스로 하고 도움 받는 일은 힘겹게 구하라 내가 한 일은 몸에게 감사하고 내가 받은 것은 가슴에 새기고 미움은 물처럼 흘려 보내고 은혜는 황금처럼 귀히 간직하라 시기는 칼과 같아 몸을 해하고 욕망이 지나치면 몸과 마음 모두 상하리라 모든일에 넘침은 모자람 만 못하고 억지로 잘난척 하는것은 아니함만 못하다 사람을 대할 때 늘 진실이라 믿어야 하며 절대 간사한 웃음을 흘리지 않으리니 후회하고 다시 후회하여도 마음 다짐은 늘 바르게 하리라 오늘은 또 반성하고 내일은 희망이어라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마음('좋은 글' 중에서)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마음('좋은 글' 중에서)     마음은 우리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부분이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만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비결은 먼저 마음을 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일 수있는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없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 최대한 낮추고 최대한 섬기는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 마음을 움직이는도구는 마음뿐이다. 그 마음은 순수해야 한다 그 마음은 깨끗해야 한다 . 그 마음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 마음은 상대방을 더 위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성숙한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다 성숙한 마음은 세워주는 마음이다. 성숙한 마음은 덮어주는 마음이다 성숙한 마음은 양보하는 마음이다. 상대방의 싫은 소리도 잘 들어주고 상대방의 감정도 잘 소화하고. 상대방의 결점도 잘 덮어줄 수 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을 얻는다 . 마음을 얻는 것이 재물을 얻는 것보다 낫다 마음을 얻는 순수한 지혜를 공급받아라. 마음을 잘 만져주라. 마음을 잘 치유해 주라. 마음을 잘 이해해 주라.

한 번에 한 사람 (마더 데레사)

한 번에 한 사람 (마더 데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