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 31/3/2023(매일미사)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2023년 3월 31일 금요일[(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자) Friday of the Fifth Week of 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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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복음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을 대하는 유다인들의 태도는 점점 격해집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설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그리스도의 강생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온전한 하느님이시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고백합니다.

유다인들의 말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이십니다. 

사실 이것을 우리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온전한 사람이 되실 수 있으며, 

어찌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실 수 있겠습니까. 

신비로만 받아들이는 것도 완전한 이해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때 신비와 이해를 잇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논쟁은 믿지 않는 이들의 예를 보여 주면서 

한편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당시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 줍니다. 

그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결단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사람들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과 함께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여러 증언으로 끊임없이 알려 줍니다. 

복음을 읽는 이들은 어느 순간 멈추어 서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또는 어떤 분이신지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답을 우리는 신앙 고백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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